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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51구간 제2부
승부역-배나무고개-비동마을
20260917
1.배바위산의 수호신 엄나무여,
민족과 조국의 평화를!
동서트레일 51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정코스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비동마을-배바위고개-승부역-양원역을 거쳐 낙동강의 원곡교를 건너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전곡마을에서 마치게 되는데, 주최측에서 식당을 고려하여 역방향으로 탐방한다고 한다.
동서트레일 안내판에서는 동서트레일 51구간을 이렇게 안내한다. "동서트레일 51구간은 백두대간 협곡열차의 출발지인 분천역에서 시작하여 배바위산을 거쳐,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조성된 낙동강세평하늘길의 핵심 구간인 승부역을 경유하고, 양원역을 지나 원곡교(전곡리)에 도달하는 구간입니다. 이 코스는 낙동강 물길과 영동선 철길을 따라 걷는 느림의 길로, 낙동강 협곡의 절경과 함께 산간 철도역들을 연결하는 매력적인 트레킹 코스입니다. 특히 승부역은 낙동강변의 기암괴석과 태백준령 험한 산간 협곡을 꿰뚫어 달리는 철로와 함께 일대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두메산골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 간이역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구간입니다. 비동마을부터 원곡교까지는 51구간 지선이 있습니다.(약 2.8 km)"
동서트레일 51구간 역방향은, 양원역에서 <낙동강 세평하늘길>의 '낙동강비경길' 구간과 동행하여 승부역까지 이어간다. 51구간 역방향은 승부역에서 <낙동강 세평하늘길>의 '낙동강비경길' 구간과 작별하고,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승부역-분천역)과 동행하여 배나무고개를 넘어 비동마을로 내려간다. 비동마을에서 <낙동강 세평하늘길>의 '분천비동길' 구간과 만나는데, 이제부터는 세 이름의 탐방로 <동서트레일>과 <낙동정맥 트레일>, <낙동강 세평하늘길>이 분천역까지 동행한다. 결론적으로 동서트레일 51구간은 <낙동강 세평하늘길>과 <낙동정맥트레일>과 동행하는 탐방로이다. 동서트레일 51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승부역-비동마을) : 승부역(承富驛) 매점에서 승부역 플랫폼(platform, 승강장)으로 건너가 승강장의 여러 시설물과 승부역 세평쉼터 내부를 살펴보았다. 승강장 맨 위쪽에 승부역을 알리는 명품 시비가 서 있다. 명품 시비에는 1963년부터 18년 동안 승부역에서 근무하던 김찬빈 역무원이 쓴 시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가 적힌 시비가 서 있다. 원래는 화단 석벽에 쓰여졌으나 1996년 역사가 기존 위치에서 낙동강 맞은편으로 옮겨지며 '하늘도 세평'이라 적혔던 그 친필은 사라졌고, 2001년 11월 20일 승강장홈에 수달 모양의 자연석으로 제작한 시비를 세워 옛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승부역 시비에서 흰색 건물인 세평쉼터 안으로 들어갔다. 김광규 시인의 시 '승부역에서', 김명상 여행작가의 '협곡으로 떠나는 기차여행' 등 여러 게시물을 살피고 나와 승부역 표지판과 철도역이야기 안내판의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 승부역' 글을 읽었다. 그 아래에 현재는 전국적으로 운행되지 않는 핸드카(Hand Car)를 영동선 승부역에서 유일하고 전시하고 있다. 승부역 세평하늘을 체험하는 체험장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석각은 세평 석각 속에 체험자의 몸을 뉘어 보는 시설물인데, 세평 크기가 얼마나 좁은지를 실제로 체험해 보는 것 같다. 영암선 개통기념비는 승부역 아래 투구봉으로 오르는 출입구에 있는데 직접 가지 못하고 승부역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승부역을 대충 살피고 승부역 매점에서 메밀전병을 안주로 하여 옥수수막걸리 한 병을 비웠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승부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약45분을 보냈으니, 일행들은 배바위고개를 벌써 넘어갔을 것 같다. 승부역에서 목적지 분천역까지 남은 거리는 아직도 9.9km, 서둘러야 한다.
승부역에서 언덕길을 내려가며 낙동강변에 우뚝 솟은 용관바위를 살피지만 나무숲에 가려 자태가 분명하지 않고 용이 살았다는 낙동강의 굴통소(窟筒沼)만이 검푸르게 보인다. 승부길을 따라 석포면 승부리와 소천면 분천리 지역을 이어주는 낙동강의 세월교를 건넜다.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에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이 적혀 있다.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 산촌 지역 소득 창출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산림청, 봉화군, 코레일 등이 힘을 모아 추진한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이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일대에 2015년 12월에 준공됐다고 한다. 그 일환으로 배나무고개로 올라가는 옛 벌목길(산판길) 출입구에 '하늘세평숲'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쉼터정자, 이글루와 산타할아버지, 돌탑, 백호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백호는 6마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아기 백호 두마리가 풀밭에서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하늘세평숲' 공원에서 낙동정맥트레일과 동행하여 배바위고개를 넘는다. 이 임도는 벌채가 번성했던 시절에 벌채된 나무를 운송하기 위하여 조성된 벌목길(산판길)로서 재무시(GMC)가 나무를 싣고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 시절을 지나 이제 이 임도는 낙동정맥트레일로 조성되어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산림휴양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숲길은 산림경관자원이 풍부한 구간으로, 숲길에는 낙동정맥트레일에서 세운, 이 지역을 안내하는 게시판과 시 게시판 등이 설치되어 있어 탐방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시조 속 주인이 되어 절로절로 숲길을 간다. 이 시조는 <하서집>에 '자연가(自然歌)' 제목으로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한역(漢譯)되어 있다고 한다.
화전민이 살던 뽕나무골을 지나 황급하게 돌틈으로 숨어드는 뱀 한 마리를 만나 섬찟해진 가슴을 안고, 승부역에서 약 1시간 5분이 걸려 해발 808m 배바위고개에 오른다. 배바위고개는 북쪽의 비룡산과 그 동남쪽 배바위산 능선의 안부(鞍部)로서 배바위고개에서 배바위산 정상까지는 740m,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주력이 좋은 탐방객은 배바위산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지만 길손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상에 배(舟)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배바위산이라 불리는 배바위산 아래의 배바위고개는 1968년 11월에 일어난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무장공비들이리 군경에 쫓겨 월북을 기도하던 무장공비의 이동경로였다고 한다. 고개에서 숨을 고르다가 알림판의 글을 읽으며 민족분단의 아픈 역사와 지금까지도 변화되지 않는 분단 현실에 가슴이 아리다. 평화여, 통일이여!
분천역까지 아직도 7.2km 거리가 남아 있다. 배바위고개 아래에 배바위산 수호신 엄나무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배바위산에는 사람의 혼을 뽑아먹는 요망스러운 도깨비가 살았다. 마을 주민들이 도깨비에 혼을 빼앗기는 사태가 일어나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며 불안하였다. 마을의 한 노인이 이 도깨비를 물리치기 위해 '나무껍질에 가시가 촘촘히 난 엄(嚴)나무'를 배바위고개에 심은 뒤 도깨비가 사라져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알림판 앞의 한 뿌리 다섯 줄기로 솟은 나무가 엄나무인 듯한데, 노목이어서인지 가시가 보이지 않는다. 이 나무는 500여 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길손의 안전을 수호해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속 신앙에서는 나무와 바위를 신성시한다. 배바위고개의 엄나무 또한 민속 신앙의 길상목(吉祥木)이다.
배바위고개를 넘는 이 숲길은 예전 소장사들이 춘양장과 내성장으로 소를 팔러 다니던 길이어서 이 지역민들은 소장시길이라 부른다고 한다. 소장시길은 가파른 골짜기를 꼬불꼬불 내려간다. 가장 깊숙한 골짜기를 건너 평탄한 숲길을 따라가면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비동골 출입을 금지하고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는 상수원 보호 철망 울타리가 나온다. 배바위고개에서 약1.8km 거리의 비동골 소장시길을 내려와 상수원 수질보호 물탱크를 지나 마지막 골짜기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비동마을 첫 민가를 만난다. 배바위고개에서 약40분이 걸렸고, 승부역에서부터는 4.5km 거리, 1시간 45분이 걸렸다. 이제부터는 분천길을 따라 비동마을의 여러 숙박시설을 지나가게 된다. 분천역까지 아직도 5.4km 거리가 남아 있다.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5.6km
탐방 시간 : 5시간 23분
승부역 기찻길 건너편 플랫폼(platform, 승강장)에 승부역(承富驛) 표지판과 승부역 안내판, 그 왼쪽 위에 세평쉼터 흰 건물, 그 왼쪽 위에 승부역 시비가 있다. 철길을 건너 '승부역 시비'를 보러 간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1963년부터 18년 동안 승부역에서 근무하던 김찬빈 역무원이 쓴 시로서 원래는 화단 석벽에 쓰여졌으나 2001년 11월 20일 승강장홈에 수달 모양의 자연석으로 제작 입석하였다고 한다.
승부역(承富驛) 세평쉼터 건물 내부로 들어가 게시물들을 살펴본다. 오른쪽에 옛 승부역사(承富驛舍)가 자리한다.
덜컹덜컹 ~ 가을낭만 싣고, 느릿느릿 ~ 붉게 물든 백두대간 속으로. 김명상 여행작가, 한국경제신문 2017.11.12.
V트레인을 타고 바라본 가을풍경 : 눈을 들어보니 산이 붉게 변했다. 쌀쌀한 날씨도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삶에 찌들다 올해도 벌써 끝이 보인다. 이대로 멀어지는 가을을 보내기는 너무나 아쉽다. 여행을 통해 심신에 힘을 불어넣어 보자. 열차를 타고 아찔한 산천을 만나고, 조용한 산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는 자연을 찾아 떠나보자. 고속열차 KTX의 시속은 300㎞에 육박한다. 반면 백두대간협곡열차 V트레인의 속도는 시속 30㎞에 불과하다. 더 빠른 속도를 갈망하는 현대사회에서 V트레인은 느림의 미학으로 탑승객을 맞이한다. 강원 태백시 철암역과 경북 봉화군 분천역을 오가는 V트레인의 V는 협곡(valley)을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백두대간의 협곡과 오지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열차다. V트레인 탑승객은 느리게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영화를 보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자연을 천천히 볼 수 있다. 열차 안에 들어서면 옛날 열차처럼 천장에 선풍기가 매달려 있고, 한쪽에는 목탄 난로가 놓여 있다. 열차임에도 화장실이 없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도 흘러간 옛 노래다. 하지만 V트레인의 진가는 출발 후 바로 나타난다. 천장을 제외한 공간 대부분에 유리창을 설치해 눈만 돌리면 바깥 풍경이 보인다. 가을의 절정으로 향하는 단풍 물결이 눈앞을 지나고, 철길 주변에 난 억새가 손을 흔든다. 계곡을 흐르는 물과 산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노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열차 내부에 등이 없어서 터널을 지날 때면 내부가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객차 안에 붙은 야광 스티커만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터널이 길 때는 신나는 음악과 레이저 조명쇼도 벌어진다. V트레인은 2015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이후 주말마다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철암~승부~양원~비동~분천역을 운행하며, 승부역과 양원역에서는 잠깐 내릴 수 있다. 작은 역이 주는 호젓함이 청량하게 다가온다. 승부역에는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시가 쓰인 바위가 있다. 1963년부터 1981년까지 18년 동안 승부역에서 근무한 역무원이 썼다고 한다. 첩첩산중에 하늘마저 좁게 느껴지는 승부역의 정경을 잘 담은 명시가 아닐 수 없다. 양원역에는 한국 최초의 민자역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철도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에 마을 주민들은 승부역까지 걸어가야 했다. 철길을 걷다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번의 민원 끝에 영동선 개통 33년 만인 1998년 4월에 기차가 양원역에 정차하게 됐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감격해서 울고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원역은 열차가 서기만 하는 임시 승강장이어서 제대로 된 역사가 없었다. 불편을 느낀 마을 사람들이 직접 승강장과 대합실을 만든 것이 지금의 양원역이다.
철암역을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V트레인은 분천역에 도착했다. 일명 ‘산타마을’로 통하는 곳이다. 원래 분천역은 무인화가 진행되던 쓸쓸한 역이었으나 2013년 V트레인과 O트레인 개통을 계기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산골에 있어서 바람이 많고 춥다는 점을 고려해 ‘산타마을’로 테마를 정한 것이다. 실제로 역 주변에는 산타클로스, 루돌프, 북극곰 등의 조형물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80m 길이의 짧은 레일바이크가 마련된 곳에는 여름 복장을 한 산타클로스 조형물이 있다. 크리스마스 소품을 이용한 각종 포토존도 설치돼 있다. 역사 바로 옆에는 ‘체르마트’라는 영문 간판과 알프스 설경 사진이 있다. 2013년 분천역과 스위스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한 것을 기념하고자 설치한 것이다. 분천역은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2014년 12월에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분천역은 간이역의 설움을 딛고 지난해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되는 등 성공적인 역 리모델링 사례로 떠올랐다.
객차 맨 뒷칸/ 마지막 난간에 기대어/ 내 삶의 검은 궤적/ 영동선 레일 위에/ 낱낱이 고하며 달려온 뒤안길//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몰아치는 바람 앞에 사람을 내리고/ 사람은 무욕의 눈밭에/ 때 묻은 등짐을 부린다.// 태초의 고요/ 시간의 맷돌이 멈춘/ 저 원시림의 골짜기는/ 마침내 한 마리의 산새를 풀어 놓았다.// 세 평의 하늘만 차지해 놓고도/ 미안해하는 역무원이 있는 곳// 기다리는 사람 없어/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무념의 대합실 창밖에/ 은백색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 귀향인도 출향인도 아닌/ 나를, 이렇게 데려와/ 고향의 그리움 일게 하는/ 마음의 종착역이여. - 김광규의 시집 <환생한 새우(2009)> '승부역에서' 전문
승부역 연혁 : 1955.12.30 영암선(영주-철암간) 개통/ 1956.01.16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96.09.17 신축역사 이전 준공/ 1998.12.13 환상선 눈꽃순환열차 운행/ 2001.11.20 승부역 상징석 입석(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2013.04.12 중부내륙순환, 협곡열차 개통운행/ 2016.09.22 새 맞이방 완공/ 2016.10.11 세평하늘체험 석각 설치
●영암선 개통 기념비 :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간 87km)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기념비로서 당시 공사 중 가장 힘들었던 구간인 이곳 승부역에 이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철도공사 등록문화재 제540호) ●투구봉 약수터 :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치열한 전투 중 위장병과 옻이 올라 패전 상태였으나 이곳 약수터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어놓고 약수를 먹고 바르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전투에 승리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이곳을 투구봉 약수터라 칭하게 되었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길이라 여기며/ 길 일거라 헤메이는 발 길 조차도// 이젠 발먼지 폴폴거리지 않는 폐교 가는 길/ 낙동강 구비감아 화전밭 옆 물길/ 山돌아 川돌아 첩첩산중 기찻길// 온갖 다홍으로 제 살을 비벼내어/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어김없이 花단풍이 자지러지게 겨운 날// 산촌, 하릴없는 물레방아 곁엔/ 시정 모르던 까르르 웃음소리가/ 물보라처럼 시나브로 환청으로 포롱거릴 때// 오직 승부역엔 가을병치레 하듯 그린내 나그네들이/ 꽃 입술처럼 사랑의 맹세를 한다/ 열쇠처럼 부질없는 손가락을 건다// 금방 손등 희롱하던 그 물결은/ 야속히 물길 따라 떠나 버리고/ 시방 겨드랑이 서성이는 이 바람도/ 그 물길따라 사소한 바람이겠지// 그리워 사무치다 철길처럼 외롭더니/ 적막도 지쳐 평행선처럼 담담하다// 길은 어디에나 있다/ 놓으려 훌쩍 길 떠나니 승부리더라 - 허광희의 '승부역에서' 전문
영동선(嶺東線)은 본래 동해북부선·철암선(鐵巖線)·영암선(榮巖線)·삼척선(三陟線)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963년 5월에 이들 철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영동선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총연장은 193.6km이다. 현재의 영동선 노선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건설된 것은 철암선(철암∼묵호간)으로 이미 1940년 8월에 개통되었으며, 삼척선(삼척∼북평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간)은 1963년 10월에 개통되었다. 영동선 가운데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하는 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12월 개통되었다. 영암선의 건설은 해방 이후 산업의 부흥을 위하여 최초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낙동정맥 트레일 봉화 구간은 1구간 석개재-승부역(29km), 2구간 승부역-분천역 (9.9km), 3구간 분천역-우련전(23km)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약속 : 한국철도공사는 '대한민국의 내일 국민의 코레일'이 되기 위해 다음 사항을 성실하게 실천하겠습니다. 우리는, 배려를 실천하는 철도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주는 철도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담은 서비스로 친근한 철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편의를 생각하는 철도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구체적인 서비스 이행 기준을 정하고 이를 성실히 실천할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 - 한국철도공사 임직원 일동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낙동강세평하늘길 : 백두대간 협곡열차 구간의 낙동강 세평하늘길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한국관광의 별'에 빛나는 분천 산타마을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을 거쳐 석포면 승부역에 이르는 총길이 12.1km에 이르는 봉화의 대표적인 힐링 트레킹 로드다. 분천역은 백두대간 협곡열차의 출발점으로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산타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승부역은 1960년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낙동강세평하늘길 트레킹은 분천역에서 비동승강장에 이르는 4.3km의 분천비동구간, 비동승강장에서 양원역에 이르는 2.2km의 체르마트 구간, 양원역에서 승부역에 이르는 5.6km의 양원승부 비경 구간으로 총 12.1km에 달하는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으로 도보로 4시간이 소요된다. 분천비동구간 : 분천역~비동승강장(4.3km)/ 체르마트구간 : 비동승강장~양원역(2.2km)/ 양원승부 비경 구간 : 양원역~승부역 (5.6km)
●낙동정맥트레일 : 낙동정맥트레일은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에서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의 이름인 '낙동정맥'과 트레킹 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지칭하는 '트레일(Trail)'이 합하여 형성된 합성어로 경북 봉화에서 청도에 이르기까지 10개 시군의 낙동정맥 주변을 잇는 역사 문화 자원을 연계한 숲길이다. 총 70km에 이르는 낙동정맥트레일 봉화구간은 깊고 깊은 오지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그 어느 구간보다 청정 지역을 걷는 트레킹 코스로 자연을 느끼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힐링트레킹 코스다.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총 3구간으로 나눠져 있다. 1구간 : 석개재- 샘터마을- 석포면- 승부역(29km)/ 2구간 : 승부역- 배바위재- 비동마을- 분천역 (9.9km)/ 3구간 : 분천역- 여우골- 남회룡분기점- 우련전(23km)
●외씨버선길 :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의 4色길이 모여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같다고 하여 외씨버선길로 불려지게 되었다. 외씨버선길 봉화 구간은 총연장 73.2km이며 모두 네 구간으로 나누어지는데 우련전에서 분천역을 연결하는 22km 구간이다. 보부상길인 8구간은 분천역에서 춘양면사무소까지 18.5km 구간으로 약 6~7시간 소요된다. 춘양목 솔향기길인 9구간은 춘양면사무소에서 두내약수탕까지의 17.6km 구간으로 약 6~7시간 소요되며, 10구간인 약수탕길은 두내약수탕에서 용운사까지의 15.1km 구간으로 약 5~6시간 소요된다.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 승부역 역(驛) 이야기, 1956년 영암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다 :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20여년간 승부역에서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역사 담벼락에 썼던 시는 어느새 승부역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1956년 1월 1일 영암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문을 연 승부역, 너무 깊은 산속이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었던 승부역은 간이역에 이어 신호장으로까지 격하되고 만다. 그러나 2004년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 인기가 높아져 다시 보통역으로 돌아온다. 1996년 역사가 기존위치의 강 맞은편으로 옮겨지며 하늘도 세평이라 적혔던 그 친필은 사라졌지만 승부역 앞 조형물에 그대로 남아 옛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지역 이야기, 전쟁의 승부가 결정 났던 심산유곡 : 승부역은 자동차로 가기에 어려운 깊은 산골짜기 역으로, 전쟁의 승부가 결정 났던 마을이라는 지역명에서 유래한다. 승부역에는 1955년 영암(영주-철암)선 개통과 더불어 공사 도중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영암선 개통기념비(등록문화재 제540호)가 세워진다. 기념비가 승부역에 들어선 이유는, 어려운 공사였던 영암선 가운데에도 특히 낙동강 최상류 협곡 가장자리에 있던 승부역이 가장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승부역과 양원을 잇는 약6km의 비경길은 때 묻지 않은 물길과 산세를 간직한 빼어난 절경을 갖춘 곳이다.
걸어온 승부역(承富驛) 플랫폼(platform, 승강장)을 돌아보았다. 중앙에 승부역(承富驛) 표지판과 철도역 이야기 안내판, 그 위에 세평쉼터 흰 건물, 그 오른쪽에 옛 승부역사(承富驛舍)가 있다.
수동으로 운전하여 철길을 따라 공·기구를 운반하던 핸드카(Hand Car)는 현재 운행하지 않는다.
핸드카(Hand Car)는 인력, 궤도재료 및 보선작업용 공·기구를 운반하기 위해 사용된 장비로, 개통 초기부터 열차 운행이 적은 선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 운행하지 않고 유일하게 영동선 승부역에 보존하고 있음.
1996년 승부역사가 낙동강 맞은편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승부역 매점과 쉼터가 승강장 건너편에 자리한다.
석각은 세평하늘을 체험하는 체험장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승부역 맞이방은 승부역 승강장에 설치되어 있다. 때마침 영동선 여객열차가 승부역에 도착하였다.
강릉역을 출발한 영주행 동해산타열차가 승부역에 도착하였다.
분천역 방향 영동선 언덕에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서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새겨진 '영암선 개통 기념비'는 2013년 국가 문화재로 등록됐다고 한다. 영암선(영주-철암)은 1949년 4월 착공, 1955년 12월 30일 준공됐으며 건설공사 구간 중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승부역에 1955년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투구봉숲길 탐방은 세 코스로 구분되는데 투구봉 정상과 질금전망대를 돌아오는 3번 코스를 탐방해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낙동강 세평하늘길(12.1km)은 '분천-비동' 구간(분천비동길, 4.3km), '비동-양원' 구간(체르마트길, 2.2km), '양원-승부' 구간(낙동강비경길, 5.6km) 등 3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낙동강 세평하늘길 12仙境 중 제1선경 용관(龍冠)바위, '용이 쓴 갓바위' : 전주 이씨 7대조인 절충장군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오게 되어 재를 넘으려고 할 때, 천둥과 번개가 심하여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자 꿈에 용이 나타나, "나는 여기 굴통소(窟筒沼)에 살고 있는 용이니라. 이 재는 나의 등이고 재 너머 바위는 나의 것이니 감히 이 재를 넘어 바위를 만지고 지나가는 자는 모두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재를 넘지 말고 낙동강으로 돌아서 가라."고 하자 그대로 행하여 무사하였다고 한다. 그 후 절충장군은 이 바위를 용관바위라 부르고 매년 제를 올려 자자손손 큰 복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승부역을 살피고 승부역 매점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승부역에서 약 45분 동안 머물게 되었다.(12:29~13:14)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승부역은 옛날 전쟁이 났을 때 승부(勝負)가 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승부마을의 이름을 땄다. 지금은 ‘부를 잇는다(承富)'는 한자를 사용하는데, 일설에는 옛날 이곳이 다른 마을보다 잘 살았고 부자 마을이었다고 한다. - 위키백과
승부역 매점에서 메밀전병에 막걸리를 마시고 승부역을 떠난다. 이제부터 9.9km 거리의 분천역까지 낙동정맥트레일과 동행한다.
승부역 언덕길에서 용관바위를 바라본다. 동서트레일은 낙동강의 세월교(잠수교)를 건너 하늘세평숲으로 올라간다.
봉화 지역 낙동강에는 세월교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석포면 승부리에서 세월교를 건너 소천면 분천리로 넘어간다.
승부길을 따라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 '하늘세평숲'으로 올라간다.
세월교를 건너 투구봉 아래에 자리한 승부역과 낙동강의 현수교를 올려보았다.
배바위고개 2.7km 지점, 하늘세평숲 출입구에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은 산촌 지역 소득창출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산림청, 봉화군, 코레일 등이 힘을 모아 추진한 사업으로,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일대의 숲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숲길과 조형물을 조성하여 2015년 12월에 준공됐다고 한다.
하늘세평숲 출입구에서 낙동강 건너편 영동선 위쪽의 영암선 개통기념비를 다시 바라보았다.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 사업으로 조성된 하늘세평숲 입구에 물레방아와 쉼터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협곡 복합경관숲'의 하늘세평숲에 백호 조형물과 그 왼쪽에 동서트레일 상징 솔방울 조형물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백호 조형물 옆에는 이글루와 산타할아버지, 눈사람 조형물 및 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동서트레일 상징 솔방울 조형물 앞에서 세평하늘숲, 낙동강 건너 승부역과 투구봉을 뒤돌아보았다.
세평하늘숲 위쪽에 돌배나무인지 멋진 고목(古木) 한 그루가 그윽하게 자란다.
배바위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나무다리를 건넌다.
골짜기의 나무다리 건너편에 산사태 취약지역 안내판, 낙동정맥트레일 안내도, 목장승 한 쌍, 이모작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낙동정맥 대장군과 청정봉화 여장군 목장승 한 쌍과 낙동정맥트레일 안내도를 살펴 보았다.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구간은 1구간 석개재-승부역(29km), 2구간 승부역-분천역 (9.9km), 3구간 분천역-우련전(23km) 등 3개 구간 전체 61.9km 거리의 탐방로이다.
논 한 뙈기를 찾아 볼 수 없는 이 주변 사람들은 주로 화전을 일구어 밭농사를 하면서 살아왔다. 비교적 해발고도가 높아 유독 겨울이 춥고 긴이곳 사람들은 사계절 내내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2모작을 해왔다. 봄에는 옥수수와 콩, 조, 수수를 심어 가을에 거두어 겨울양식으로 쓰고, 그 거둔 자리에 바로 보리와 밀을 심어 봄에 거두어 여름양식으로 사용하였다.
이 길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구간입니다.
동서트레일 남색 리본과 주홍색 리본 한 쌍이 나뭇가지에 묶여 있다.
배바위골 골짜기에서 언덕길로 이어간다.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철다리를 건너 맞은편 골짜기로 넘어간다.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배바위산 골짜기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벌목길(산판길)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앞에 벌목길(산판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숲길은 벌채가 왕성했던 시절에 벌채된 나무를 운송하기 위하여 만든 길이다. 비포장으로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급하고 굴곡이 심한 이 길에 재무시(GMC)가 나무를 싣고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한때는 산림황폐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으나, 목재생산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현재는 규모 있는 임도로 발전하여 건강한 숲을 경영하기 위한 기능과 산촌의 생활환경 개선 기능, 그리고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산림휴양기능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낙석주의 구간을 지나간다. 낙석주의 이정목에 동서트레일 상징 솔방울 로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협곡의 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낙동강을 향하여 흘러내린다.
돌계단이 예쁘게 조성된 돌계단길을 오른다.
너덜지대 골짜기를 지나간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자연가(自然歌)' 알림판이 설치되어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 하서 김인후의 시조. <하서집> 수록 한시 자연가(自然歌)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배바위골을 이쪽과 저쪽으로 건너며 배바위고개로 올라간다.
골짜기에 설치된 철다리를 건너 계속 올라간다.
배바위고개 1.1km, 승부역 1.7km 지점, 풀들이 푸르게 덮여 있는 습지 지역을 지나간다.
배바위골 오른쪽 골짜기길을 올라서 골짜기 위쪽의 철판다리를 건너 왼쪽 골짜기길로 넘어간다.
철판다리를 건너 배나무골 숲길을 계속 올라가 또 하나의 작은 다리를 건너간다. 숲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이곳은 일대에 뽕나무가 많은 뽕나무골 지역으로 풀이 풀들이 우거진 알림판 아래는 샘터이다.
뽕나무골은 과거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으로 뽕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졌다. 당시 화전민들에게 뽕나무의 잎을 이용한 잠업은 중요한 생계수단 이었다. 화전민들은 한겨울을 제외하고 사시사철 물이 흘러나온 이 샘터를 중심으로 정과 애환을 나누며 생활하였다. 국토의 황폐화 방지와 화전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1966년「화전정리에 관한 법률」의 공포와 1975년 화전정리 5개년 계획을 실시함에 따라 이 뽕나무골에 살던 화전민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으며, 현재 이곳에는 그들이 생활했던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지나가는 탐방객에 놀라서 뱀 한 마리가 황급히 돌틈으로 몸을 숨기기 위해 달아난다.
배바위골 완만한 숲길을 올라 드디어 배바위고개가 이마 위에 보인다.
해발 808m 배바위고개에 긴나무의자들이 설치된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왼쪽 배바위산, 오른쪽 비룡산으로 오를 수 있다.
배바위고개에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배바위산까지 740m 거리이다.
배바위산 나들목 난간 기둥에 배바위고개 808m 표지판이 붙어 있다. 배바위산 높이는 967.9m이다.
마을주민들이 배바위고개로 불렀던 이 고개는 1968년 11월에 일어난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시 우리 군경에 쫓겨 월북을 기도하던 무장공비의 이동경로이다. 울진, 삼척의 해안으로 침투한 공비들은 사회주의 사상 선전, 양민학살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가 18명에 이르는 등 과거 이데올로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분천역 7.2km 지점, 배바위고개 쉼터 난간 기둥에 동서트레일 상징 솔방울 조형물 로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배바위고개에서 비동골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비동골 숲길의 배바위산 수호신 엄나무 알림판을 지나간다.
옛날 배바위산에는 사람의 혼을 뽑아먹는 요망스러운 도깨비가 살았다. 인근 마을에서 산나물을 뜯던 처녀들도, 나무하던 머슴들도 도깨비에 홀려 혼을 빼앗겼다. 사람들이 두려워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니, 도깨비를 쫓을 방책으로 고갯마루에 엄나무를 심으라고 알려주었다. 엄나무는 나무껍질에 가시가 촘촘히 난 까닭으로 엄(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걷지 않고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귀신에 옷자락이 가시에 걸리고 모습이 무섭다 하여 오래전부터 문설주에 가로 걸쳐 놓는 관습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방책을 알면서도 도깨비를 만나 혼을 빼앗길까봐 두려워 누구도 엄나무를 심으러 산에 가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을에 나이 많은 노인이 고갯마루에 엄나무를 심고 내려와 며칠을 앓다 죽었다고 한다. 엄나무가 심겨진 이후로는 도깨비를 본 사람도 혼을 빼앗긴 사람도 없었고, 나무는 500여 년간 이 자리를 지키며 길손의 안전을 수호하는 길상목(吉祥木) 역할을 해왔다.
이 나무가 배바위산의 수호신 엄나무일까? 한 뿌리에서 다섯 줄기가 솟아 있는데, 수령 5백 년이 넘는다고 한다.
비동골 숲길에 하얗게 핀 참취꽃이 맑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면, 비동골의 숲길은 평탄해지며 부드럽게 굽이돈다.
분천역 6.9km 지점, 비동골 비탈길은 굽이돌며 내려간다.
비동마을 1.9km 지점의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을 지나 비동골을 내려간다.
비동골의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분천역 6.5km 지점의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을 지나 천천히 내려간다.
분천역 6.4km 지점, 비동골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를 건너 숲길로 이어간다.
비동골 깊은 골짜기를 건너 굽이돌아 비동골 언덕의 평탄한 숲길을 따라간다.
비동골 언덕의 숲길을 따라 비동마을 1.2km 지점의 낙동정맥트레일 이정목을 지나간다.
비동골 이 숲길은 예전 소시장 장꾼들이 소를 몰고 오가던 소장시길(소장사길)이라고 한다.
여기 사람들은 이 길을 소장시길이라고 한다. 이 길을 통하여 가까이는 춘양장으로 멀게는 내성장을 왕래하는 길이다. 옛날 소를 팔고 사는 소시장 장사꾼들은 큰 장들을 찾아다니는 큰 장꾼이었다. 도로교통이 열악하여 자동차로 소를 운반하는 것은 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로서는 소를 직접 몰고 이 장 저 장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수십 마리의 소고삐를 주~욱 연결하여 괴나리봇짐에 먹을 것을 지고 산속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며 먼 길을 오가는 그 길이다. 옛 추억을 간직한 그 길이 전국의 길손들을 부르는 트레킹길로 다듬어졌으니 가히 격세지감이라 할까!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비동골 출입을 금지하고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는 철망 울타리 옆을 지나간다.
상수원 수질보호 물탱크가 비동골 상류 출입 금지 철망 울타리 안쪽에 설치되어 있다.
봉화군 소천면 분천2리 비동골의 나무다리를 건너 비동마을 첫 민가로 내려간다.
나무다리에서 비동골 첫 민가 앞을 굽이도는 골짜기 물을 내려보았다.
비동골의 나무다리를 건너서 나무다리와 상수원 수질보호 물탱크를 뒤돌아보았다.
나무다리 출입구에 설치된 낙동정맥트레일 알림판과 도하주의 표지판을 지나 내려간다.
분천역 5.5km 지점, 비동골에서 만나는 첫 민가이며 비동마을 맨 끝 민가 뒷길을 따라 민가 앞으로 내려간다.
비동마을 끝 민가 뒷길을 따라 민가(분천길 556) 출입구 앞으로 내려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