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나를 술 마시게 한다.
-기대의 잔-
엿장수에게 엿을 선물한 것은 유죄다. 대통령이 나를 술 마시게 한 것도 죄가 된다. 국민에게 한 대통령의 말이 거짓일 경우 왜 죄가 되지 않겠는가. 역대 대통령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지상의 천국을 만들어 놓겠다고 호언장담하곤 했다. 그리고 자기만이 능력 있고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들은 절망과 아픔을 남긴 채 죽거나 권자에서 떠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곤 하였다.
호수가 마르면 주변의 나무들이 시들고 종래에는 새들마저 살 곳을 잃게 된다. 그만큼 경제가 불황이면 가난한 사람들은 죽을 맛이다. 더구나 문화적 건강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의 기근 속에 낭만이 사라지고 거짓과 폭력이 난무해진다. 요즘 거만한 놈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난개발에 의한 부동산 투기로 소득의 격차가 두드러지면서 빈부가 생기고 서민들의 가계가 줄어드니까 소비시장마저 얼어붙는 바람에 영세 상인들은 대통령을 원망하며 욕하고 홧술까지 마시게 된다.
대통령은 누군가. 국민을 대표하는 나라의 통수권자다. 그러므로 행복한 국민은 대통령이 만들어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은 바로 우리 손으로 뽑는다. 미래 지향적인 삶의 수월성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걸고 뽑아준 대통령은 부강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공약(公約)이란 바로 후보자가 국민에게 제시하는 수표다. 누구나 인간다운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그 같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회적인 욕망과 문화적 공공의 혜택을 제공하겠는 약속이다. 그러나 당선을 위한 구호에 그치는 회유가 더 많다. 그래서 얼마 안가 인기는 하락하고 민심이 이완되며 대통령은 타도의 대상으로까지 질타를 받는다.
해방 후 많은 정치사적 불행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도기 정치혼란과 자유당의 부정부패, 3공의 유신독재, 5공화국 횡포, 6공의 불법 통치자금, 문민정부의 IMF, 국민의 정부-과도한 퍼주기, 참여정부-경제철학의 빈곤 등등으로 엄청난 인간적 가치관이 훼손되고 국가적 손실을 가져왔다. 물론 그 같은 실정(失政)들은 개혁이 남긴 아픔으로 저항의 피해가 또한 컸던 것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국가번영을 위한 노력과 업적이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나라의 국익을 깡그리 망쳐놓았다고 몰아붙이는 것도 억지에 불과하다. 필경은 대통령의 깊은 고뇌와 과업이 있었기에 오늘날 국민소득 2만 불에 도전하는 입장이고 보면 굉장한 성장이요 발전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산고를 겪긴 했지만 그 같은 아픔과 함께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이제 실현단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사상이 고양되고 사회,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유죄가 된다. 우리의 갈 곳은 아득하고 험하기도 하지만 정의사회가 구현되고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더 나은 바른 사회를 위해서 이 시대가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도덕적 기능이고 경제는 사회적 공유물이다. 그러기에 절대로 편견이 용서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울부짖으며 서로 맞섰던 것은 그런 편견 탓이었다.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개성이 존중되는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남는가. 내가 사는 동안 나와 관련되지 않은 세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권리에는 반드시 내 의무가 따른다. 그것이 영혼과도 깊은 상관이 있는 세상의 이치이며 사회적 질서다. 다만, 나의 규범으로 다른 사람의 규범을 제압하거나 다스리려고 하면 혼란과 분쟁의 씨가 된다. 하여, 정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건가가 아니라 내가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곧 나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애정이 깃든 눈으로 정치를 봐야 한다. 아무리 정치가 밉더라도 함부로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치가 흔들리면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의 파탄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총체적 곤경에 빠져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제각각 혼미를 거듭하고 온통 뒤죽박죽 몸살이다. 이에 우리는 홧술에 욕설도 좋지만 그것은 소모적인 싸움일 뿐이다. 조금은 후회가 되더라도 과거의 아픔에 연연하지 않을 일이며 이제는 기대의 잔을 높이 들고 (-‘대통령을 위하여!’-) 힘차게 외쳐야한다. (마지막)
<후기>
´96년 봄에
‘대통령이 나를 술 마시게 한다(불법 통치자금에 관해서)’를 <한맥문학>에 발표한 바가 있다. 그때 감옥 갈 각오로 전두환 현 정부의 비리를 들춰서 까뭉갰더니 여러 사람들로부터 정치에 나설 의양으로 썼느냐며 본의 아니게 칭찬까지 받았다. 나는 이에 고무되어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 건전한 비평을 하고자 마음 다지고 자료수집 했었다.
그러나 갈수록 점차 초조해지기만 했다. 아마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자료만 수집한 것이 아니라 상당량의 초고를 마친 상태인 지라 빨리 정리해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야 <광진문협> 카페의 ‘칼럼’ 창을 보고 용기가 움직여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나를 술 마시게 한다.’는 <여명의 잔-총론부분><구국의 잔-박정희><血의 잔-전두환><분노의 잔-노태우><아픔의 잔-김영삼><우울한 잔-김대중><유감의 잔-노무현><기대의 잔-결론부분>으로 역대 대통령 순서대로 구성했다. 좀 더 성실하게 칼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을-전형적인 형식은 그나마 독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겁먹은 생각으로 쓴 것임을 변명 삼는다. 그리고 칼럼의 성격상 是보다는 非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썼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독자의 흉년에 끝까지 읽어주신 애독자가 고맙다.
‘대통령이 나를 술 마시게 한다.’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광진문인협회><한국신문학인협회><방실회>등 여러 카페에 동시 올렸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도 보내 주었다. 사실 별 인기는 없었지만 읽어주신 분들의 귀한 격려에 힘을 얻어서 끝맺게 되었다. 고개 숙여 인사드리는 바다.
을유년 섣달 정촌 김 동 기 드림
첫댓글 아니 엄청난 글이 올씨다 옛날 군부독재시절 목슴걸고 써야햇든 아슬 아슬한 구절도 많앗고 장장 현재의 대통령까지 두루두루 날카롭게 해부하신 김동기씨에 박수보냅니다 모두 술마시게하는 전 현 대통령들 귀가 간지러울 것이요 잘읽고 갑니다
정촌 선생님 대단한 용기입니다. 올리신 글 때론 공감하며 때론 아슬아슬하게 읽엇습니다. 그 용기에 감히 박수를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주제로 일관성있게 잘 쓰셔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암튼 우리나라 역대 통치자들의 특징이 잘 부각되었네요. 속 시원한 글 자주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