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1930년대, 일제 말 암흑기의 시문학사
양상들
1. 문단 내외의 상황
5) 표현 매체와 인식의 변화
객관적인 정세의 열악함 가운데서도 우리 고유의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기 위한 움직임과 노력들은 1920~1930년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이어졌다. 그 가운데 몇 가지 사례들은 이 시기 시단의 활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조선어학회를 모체로 한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성립(1929)과 '한글맞춤법통일안'의 확정(1930) 및 발표(1933) 등은 그 대표적인 일들로 기억될 만하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면에 있어서 시를 비롯한 당대의 문학계 전반에 커다란 의식상의 변화를 몰아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한글 사용에 대한 종전의 입장을 분명하게 뒤바꾸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전까지 이 땅에서 한글은 한자에 비해 한 수 아래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식층일수록 한자 사용을 선호하였고, 이런 현상은 개화기 이후 신식교육을 받은 신세대 지식층들의 등장 이후에도 좀처럼 시정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물론 보수적인 유림세력의 수구적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나, 이와 더불어 한글의 질서와 체계가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까닭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이전까지는 당연시되었던 표기법상의 잦은 혼란과 무원칙성이 한글 사용 문제를 둘러싼 지식 계층의 인식에 크든 작든 부정적인 요소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이해가 바로 한글로 된 문학작품의 창작과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르러 확정된 규칙의 명확한 제시로 인해 한글은 더 이상 비체계적인 저급 언어로 대접받지 않게 되었으며, 그러한 의식상의 변화는 점차 문학작품의 창작 및 이의 평가면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언어 표현과 관련된 일체의 관념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비록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에 국한된 규정이긴 하지만,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지닌 제도적 성격은 이 경우 한글로 된 모든 언어 표현 방식의 제도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제도화는 특히 수사적 표현 면에서 그와 결부된 부수적인 결과들을 몰고 왔다. 시를 포함하는 모든 문학 장르는 원래 언어의 일반적인 질서와 규칙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일탈에 대한 시도를 통하여 기존의 표현상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어떤 제도의 완성은 곧 그것의 고착화가 아닌, 새로운 응용과 변용을 가능케 하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이시기 조선어학회의 활동상은 특히 당대 시단의 행보와 연결지어 충분히 주목해 볼 만한 여지를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전대에 비해서 이 시기 시들 가운데 언어 미학이나 조형적 자질 면에서 두드러진 작품들이 다수 등장했던 것은 단순히 문학사의 퇴적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라고만 해석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 이면에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과 전대 시단이 펼쳐 보이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를 향한 시인 나름으로의 뼈를 깎는 의식적 노력이 뒷받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11. 1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