192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모두에서 민족 협동전선의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아울러 협동전선의 구축에 앞서 각 진영 내부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영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조선공산당의 실세였던 화요회(火曜會) 주도로 결성된 정우회(正友會)와 서울청년회가 주축인 된 전진회(前進會)가 대표적이다.
화요회, 북풍회(北風會), 조선노동당(朝鮮勞動黨),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는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26년 4월 합법적 사회주의 단체인 정우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일제가 6·10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조선공산당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면서 정우회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1926년 8월 도쿄의 유학생 사회주의 단체였던 일월회(一月會)의 안광천(安光泉), 하필원(河弼源) 등이 정우회에 참여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일월회계가 주도하는 정우회는 1926년 11월 ‘분파투쟁의 청산과 사상단체의 통일’, ‘교육을 통한 대중의 조직화’, ‘종래의 경제투쟁으로부터 정치투쟁으로의 전환’,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적극적인 제휴’를 골자로 한 ‘정우회선언’을 발표하였다. 정우회선언은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전환’을 제시한 것으로 전진회 등이 비판하기도 하였으나, 국내외 여러 단체의 지지를 받으면서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과 함께 ‘신간회’를 결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27년 2월 15일 신간회가 창립되자, 정우회의 구성원들은 신간회에 참여하면서 2월 21일 해체를 선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우회 [正友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