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산[船岩山 ; 878.7m]은 의성군과 군위군 경계에 있다.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5권 경상도 의성현과 의흥현 산천조[山川條]에 "현(의성) 남쪽 50리 의흥현(현 군위군) 경계에 있다", "현(군위) 동쪽 17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두 군의 접경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 군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다.
의성군의 남쪽을 경계하며 뻗어난 선암지맥의 조종[祖宗] 선암산을 비롯하여 서쪽편 경계를 지으며 쏟아난 보현지맥의 산두봉[山頭峰] 등과 군위지역의 마정산[馬頂山]과 화산[華山], 영천의 방가산[方可山]으로 이어진 의성군 동쪽 그리고 남쪽 끝과 그 너머에 해당하는 일대는 의성과 군위 그리고 영천지역을 구획하며 교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이들 3개 시·군은 서로 가깝게 위치하면서도 28번 그리고 35번 국도와 중앙선 철도로 우회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 선암산과 북두산 사이로 차길이 열렸다. 노귀재를 지나 영천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길일 뿐이고, 분지형의 지세 안에는 경작지가 그리 많지 않다. 산 남쪽과 동쪽 의상대사가 창건한 수태사와 압곡사, 산 들머리 백암사의 규모 또한 아담하다. 숙박시설과 식당 등도 당연히 없다. 따라서 여태껏 접한 여타의 산행지와는 달리 인적이 드물고 호젓하기 적막강산[寂寞江山]인 곳이다.
비봉산에서 바라볼 때에 삼태성[三台星]의 북두산과 필봉의 선암산은 길격의 안대[案對]를 이루고 있다. 동쪽 끝 "한티재"로 멀경[П]자 형태로 두 줄기의 산은 연결되어 그 사이는 마치 배의 안쪽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두 산줄기 사이에 있는 길이 13km의 길이 포장은 되었다지만 교통이 드문 한적한 길이다.
하지만 사람의 두 다리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시절에 - 이 고개는 과거길 또는 관로가 아닌 일반인들이 즐겨다니던 상로로서 - 포항에서 상주방면으로 소금과 생선 등 바다의 산물을 내지로 옮겨주는"상포선"에 위치하였다. 상포선 길목에 위치하던 "대동리"는 조그마한 부락이면서도 상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기에, "한티재"는 포항에서 안계로 향하던 건어물 장수가 쉬어가며 한숨을 내 쉬었다"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처럼 붐비던 마을, 쉬지않고 내왕객이 드나들다 지금은 한산해진 고갯길처럼 오고가는 이들이 없어 오솔길 상태로 남겨진 산길은 거칠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뱀산"이라는 특이한 산 이름으로 찾아드는 이들이 그간 가끔씩 있기는 하였다. 이후 전국 일천 명산을 선정하여 시로 오른 김은남 시인이 선암산과 뱀산을 방문한 후에 산악잡지와 "일천산의 시탑"에 등재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등산로 이정표가 설치되고 드나드는 길이 더 나아졌으나, 김은남 시인이 그의 시에서 표현하였듯이 "등고선 제법 촘촘한 깊은 두메청산"을 찾아 몰려드는 등산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최근 매일신문에 13년간 새로운 산을 찾아오른 등산마니아 송형익 대구대 교수가 1천여 개의 산을 오른후, 천산대학[千山大學]을 졸업하였다 하여 그 기념으로 으뜸 산행지로 선암산을 추천하면서 산행하는 이들이 갑작스레 늘었다.
남북으로 마주한 선암산과 복두산 일대를 종주하면서 오르내려야 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수 없이 많다. 걸어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높낮이가 그리 심하지 않기에 큰 무리가 없는 산행길이다. 한 여름 낯의 길이가 길때 이들 5개의 산들을 꼭히 종주할 것을 권한다. 솔향짙은 넉넉한 숲길, 하나의 능선으로 연결된 길을 걷노라면 찔레꽃 떨궈진 뿌연 오솔길 거쳐 종주케 되리라.
선암산과 뱀산 남쪽 550m 이하 하단부 소나무 지대를 제하고, 580m이상 높은 곳에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등 산지 낙엽활엽수림이 우점하니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또한 화산암 바위가 많이 눈에 띄지만 실제 등산로는 육산으로 푹신 푹신하다. 반면 복두산과 북두산은 바위가 많은 골산[骨山]이다. 그리고 복두산 북사면 일부 굴참나무 활엽수림 일대가 있으나, 등산로를 포함하여 거의 전 구간 산소와 피톤치드가 풍부하여 머리를 맑게 해 준다하는 소나무 숲이 우점하고 있다. 더구나 키 낮은 안강형 소나무로서 여름철 그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구간조차 있어, 바위와 마사토 등산길은 달궈진다. 따라서 이들 양쪽 산길을 종주하는 것이 정말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오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북두산을 지나 마주하는 빙계계곡 서늘한 바람과 빙계온천 따뜻한 사우나를 마주할 때이면 - 지금은 영업하지 않고 있음 - 그러한 느낌을 더한다. (환경부 자료 일부 인용)
외향적 양[陽]체질의 사람은 음산[陰山]인 육산[肉山]과 궁합이 맞다. 반면 내성적인 음[陰] 체질의 사람은 바위가 많은 양산[陽山]인 골산[骨山]이 좋다. 체질에 따라 골산에 들러 바위에서 방사되는 골기[骨氣]를 취할 것인지 어떨지 선택하여 산행하면 더욱 좋으리라.
황제내경[黃帝內徑]에 "생각을 깊게하면 기가 막힌다.[思則氣結]"고 하였다. 고단백질의 음식을 많이 먹고, 욕심 사납게 생각을 많이하며, 가까운 거리조차 차를 타고, 컴퓨터로 쇼핑하며, 하루동안 힘 한번 쓰는 일 없이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 특히 많은 고민으로 기가 막혀 짜증나 하고, 쉽게 피로하고, 잠을 자도 몸이 무겁고, 매사 흥미가 없고, 만사 귀찮고, 두통이 일고, 밥맛이 없는 등 기운 순환 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은 선암산에 들것을 권한다. 산에 들면 건강이 보인다.
왜냐하면 제 스스로 걷고 또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 산행이다. 정착해서 사는 것이 식물이고, 움직이며 사는 것이 동물이다.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육체적 고행의 길로 스스로 나서야 한다. 정신적 피로를 벗어나는 길은 조금이라도 움직일 힘이 있다면 무거운 배낭을 매고 기진맥진하게 산행을하면서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몸의 효율을 높여 혈관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산행하면, 나이 먹으며 발생하는 골다공증 등도 막아낼 수 있게 된다. 어느 날에 새해를 맞이하여 해당분야 질병을 가지고 있는 전문의들이 권하는 체험적 건강관리법에서도 한결같이 등산처럼 균형있는 운동을 권하고 있음이다. (김영길 지음,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참고).
낙동정맥의 가지줄기 보현지맥은, 가사령에서 이어져오다 예재에서 2.1km쯤 지나서 다시 하나의 산줄기를 분기[分岐]한다. 바로 위천 북쪽 분수령을 이루며 큰골말냉까지 이어지는 길이 58.8km의 선암지맥이다. 큰골말냉에서 위천의 우안[右岸]으로 사라질 선암지맥을 따라 발걸음하면 매봉을 거쳐 두마재[豆馬嶺]에 당도하게 된다.
신발끈을 고쳐묶고 된비알 오름길 한달음에 치달아 도착하여 마주한 능선길은 동과 서로 나뉘어져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방향은 복두산, 북두산을 거쳐 빙산으로 향하는 길. 왼쪽 방향은 매봉산에서 한티재로 잠시 내려섰다, 뱀산과 선암산으로 이어지는 선암지맥이다. 하나의 산길로 묶을수 있는 이들 산들을 두고 옛날에는 모두 선암산이라 하였다. 그러나 맞은 편의 산을 복두산이라 하게 되었으며, 점차 여타 산들도 독자적 특성으로 저마다 이름들 갖게되었다. 현재는 5개나 되는 산들이 모두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산을 유람하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 깊이는 각자의 국량에 따라 정해지는데, 그 아취[雅趣]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얻는 것은 고작 산의 겉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산수를 보는 것은 미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경험이 많은 자라 해도 이름만 듣고 실제로 보지 못했다면 약한 마음에 이끌리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장서가 이하곤[李夏坤]이 남긴 말이다. 유명한 화가이자 시인인 이인상[李麟祥]은 산에 노니는 것을 독서, 음주, 미인을 보는 것에 비유하고, 산수의 품격[品格]을 알려면 신령한 정신과 지혜의 눈을 갖춰야 한다고 하였다. 산행할 대상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위하여 저마다의 산이 가진 유래와 사연을 알아보기로 한다.
건각[健脚]이라면 당일로 주파할 선암산 일대에는, 선암산 외에도 4개의-뱀산, 매봉산, 복두산, 북두산-산이 더 있다. 그런데 '선암산 인근 사람들한테 "선암산이 어디에 있느냐"하고 묻는다면 알아들을까 ?'하고 질문한다면, '그런 질문이 어디에 있느냐'하고서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가음면, 춘산면 사람들도 선뜻 알아듣지 못한다. 근처 사람들은 주로 "배미[尾]산"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이는 산 모습이 떠나는 배의 후미와 같다고 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산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다소 길어질 듯 싶다.
지도에는 "선암산"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주민들은 "배미산"이라 하듯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정보에 있어서도 선암산 지명에 대한 유래는 서로 다르다. 의성방면을 기준으로는 "산꼭대기에 큰 바위가 있으며, 그 모양이 배와 같이 생겼으므로 선암산이라 하였다"하였으며, 경계를 함께하는 군위군 의흥면 지호리를 기준하여서는 "산 대부분이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산 모습이 큰 배[大船]가 떠나는 형상이라 하여 선암산이라 하였다"하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 선암산이라 하게된 유래는 바위나 산이 배와 닮아서 불리워진 것이 분명한데, 주변 지명들을 살펴보면 좀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암산을 주산[主山]으로 뻗어내린 99골짜기[谷] 개울물의 집수지로 수원이 풍부하여 잠시내린 비만으로도 만수가 되는 순호지가 있다. 선암산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마을이름을 두고, 식용 물풀인 말이 다량으로 생산되는 인근 "순호지[蓴湖池]"라 이르는저수지로 인해서 조선시대부터 "순호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전에는 술모산 또는 탄호동[炭湖洞]이라 하였으며, 순호지 또한 숯못이라는 뜻의 탄지[炭池]라 하였다. 이는 순호리에서 선암산을 바라 볼 때이면, 산 모양이 배와 같이 생겼으므로 배의 기관실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마을을 척화, 연료창고 격인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을 탄호동이라고 부른 까닭이다.
선암산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수태사[水泰寺] 또한 배처럼 생긴 선암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에 배[舟]하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과 연관지어 붙인 사찰이름이다.
그런데 선암산과 바로 연접하여서 특별할 것 없는 "뱀산"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산이 위치하고 있다. 뱀산이라고 부른 유래 또한 선암산과 같이 저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틀리다. 의성쪽에서는 "산 모양이 큰뱀[大蛇]이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모양이라 하여 뱀산이라 하였다"하고 군위쪽에서는 "옛 전설에, 상전벽해[桑田碧海]때 이 산 바위에 배를 맸다하여 선암산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하여 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참으로 아리송하다. 이에 반해 귀천마을에서는 좀더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을 뒤산이 뱀이 은신할 곳이 많은 돌산[石山]으로서 험악하며, 여름철이면 땅꾼들이 수많은 산을 두고 꼭 이 산에 들러 많은 뱀을 잡아가는 뱀이 많은 산이여서 "뱀산"이라 불려졌다는 것이다. 실제 산 위로는 많은 돌 무더기들이 있으며, 남쪽 수태사에서 바라볼 때이면 선암산은 온통 바위 산으로 보이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비봉산, 청화산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은 많다. 그러나 "뱀산"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산은 없다. 이처럼 독특한 뱀산과 선암산은 지리적으로 너무나 가깝게 위치하여 있고, 두 산 사이에는 구분할 만한 것이 없어 독립된 산으로 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땅꾼들의 남획으로 요즈음에는 뱀들과 마주할 일조차 없으니 특색조차 없어졌다.
배[船의 훈]와 암[岩의 음]을 합하고 보면, 선암산은 곧 배암산(뱀)이 된다. 대동여지도에서는 반암산[般岩山]이라 표기되어 너럭바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더불어 근대 1/50,000지형도에서는 선암산의 곁의 능선에 뱀산[蛇山]이라 표기하고 있으니, 뱀이 많아서 그리 불려진 듯 싶다.
이같은 내력에 의한 것인지 뱀을 만났을 때, 뱀이 사람한테 달려들지 않도록 방어하던 "뱀"이라는 제목의 민요가 부근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 "니 구녁 칼 뜨간다(들어간다). 니 구녁 불 뜨간다. 빨리 빨리 뜨가라. 니 구녁 불 뜨간다. 니 구녁 칼 뜨간다. 니 구녁 불 드간다. 빨리 빨리 뜨가라"
옛 배의 뒷모습이 어떤지 자세히 알아볼 일이나, 주변 마을들과 연관되어 살펴본 내력과는 달리 선암산이 배와 닮은 점이라곤 선암산 정상과 두 산 사이 배 내부처럼 움푹한 모습과 근육질처럼 쏟아난 지능선 모습이 앞에서 바라볼 때 삼각형으로 돛단배 같다는 것이다.
이외의 산으로 매봉산은 산 모습이 생기 활발한 매와 같다고 하여 붙인 것이며, 복두산[福頭山]은 당초 산 모습이 복끈을 맨 사람처럼 생겼다하여 복끈복[僕]자 복두산[僕頭山]이라 하였으나, 후세 산 이름으로 좋지 않다하여 복두산[福頭山]이라고 산 이름을 바꾼 것이다. 북두산은 옛날 어느 노인이 이 산에서 기도 드리기 위해 산에 들어와보니 산 모습이 북두칠성처럼 생겨있어 북두산[北斗山]이라 칭하였다 한다.
선암산을 산행하고자 들머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안 5번국도에서 의성읍으로 들어서거나, 우회로를 따라 28번 국도로 영천방향으로 향한다. 금성면소재지 탑리 우회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회전 68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춘산·가음 방면으로 향한다. 이후로 빙계교를 지나며 왼편 빙계계곡과 빙계온천 가는 방향을 따르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면 대동리가 나온다.
김은남 시인은 능금을 소재로 하여 척화부락을, 천산교수님은 억새를 소재로 하다보니 백암사 뒷편으로 나 있는 길을 들머리로 하여 산행하였다. 그러나 이들 두 산길은 분명하지 않은 길이어서 잘 다듬어지고 이정표가 잘 된 산길만을 찾아다녔을 일반 산행자에 맞지 않다. 선암산과 북두산 일대를 종주할 경우 6~7시간 소요된다.
그러므로, 대동리경로당을 들머리로 선암산을 지나 북두산까지 산행하고 선바위 아랫편으로 내려서거나, 선바위 아랫편에서 복두산으로 올라서 원점회귀하는 산행을 권한다. 뜨거운 한여름 선바위로 방면으로 진입하면 더울 때 선암산 나무그늘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산만 골라 산행하고자 할 경우 4가지 등로중 취향에 따라 길을 선택한다.
첫째로, 선암산 만을 선택하고자 할 경우 대동리경로당에서 선암산 정상까지 오른후 뱀산을 지나 만나는 3거리 갈림길에서 한티재로 내려선 다음 원점회귀한다.
둘째로, 복두산과 북두산을 이어서 산행하길 원하다면, 춘산면소재지 이르기 이전 외소랑과 내소랑으로 향하는 오른편 길로 접어든다. 이후 소랑교 건너며 군위군 고로면과 접하는 두마재에서 복두산으로 오른다. 이후 북두산을 거쳐 빙계계곡 철교 또는 3주차장으로 내려선다. 그래도 힘이 남는다면 빙혈 뒷편으로 하여 빙산을 지나 양지저수지로 내려선다.
셋째로, 빙계계곡에 단순하게 놀러왔다 가볍게 산행하고자 할 경우에 빙혈 뒷편으로 빙산에 올라 정자에 들러 쉬다 내려온다.
넷째로, 한 여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길로 빙계계곡 3주차장에서 계곡3거리 거쳐 빙계계곡 철교 방면으로 하산한다.
산행은 대동리마을에 들어서 경로당 뒷쪽 농로를 따라 오르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지나 선암산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송이가 채취되는 구간이라 입산금지라는 팻말 앞에 가끔 산행을 포기하고 중도에 발길을 돌리곤 한다. 송이 채취시기 가을철을 피해 등산을 한다면 굳이 오해 살 일도 없을것이다. 서편으로 목젖처럼 생긴 순호지를 바라보며 오르면 척화삼거리 지나 억새 무성한 웅덩이를 마주한다. 이 곳을 정상으로 여기나, 웅덩이를 지나면서 만나는 헬기장이 산정이다.
선암산 정상 남쪽으로 선암지맥이 흐른다. 척화부락에서 선암산 정상으로 다가서기 이전 약 30m쯤 전방, 남쪽 아랫편으로 많은 리본이 걸려있어, 선암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잘못 내려서며 다소 문제가 되기도 하였던 코스가 있다. 남쪽 아래 내려서는 길, 조그마한 돌탑이 나선뒤 헬기장이 나선다. 지맥 길과 수태사로 향하는 갈림이다.
수태사 뒷편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오름길은 된비알길이다. 오를 때의 소요시간과 내려설 때 소요되는 시간의 차가 매우 크다.
그러나 중간 중간 마주하는 너덜컹 또는 바위로 구성된 봉우리에 올라서면 선암산 남사면 벼랑지대와 선암산 능선 위의 뾰족한 바위, 그리고 인각사와 마주한 옥녀봉 등이 바라보인다. 오름길 능선 위로 평탄한 길은 약 300여m에 불과하고, 매우 급격한 경사도를 보여주고 있다.
수태사 뒷편으로 마주하는 넓적바위, 쉰질바위, 병풍바위 등의 큰 바위는 호랑이굴, 손장군 피난굴 등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호랑이굴 등은 수태사 오른쪽의 오름길에 위치한다. 산행길이 아니여서 찾기 힘들다.
수태사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성에서 영천방향으로 향하다 고로면 화수삼거리 못미쳐 왼편으로 이정표를 따라 접어든다. 지호리 '수태들'을 지나 '수태지'가로 난 소로를 따라 북향을 하면 선암산 중턱 '북한골'에 위치한 수태사에 이르게 된다.
선암산 정상부터는 고도차가 크지 않아 즐기는 산행으로 더없이 좋다. 주변에 위치한 소나무를 바라보니, 구피목 껍질에는 깊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나무들은 과거의 기울어지고 쓰러짐, 한발과 산불에 의한 피해 등 자신의 생장[生長] 기록을 "나이테"의 형식을 빌어서 기록한다. 이 곳의 소나무는 일제 말엽의 혹독한 수탈의 흔적을 보여준다. 간간 남쪽으로 화산과 멀리 팔공지맥의 조종 팔공산이 바라보인다.
뱀산에 이르기 이전 826봉 지나 북향하여 한티재로 내리기도 한다. 뱀산 너머 군위군 고로면 낙전리 연밭골 3거리에서 북향, 한티3거리 왼편의 임도를 따라 한티재로 향한다. 한티재, 한숨섞인 고개건만 - 지금은 포장도로중이다 - 내려서는 발걸음 야박스럽게 가볍다.
한티재는 인근 군위지역에 있는 한티재와 구분하기 위하여 큰 한티재 또는 대한령이라 불리기도 한다. 임도 남쪽 옛길에 돌무지 하나가 있다. 이는 옛날 서쪽으로는 금성, 봉양, 상주로 가고, 동으로는 청송으로 향하는 고개마루에 위치한 하나의 무덤만하다. 원래는 이 마을 수호신으로 받드는 서낭신에 제사를 지내는 서낭당[城隍壇]이었는데, 임진왜란때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주민이 서로 협의하여, 스스로를 지키고자 창과 활을 구해서 무술을 단련하게 되었다 한다. 무술 단련의 일환으로 1년에 한번씩 궁술대회를 열어 명수를 뽑았던 "솔대박"이라 하는 곳으로, 노약자와 부녀자들도 어려운 일에 응하는 뜻에 여기를 지날 때 돌하나씩 던져두어 정신무장겸 유사시 석전[石戰]에 쓰고자 비축한 돌이라 한다.
한티재에서 지나쳐온 연봉을 바라보니 우뚝하고, 고갯길과 용소골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져있는 것이 철쭉꽃과 산딸기이다. 철따라 향기로운 냄새로 후각을 자극하기도 하고, 배고픈이 요기나 하시고 가라 한다. 앞으로 보이는 매봉산 능선들은 또한 빨리오라 이르니 끝까지 종주해 봄직하다.
매봉산으로 향하는 임도길은 넓으나, 가시딸기를 비롯한 잡풀이 뒤덮여 지나가기에는 부담이다. 매봉산은 임도 끝 부분 능선상 최고의 봉우리이지만 임도 오른편에 공터처럼 조그만 공간에 위치할 뿐 별다른 특징없는 봉우리이다. 복두산 또는 두마재에서 바라다 보면 뾰족한 느낌을 갖게할뿐. 매봉산을 지나며 오른편으로 혹처럼 밖으로 돌출된 바위 하나가 있어 위에서면 보현지맥의 백미[白眉]라 할 면봉산과 보현산 일대의 첩첩한 산 능선이 바라보인다. 앞산 그림자는 어둠과 같이 짙고, 그 뒤로 차차 엷어 지다가는 종내 하늘과 합해지고 마는 겹겹한 산릉의 미묘한 농담[濃淡]차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 있다.
두마3거리를 지나며 복두3거리에서 오른편 능선을 따라 북향하는 길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용산골 방향으로 내려서게 된다. 내려서는 길 왼편으로 콧잔등 같은 바위를 볼 수는 있지만, 맞은편 복두산 뚜렸한 등로에도 불구하고 내려서는 길은 관목지대 비탈길이며 희미하다. 한 두어개의 리본이 겨울 보일뿐 때 묻지 않은 청정산길에 관목층은 진달래, 졸참나무, 대사초, 생강나무, 조록싸리, 쇠물푸레 등으로 이뤄져 있다.
복두산으로 향하기 위해서 제대로 매봉산으로 이르는 능선길에 내려서면 길은 가늘고, 좁고 또 길다. 마치 복두의 끈처럼 생겼다. 용산골 아래서 바라볼 때이면 복두산 아래의 바위 언덕과 높은 능선들이 2개의 단을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 복끈처럼 길게 생긴 능선으로 인하여 복두산이라고 칭하지 않았을까 싶다. 452봉을 지나면서 낭길따라 너럭바위 지대에 들러보면 양 옆으로 불룩하니 바위가 솟아있어 어려서 읽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는 경문왕에 대한 설화가 생각나게 한다.
복두산에는 신라시대 산 중턱에 천연적으로 물이 솟아나는 곳이 있었으며, 사찰도 있었다 한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렸다 하며, 눈병과 피부병에 좋은 효험을 보였다하는 약물탕은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하였다. 복두산정 300년 넘은 노송으로 모양이 둥글다하여 도리솔이라 하는 소나무가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이들 명소들을 찾고자 노력하였으나 - 7~8부 능선에 물 고인 웅덩이와 주춧돌 흔적을 조금 발견하였을 뿐 이었다. 산행하시며 숨은 그림찾기 한번 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
512봉에서 용산골로 향하는 길과 마주하게 된다. 아랫편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후 등산로는 주로 너럭바위 등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춘산3거리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편으로 접어들어 553봉을 지나 내려서는 길은 춘산농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른편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산길 끝부분에 건천이 있어 평소에는 내를 건너 빙계계곡으로 향할 수 있으나, 비가 왔을 경우에 통행이 불가능하다.
북두산 정상은 노송으로 둘러싸인 묘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주변 7개 봉우리의 배열이 북두칠성을 닮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묘지 바로 아래로 내려서는 길은 선바위로 내려서는 내리받이 길이자, 돌이 많이 흩어져 덮힌 비탈 너덜지대로 매우 미끄럽다. 남서 방향으로 주의하여 내려서야 한다. 남동방향으로 향했을 경우 선암산 일대를 전망하기에 좋을 바위 지대를 만나 조망하기는 좋으나 그리로 내려서는 길은 비탈이 심하다.
내려선 다음 만나게 되는 선돌[立巖]은 옛부터 전해오는 말로 천지산신을 극진하게 믿어 오는 주민을 위해 천신이 신장을 시켜 이 바위를 여기로 운반하여 왔다고 하며, 진시황 때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구축하고자 신원 미상의 선녀가 치맛자락에 돌을 싸고 운반하면서 용산 밑에 뜨린 것이라고도 한다. 백암사 보살님 이야기로는 제석[帝釋]할매가 지고 다니던 베게가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다. 이 바위에 치성드리면 소원 성취한다 여겨 주민들이 성암[聖巖]으로 아끼고 보호하기도 하였던 적이 있던 바위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을 피해 종주하기 위해서는, 선 바위에서 빙계온천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북두산으로 향하는 오름길이 나선다. 북두산, 복두산, 매봉을 거쳐 선암산으로 접어들면 선암산 시원한 나무그늘 지대로 인해 종주하기 쉽다.
계곡까지 이르고자 할 경우에는 온천3거리를 거쳐 빙계3거리에 이른다. 3거리에 이르러 철교로 내려설 것인지 아니면 빙계계곡 3주차장으로 내려설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빙계계곡으로 향하는 길, 햇살좋은 날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땀구멍마저 말려 버릴 것 같다. 더구나 안강형의 키작은 소나무로 가릴곳 없으니 뜨겁게 달궈진 바위와 사질토양으로 더위를 더한다. 그러나 서두를 일은 없다. 가는 길 바위 모퉁이 어디에선가 장엄한 석양이 하늘 한 귀퉁이를 붉게 물들이는걸 엿볼수 있다면 좋으련만, 길가에는 멧돼지들이 목욕하던 웅덩이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한 여름이라면 빙계계곡 빙혈과 풍혈의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도 좋으리라. 아님 마루금을 이어 형성된 빙산에 올라 여름철이면 팔각정자 위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금성산과 비봉산 아래에 위치한 가음 양지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힐 수 있다.봄이면 벚꽃단지 속을 걷게 된다. 가을철엔 도토리도 줍게 된다.
선암산의 남으로는 위천, 북으로는 쌍계천의 발원지 용소골이 있다. 용소골에는 용소와 폭포, 상여바위, 봄이면 벚꽃이 만발한다는 벚꽃 웅덩이 들이 있다. 인적이 드문 산길로 폄하[貶下]하는 글을 올린 이들도 있었다. 문화유산 탐방을 제대로 하시는 분들은 유명지역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 또는 잘 다듬어진 문화재 지역을 탐방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지역 일반인들이 주로 찾지 않는 문화재를 주로 찾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찾는 산은 저마다 다를 터지만, 옛 사람들은 산수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도 찾았지만, 그 의상의 의미를 부여하곤 하였다. 특히 산에 들어 풍악을 베푸는 것을 보고는 꽃 아래에 향을 피우고, 차 앞에 과자 놓은 격이라 하였다. 폄하하는 것도 좋지만 종주산행을 해 본 다음에 해도 늦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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