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역사적인 사건이며
12-19절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관계이며 그 다음 20-28절은
부활의 차례이며 29-34절은 부활의 산 소망에 대한 진술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죽고 난 다음의 소망이 아니란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아직 이 부활의 복음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리스도 안에 육신에 속해 젖만 먹는 어린아이들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고린도교회와 같은 아이들의 꽃동산과 같은 교회가 참 많습니다.
35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많은 사람의 부활관이 이렇습니다.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뿐입니다. 부활의 원리 곧 어떻게 아담 안에
죽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이 되어 살고 어떠한 상태가 될 것인가?
이 말씀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외면하고 오직 죽은 다음의 부활만 바라봅니다.
마르다와 같이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만 믿고(요11:24)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네 오라비가 살리라 하고 그 자리에서 살리시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36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가 죽어야 다시 사는 자연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종자에 따라
형체를 이룹니다. 씨가 열매라는 형체로 바뀌는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37절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알맹이인 씨만 뿌리지만 형체를 입습니다.
그러나 씨는 형체가 없습니다. 그 씨가 형체로 자라갑니다. 부활도 씨로 우리
안에 들어와서 서서히 형체가 이루어져 밖으로 행함으로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열매를 맺고 난 다음에 그 열매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마12:32-37)
38절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이 각 종자마다 고유한 형체를 주십니다.
씨가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는 순간부터 형체가 주어집니다. 알맹이는
씨로 뿌려지고 그 다음에 자람은 형체의 완성이 됩니다. 구원을 농사에 비유하는
것은 농사가 씨로부터 시작하여 열매로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 형체는 종자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씨를 뿌리기도 하시고(마13장) 각 씨에
따라 형체도 주십니다. 만일 우리의 형체가 죽은 다음이나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할 형체뿐이라면 부활의 형체에 대해 바울이 이토록 길게 진술하지 않을 겁니다.
39절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창1장에 나오는 육체는 4가지의 등급입니다. 사람, 짐승, 새, 물고기의 형체입니다.
죽은 다음에 변할 형체라면 왜 사람, 짐승, 새, 물고기 등의 형체와 비교를 하겠습니까?
또한 좋은 땅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것이 어찌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는 부활의 결과이겠습니까? 우리가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씨로 받아 이 땅에서 그 열매를 맺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인 겁니다.
우리 안에 씨가 아담의 씨냐 그리스도의 씨냐에 따라서 그 형체가 다릅니다.
당연히 영광이 달라집니다. 물론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외모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금과 빛은 소리 없는 능력이기에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형체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들에게는 외모의 형체가 보입니다.
40-41절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의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며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형체 곧 몸과 영광(열매)과의 관계성입니다. 아담 안에 속한 만물은 속되고
부정한 것들이며 그리스도의 영에 속한 만물들은 다 거룩한 것들입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지만 만물은 그 안에 거듭나지 못한 피조물이나
그리스도 안에 새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나 다 포함이 되는 어휘입니다.
땅에 속한 자의 형체와 영광과 하늘에 속한자의 형체와 영광은 당연히 다릅니다.
개와 사람과는 형체도 다르고 영광도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즘은 인간들이 개의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고 개의 집사도 되어 스스로
개 취급을 받는 시대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은 사람의 영광이 있고
개는 개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의 원리가 영적원리의 그림자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영광을 얻지 못하면 어찌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 온전함을 이루어 사랑에 다다르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을 주셨다고 하시며(요17:22) 그 영광을 주신 목적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같이 그 영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가 되어 온전함을
이루어 드디어 사랑하기에 이르는 겁니다. 이게 바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기도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그를 힘입어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쉬지도 졸지도 않으시고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5) 따라서 대제사장의 기도로
우리를 대표하여 하신 주님의 기도(요17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여 성취되는 중입니다.
첫댓글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 없다.
(시편 145:3)
오늘도 대제사장 되신 주님의 "위대"하신 이름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제 시집을 보내드리려고 하니 제 이메일 philabi@hanmail.net로 주소 좀 주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2.21 22:05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