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반야사 (1)
반야는 범어 Ptajna의 음역이다. 지혜 또는 혜, 명 이라고 번역 한다. 흔히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고 할때 지혜란 이 반야에서 온 말이다. 현대는 지식이 도처에서 맹위를 떨치고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과학적인 지식, 철학적인 지식, 경제학적인 지식들이 많다. 이러한 지식들이 발달함에 비례하여 세계는 또한 많은 문제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식은 실천이라는 중요한 개념과는 별개의 문제이고, 현대는 대부분 지식과 실천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는다. 가까운 역사만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켜 사회에 큰 재앙을 일으킨 사람들 중에 지식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어 전쟁에서 무수한 인명을 살상했으며 경제, 정치, 법률 등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독재정권, 부패정권의 앞잡이로 활동을 했고 지금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덕과 윤리의식이 낮게 평가될 때 지식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해는 너무도 막대하다. 반면 지혜는 실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지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반야의 지혜는 실천과 불이이다. 실천하지 않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미국에 이 반야의 가치를 놓이 들고 나선 반야사는 1981년도에 석지명스님이 주축이 되어 설립을 했다. 현재 경기도 청계사 주지로 계시며 중앙종회 사무처장으로 한국불교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지명스님은 80년 미국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주위 신도들의 요구와 한국불교 포교 등 기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반야사를 창건했다. 이때 정관음행, 황보덕상, 정안락심보살 그리고 지명스님이 화주로 나서 모금에 앞장섰다. 지명스님은 나성에 반야사를 세우고 2년 쯤 있다가 82년 말에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공부해야 되기 때문에 나성의 반야사를 떠났다. 그래서 그 후 반야사는 성도스님, 필라화엄사 주지 법장스님, 평일스님, 진오스님 등을 거쳐 현재 주지 현철스님이 89년 11월부터 주지로 있다.
한국불교계의 원로 월주스님은 반야사 회주로 80년대 후반에 1년 중 몇 개원씩 반야사에 주석하기도 했다. 아드모어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반야사는 어려운 풍파를 몇 번 겪었다. 이 과정에서 창건때 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이 반야사를 떠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신도회장인 박찬수 조일로행부부, 박대자행, 정관음행, 김명희부부, 김정옥 부부, 김강준, 이본적화 황보덕상, 유보승화, 장일미행, 황화택, 오정연 보살등 창립 또는 창립 직후부터 줄곧 반야사와 함께 한길을 걸어온 분들에 의하여 이제 반야사는 어떠한 곤란이 닥쳐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됐다. 박일로행 보살은 “부처님은 같은 부처님이니까 불자들이 다른 사찰로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생길 때에는 가슴이 아팠다. 30년 도반이었던 사람이 개종하는 것을 볼 때는 참 서글펐다.”고 그간 겪었던 어려운 순간들을 회상했다. 어렵게 반야사를 창건하였고 신도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던 지명스님이 반야사를 떠나게 되자 무척 서운하고 섭섭했지만 그 길이 곧 지명스님을 위하고 한국불교를 위하는 길이라 히해하고 곧 지명스님후원회(회장:유보승화)를 조직하여 지명스님 학업을 재정 지원을 했다. 이러한 후원에 힘입어 지명스님은 템플대에서 88년도에 “천태의 불이철학” 이란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속]
1991년 2월 10호
* 이 글은 15년 전 글이다. 현재의 반야사는 많은 변화가 있다. 한국의 법주사, 불국사 등의 후원을 받아 한국전통 선방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주지 현철 스님도 미국생활 16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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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불법이 널리 널리 퍼져 온누리가 불국토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