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1960~)
1960년생.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근무 중, 증조부를 여의고 난 후 귀향하여 읍내 시장에 서민금융(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한 신용조합의 일종)을 운영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백일장에서 「노을」이라는 제목으로 당선 있는 가작 상을 받은 다음부터 갖가지 백일장에 반 대표, 학년 대표,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된다.
경신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이곳에서 기형도를 만나 <연세문학회>에서 활동하게 된다. 교내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주관하는 <윤동주 문학상>(시 부문)에 응모하여 당선 있는 가작으로 입선한다. 1986년 6월 월간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 외 4편으로 드디어 등단을 한다. 대학을 졸업 후에 현암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1987년 겨울, 동양시멘트라는 회사에 취직하여 홍보 일을 한다.
1988년 5월에 결혼하여 현재 1남 1녀를 두고, 1991년 그동안 발표한 시를 모아 첫시집인 『낯선 길에 묻다』(민음사)를 발표한다. 1993년 8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린다. 그해 겨울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민음사)를 펴내고, 1995년에는 산문집 「위대한 거짓말」(문예마당)을 펴낸다.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연이어 소설들을 발표한다.
1997년에는 PC통신 하이텔에 장편 『궁전의 새』를 연재하기도 하였으며, 1997년 가을에는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공동 수상).
그외 주요작품
- 홀림
- 쏘가리
- 궁전의 새
- 검은 암소의 천국
- 새가 되었네
- 재미나는 인생
-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아빠
그러니 인생이여, 제발 부탁하노니 즐겁게 춤을 추시다가 그대로 멈출 줄 알지어다!
- 묻고 답하기
그의 글을 보면 그는 타고난 악동 같다. 그러나 왠걸, 어린 시절의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내성적이고 얌전한 소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면 물고기처럼 날뛰는 그 새파란 생선 같은 소설 속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외견상 뒤틀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순정한 그의 문학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 성석제는 촌놈이다 / 아니다, 그렇지 않다
조부모, 증조모, 부모, 고모 셋, 삼촌, 아홉 살 위인 형, 여섯 살 위인 큰 누이, 세 살 위인 작은 누이, 그리고 남동생, 여동생, 머슴까지 합해 총 15명이 밥상에 둘러앉는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덕분에 밥상이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저절로, 확실히 깨닫고 평생 밥상을 연모한다. 음식에 관한 추억 하나 더! 의외지만 그는 채식주의자다. 군대 있을 때 휴가 나왔다가 늘 멀리했던 돼지갈비를 처음 먹어보고 그 맛에 경탄했다. 동시에 ''히야, 이놈들이 이렇게 맛있는 걸 지금까지 저희끼리만 처먹고 살았구나!'' 생각하니 억울해서 옆자리 손님들에게 눈을 부라린 적이 있다. 중2 봄. 서울로 이사왔다. 말이 서울이지 구로공단의 배후지인 가리봉동은 수채가 질질 흐르고 비닐조각에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산업전사들이 사단급, 군단급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지옥 같은 수용소로 각인되어 있다. 어쨌든 지금 현재의 그는 촌놈 티가 하나도 안난다.
- 인간 성석제는 소설 성석제와 비슷하다 / 아니다, 그렇지 않다
1967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여리고 청초한 여자 담임을 맞아 깊이 사모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결혼식을 한다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무식한 학급 친구들은 공부를 안 하게 됐다고 환호작약했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30리 길을 울며 갔다. 다시는 선생을 사랑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2학년 때 담임선생은 영국의 대처 수상을 연상케 하는 강철같은 의지와 철권의 소유자. 감히 딴 마음을 품을 수 없어서 책으로 관심을 돌려 집에 있던 옥루몽, 금병매, 수호전, 연산군, 그림으로 보는 이야기 성서, 정체불명의 일본 추리소설 등등을 자나깨나 읽다가 아라비안 나이트, 햄릿, 자유교양신서 등으로 나아갔다. 아버지 친구인 책 대본소 주인이 이런 마구잡이식 독서에 일익을 담당했다.
4학년 때 백일장에 나가 ''노을을 보면 시집 간 누나가 생각난다''는 요지의 거짓말을 주워섬겨대서 가작상을 받았다. 그때 누나는 여고생이었다.
이 꼬마 문사는 드디어, 책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우스워졌다. 육성회장상을 받고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자 그 증세는 더욱 심화되었다. 긴 방죽을 따라 등교하다 보면 스스로 한심하고 슬퍼지곤 했다. 딱 한 번 아버지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속내를 드러냈지만 접수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어른들이 갖고 있는 그 웃기는 합의와 일체감의 제물이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서른 살이 되기까지 아이로 남아있기로 결정한다. 대신 자기분열을 연습한다. 이 노력은 빛나는 성취를 이루어 중학교 때는 사소한 악행을 일삼는 악동으로, 동시에 양순한 얼굴을 가진 모범생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이 기교가 더욱 세분화되어 포크를 들고다니는 일탈파로, 카톨릭 학생모임에 나가는 범생이로, 심지어 문예반의 교지 편집부원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어려서 읽어둔 책 덕분에 40대의 성인과 대등한 사고를 하는 이상한 고등학생이 되어 매타작 전문가인 선생들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자기분열은 대학생이 되어서 끝났다. 대신 세상을 두루 섭렵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려니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치고 빠지는 습관을 갖게 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짧은 시간 동안 깊게 몰두해야 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는 일상을 반납해야 했다. 365일 중 절반은 밖에서 떠돌았다.
군대시절에 벗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글의 위대함에 눈을 떴다. 파블로 네루다, 『창작과 비평 영인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미술의 역사, 음악사, 철학사, 전쟁사, 등 주로 사(史)자 돌림의 책들을 탐독했다.
이후 졸업하고, 시인이 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매년 사표를 쓰다가 93년 8월 사표가 수리되었다. 주특기를 발휘해서 신나게 놀다가 소설도 산문도 아닌 글을 책 한 권 분량이나 써서 펴냈다. 이듬해 『문학동네』 여름호에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라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 행세를 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악동의 일상적인 모습은 옹이 없는 생을 살아온 선비의 형세다. 온유하고 미덥고 지식이 많고 어진 선비. 그의 어디에도 야비하거나 치사한 다중인격자의 흔적은 없다.
- 성석제의 소설은 시시하다 / 아니다, 사소하다
그는 재미있는 글을 통하여 사소하게, 너무도 사소하게 우리를 웃겨준다. 유쾌한 웃음 뒤에는 잠깐, 햇볕에 반짝이는 눈물처럼 쌉쌀한 투명함이 있다. 그의 산문 정신의 요체는 ''사소주의''다. 작고 귀한 것, 흔하고 예사로운 것, 그 평범한 것들 속에 깃든 진리를 노래하듯 재미있게 쓰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도 유쾌해지고 싶은 사람. 그런 의미에서 성석제식 유쾌함은 전략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다.
- 성석제는 집에 있다 / 아니다, 여전히 떠돌아다닌다
이즈음 성석제는 경기도 이천시 자오리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답답하면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면서 고목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있다. 거기 있으면 참 좋단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이 통속적인 현실들을 시시콜콜하게 천착하기도 하고, 그런 현실을 멀찌감치 떼어놓고 바라보기도 한다. 가까이 두기와 멀리 두기가 능숙해져서 그 이야기를 마음놓고 희롱할 수 있는 지경이 되면 물찬 제비처럼 글을 써나간다. 그 사소하면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출전시키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 때도 부지런히 수집하고 메모하고 실천한다. 그의 빛나는 재능 뒤에는 이런 비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