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전갈
요한계시록 14장 6-13절 / 6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5절에서 7장 1-17절에 이어지는 어린양의 인 맞은 144,000이 부르는 새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는 것을 언급된 후에 요한은 자신이 계속해서 본 환상계시에 대하여 말한다. 앞서에서의 천사와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 천사는 온 땅의 사방으로 보냄을 받는 하나님의 사자인데,“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었다(7:1). 그런데 이제 땅 사방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인 침이 마쳐지므로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자 해서이다.
그렇게 사방으로 보냄을 받은 천사 중 첫째 천사가 큰소리로“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라. 이는 그분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분을 경배하여라.”라고 외쳤다. 이것이 천사가 전할 영원한 복음이다. 필립 휴즈(Philip Edgcumbe Hughes)는 이를“영원한 결과가 있는 복음의 메시지”라고 하였다.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주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 줄 것이나(14절), 짐승을 따르며 우상 숭배에 있는 자들에게는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음으로 밤낮으로 쉼을 얻지 못함에 있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10-11절). 이를 위해 영원한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되는 복음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영원한 복음은 곧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가 이르렀다는 종말의 시기와 연결되어 있다.
둘째 천사는 짐승의 미혹을 받아 우상숭배에 있는 자들에게 미칠 그 재앙의 화를 전한다."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그녀의, 원문은 여성3인칭 대명사 소유격이다)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여기서의‘무너졌다’는 표현은 이사야서에서 언급해 주시고 있는“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사 21:9)에서 보게 되는 바벨론의 함락과 그로 인한 멸망의 예언과 연관되어 있다. 이렇게 바벨론의 멸망에서 보게 되는 일순간의 무너짐이 또한 큰 성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하나의 성을 이루고 있는 온 세상에도 그대로 미친다. 이는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의 지휘를 받는 알 카에다 조직에 의해 있은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곧 911 테러에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이 자행되어 30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에서 보는 하늘 높이 솟은 건물이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것과 같은 창세기 10장에서 보는 또 하나의 바벨탑, 그러나 최종의 바벨탑이 되는 큰 성 바벨론의 무너짐이 있을 것이다. 불과 유황에 의해 멸망당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죽음의 바다인 소금 바다로만 남은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의 나라요 도시인 큰 성 바벨론의 전형(典型)이다.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겪는 이러한 재앙의 화의 미침은“자신의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나라들로 마시도록 미혹한 대가를 톡톡히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진노의 포도주’에서‘진노’는 문자적인 의미는‘격노’,‘진노’,‘분노’를 뜻하나, ‘욕정’,‘열정’의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진노의 포도주’는 큰 성 바벨론이 욕정을 품은 정열의 포도주로 미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으로,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취하여 제 정신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다(렘 51:7). 이렇게 큰 성 바벨론이 제공하는 포도주에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17:2). 그런데 이를‘진노의 포도주’로 번역한 것은 이 미혹의 포도주를 제공하고 또한 마심에 있는 자는 그 포도주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로 돌아올 것에서 이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도 그들을 따르며 같은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의하여 전하는 것에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자신의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다른 것이 섞인 것이 없는 순전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마시는 자는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갈 것이며, 그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으로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셋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나라들로 마시도록 하는 미혹을 받아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자신의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은 자는 그들이 마신데 따른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것임을 말하였다. 이 하나님의 진노는 진노 외의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거나 또는 그 정도를 감하거나 할 만한 다른 어떤 요인도 들어 있지 않다. 이는 하나님이 택하신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변개 없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대로 행해질 것이다. 이는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함에 있는 짐승의 이름이 낙인되어 있어 그의 소유됨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린양 예수님을 따르는 14만 4천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은혜를 받을 수 없을 것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는 자는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갈 것이며, 그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으로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셋째 천사에 의해서 전하여 알려주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게 하는 것에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함에 있게 하는 것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에 있는 믿음을 가져나가는 것을 굽히지 않고 맞서 나가는 것에 있는 것이다(1:2, 9; 6:9; 12:7). 그러한 것에서‘성도들의 인내’는‘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세 천사의 전갈에서 각각의 천사들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강조하여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음행의 포도주가 포도틀을 넘쳐흐르는 상황에서 성도들은 어떤 자들인지, 곧 성도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가, 성도들이 믿음으로 무엇을 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요한은 천사들이 전하는 말 외에도 또 다른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은 하늘에서 나는 음성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너는 네가 듣는 말을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성령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끝내고 안식할 것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영원한 복음이 주어졌으며, 그 복음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있게 된다. 이들은 참으로 복이 있다. 그 이유를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에 있어온 수고에 있은 사람이다. 그들은 주 안에서 죽음으로 그 수고를 끝냄에 있다. 사도 바울은“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행 20:24) 라고 하였으며, 또한“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 라고 한 것의 마침, 곧 종결이다. 이는 그들에게 새로운 전환이 된다. 수고로부터의 전환, 그것은 영원한 쉼의 안식이다. 주 안에서 수고에 있는 자들이 또한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림은 참으로 마땅하다. 그들의 수고는 그들에게 주어질 영원한 안식을 바라봄에서 인내의 믿음에 있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