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⑥ㅡ중국과 유럽이 움직이면 새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앞의 두 회에서 중국과 유럽의 내력을 살펴보았다.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시대의 이야기인데 읽고 나면 이상한 기시감이 남는다. 결함의 자리가 같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서는 그 겹치는 자리를 짚고, 거기서 무엇이 필요해지는지를 말하려 한다. 연재의 전환점이 되는 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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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진단, 하나의 결함
중국은 화폐의 기준을 밖에서 들어온 은에 두었다. 그 은을 필요한 물건으로 만든 것은 토지에 매긴 세금이었으니, 실물 기반은 안에 있고 기준은 밖에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은이 마르면 나라가 흔들렸고, 은이 빠져나가면 왕조가 무너졌다.
유럽은 다른 방식으로 어긋났다. 라틴통화동맹은 단위를 통일하고 발행을 나눠 가졌다가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며 주저앉았고, 유로는 발행을 통일하고 담보를 나눠 가졌다가 위기 때마다 분절에 시달린다. 두 번 다 절반만 통합한 것이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병의 자리는 하나다. 공동의, 안에 있는, 검증 가능한 담보가 없다는 것.
이 셋을 하나씩 뜯어보면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가 보인다. '공동의'가 없으면 유로처럼 위기 때 열아홉 개로 쪼개진다. '안에 있는'이 아니면 청나라처럼 남의 나라 광산 사정에 국운이 걸린다. '검증 가능한'이 아니면 오늘의 자산가격처럼 기대가 기대를 낳는 순환에 빠진다.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담보가 있는가. 필자는 해마다 실제로 발생하는 지대가 그것이라고 본다. 어디에나 있고, 밖으로 실어 나를 수 없으며, 시장에서 해마다 새로 확인된다.
그런데 담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한 나라가 자기 지대를 걷어 자기 화폐의 근거로 삼는 것은 국내 개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화폐들이 서로 만나는 자리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은 그 자리를 달러가 차지하고 있다. 무역대금을 달러로 받고 달러 표시 자산으로 쌓아둔다. 그런데 2022년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하루아침에 동결되는 장면을 보며 세계는 그 자산이 언제든 인질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400년 전 청나라가 은의 흐름에 목이 매였듯, 오늘의 나라들은 달러의 정치에 목이 매여 있다.
그렇다고 위안이나 유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 나라의 통화가 세계의 기준이 되는 한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뿐이다. 브릭스의 결제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달러를 벗어나려는 나라들이 위안에 기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패권 통화가 아니라 어느 패권국에도 속하지 않은 기구다. 각국의 지대 유량을 등록하고, 서로 검증하며, 그 위에서 결제를 매개하는 곳. 필자는 그것을 '세계연방은행'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름이 앞서간다는 지적에 대하여
세계연방이 없는데 세계연방은행이 웬 말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순서는 오히려 반대다. 연방이 있어야 은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은행이 먼저 만들어져 연방을 예비하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이 그랬다. 1930년 제1차 세계대전 배상금 처리라는 지극히 실무적인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이후 중앙은행들이 서로 만나 조율하는 자리가 되었다. 유럽 통합도 석탄과 철강이라는 두 품목의 공동관리에서 시작했다. 큰 것이 먼저 서고 작은 것이 따라온 적은 없다.
그러니 출발도 소박하게 잡는 편이 낫다. 유럽과 중국, 아세안과 글로벌사우스의 뜻있는 나라들이 출자하는 다자은행으로 시작해, 각국 지대 유량의 등록과 검증이라는 실무부터 맡으면 된다. 국제 청산, 생태 전환 투자, 공공 배당처럼 제한된 영역에서 먼저 써보는 것도 방법이다.
케인스가 브레튼우즈 구상 과정에서 제안한 국제청산동맹과 방코르는 특정 국가의 통화에 기대지 않는 제3의 화폐단위를 상상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례다. 다만 그것은 백지 위의 설계였다. 이번은 다르다. 앞선 회들에서 보았듯 이미 여러 나라가 토지를 평가하는 장부를 갖고 있다. 독일은 최근 전면 재평가를 마쳤고, 우리나라는 공시지가 체계를 30년 넘게 운영해왔다. 사다리는 이미 놓여 있고, 오를 사람이 없을 뿐이다.
세 가지 설계 원칙
기구를 만든다면 처음부터 못박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필자는 셋을 꼽는다.
첫째, 발행의 기준과 분배의 원칙을 분리한다.
지대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 발생하므로 대도시에 압도적으로 몰린다. 발행 기준을 그대로 배분 기준으로 쓰면 몇몇 거대도시가 발권력을 독점하게 된다. 그러므로 총발행량은 세계 총지대에 연동하되, 그 배분은 인구 1인당 균등이라는 별개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대는 어디서 발생하든 인류 공동의 것이라는 선언이며, 이것이 세계연방은행의 첫 조항이 될 것이다.
둘째, 순(純)사용가치로 계산한다.
사용가치가 커질수록 발행이 늘어난다면, 땅을 더 세게 쓸수록 화폐가 늘어나는 유인이 생긴다. 그대로 두면 습지를 메우고 숲을 밀어내는 일이 발권력을 키우는 길이 된다. 생태 파괴를 보상하는 화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자본의 훼손분을 차감한 순사용가치로 정의해야 한다. 이 조항이 없으면 지대본위도 결국 착취본위의 세련된 판본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보충성을 지킨다.
보편화되면 위험도 보편화된다. 지대 평가가 하나의 세계기구에 집중되고 그것이 포획되면 인류 전체의 화폐가 단일한 실패 지점에 걸린다. 그러므로 평가는 지역이 하고, 검증은 상위 단위가 교차로 하며, 발행만 연방이 맡는다. 마침 이것은 세계연방 자체의 설계 원리이기도 하니, 화폐 구조와 정치 구조가 같은 문법을 공유하게 된다.
입지는 어떠한가. 여기서는 원칙 하나만 말해두겠다. 어느 패권국의 수도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 국제통화기금이 워싱턴에 자리 잡음으로써 달러 질서의 원리를 주소지에서부터 수행했듯, 이 은행이 어디에 서는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 된다. 구체적인 제안은 이 연재와 성격이 다르므로 다른 자리에서 다루기로 한다.
필연이라는 말의 두 가지 뜻
여기까지의 논증이 옳다면 지대본위는 세계 화폐의 필연적 형태다. 다만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쓰일 수 있으니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원리적 필연이다. 공정한 보편 화폐의 기준으로 다른 후보가 남지 않는다는 뜻이며, 이 뜻에서 명제는 성립한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필연, 즉 가만두어도 그리 된다는 뜻인데 이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브레튼우즈는 전쟁이 만들었고 유로는 두 차례의 위기와 40년의 협상이 만들었다. 제도는 논리가 옳아서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힘과 준비된 대안이 만나는 자리에서 채택된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다른 답이 없다는 의미의 필연이지, 저절로 온다는 의미의 필연은 아니다.
이 구분이 오히려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준다. 위기가 닥쳤을 때 책상 위에 놓여 있을 대안을 미리 만들어 두는 일 — 그것이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지대를 화폐의 기준으로 삼으면 모든 나라가 똑같이 이득을 보는가. 그렇지 않다.
밀도가 높은 나라는 유리해지고 낮은 나라는 불리해진다. 파내야 값이 되는 자원을 가진 나라는 화폐적 지위를 잃고, 남겨두는 것이 값이 되는 자원을 가진 나라는 얻는다. 기축통화 특권을 누려온 나라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인구는 많되 발언권이 작았던 나라는 몫이 커진다.
이것은 설계의 결함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모두에게 조금씩 불리한 기준이야말로 공정한 기준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진영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준이라면 그것은 이미 패권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그렇다고 해서는 믿을 수 없다. 하나씩 따져보아야 한다. 다음 회부터는 그 검증에 들어간다. 먼저 위안과 유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살펴본 후, 우리 자신 한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자원국들로, 그리고 오늘의 화폐질서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들로 차례로 가볼 참이다.
먼저 우리 이야기다. 원화는 정말 아무 본위도 없는 피아트 화폐인가, 아니면 이미 어떤 본위 위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