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질 수밖에 없다. 47살의 한여름이 지나가고 있는데, 내 삶은 과연 무엇인가? 이 나이 쯤 되면, 자서전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혹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인생론에 관한 책을 쓰기에도 적당하다. 개인적으로 난 자서전을 43살에 정리해 봤다.
오늘 유난히 존경했던 선생님이 많이 떠오른다. 그분의 10대 풍광을 읽으니 아름다웠다. 선생님이 하신 일이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선생님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밝은 영감 또한 주셨다.
가장 인상에 남은 구절은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과연 나는 현재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아직 결혼을 안 했고, 나의 원가족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심리상담가 일을 하고 싶어져서, 청소년 상담사 3급 자격증 취득에 골몰하고 있다.
요즘 공부를 하며 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많이 읽는다. 거기에 보면 지금 이 순간을 철저히 살 것을 이야기한다. 다른 때에 가서 잘 살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내 가슴은 뛰고 있을까? 아쉽게도 하루를 잘 마무리 지으며 살고 있긴 하다. 그런데 열정적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다.
내 인생에 사람이 빠져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여인이 아직 나에게는 없다. 원가족과 지인이 있을 뿐이다. 홀로 사는 삶이 좀 적막해서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글도 작성하게 되었다. 100세 시대라면 이제 인생의 중반을 거치고 있는 시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자 스캇 펙은 중년에는 젊을 때 실수를 범하고 잘못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좋은 시절이라고 했다. 이분의 말은 너무 정확해서 반박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내 가슴이 뛰고 있는가, 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서는 고통과 집착하지 않은 상태면 좋은 삶이라고 말한다. 나의 욕심에 괜히 욕망을 앞세우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존경했던 선생님이 말한 유혹의 계절이란 것을 좋아한다. 옛날에는 불혹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매혹적인 나이가 마흔 중반이다.
혼자 살아도 충분하다는 마음이면, 결혼해도 된다 했다. 난 아직 이 마음에는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홀로 살기를 즐기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은 있다. 이것은 나의 마음 상처가 깊은 상태라서 그럴 수 있다. 어제도 난 아주 크게 분노했다.
나와 같은 기질의 사람은 심리치료를 매우 잘 받아들인다. 그런데 모든 장점에는 단점이 있어, 나의 경우에는 분노가 많다. 난 세상을 바꾸려고 해서, 아주 극단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다. 이제는 좀 성숙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치기 어린 모습으로 살고 있다. 언제 나는 어른스러워질까?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면 좋다 한다. 맞는 이야기인데, 나의 경우에는 너무 미성숙해서 문제가 따른다. 피카소조차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곤 했다.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것을 익히는 데 평생이 걸렸다.’라고 말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명절이 다가오면 그림책을 살 기쁨에 설레어 하셨다.
세속의 수행자처럼 살기 좋아하는 나인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 듯하다. 오늘 거사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됐다. 속세의 수행자, 즉 집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거사다. 난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고, 수행하는 삶을 계속 추구하고 싶다. 결혼해서도 수행자답게 살 수 있으면 나에게는 최상이겠다.
김신웅 행복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