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몽(깨달음)
변미순
유독 스산했던 2월의 첫날, ‘봄이 오기 전에, 나부터 쉬어도 될까요?’라는 문장이 심장에 박혀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매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메일이 온다. 온전히 나를 쉬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사무쳤던 터라, 그 문장이 시린 가슴을 더 저몄다. 지난 해는 풀리지 않는 행정상 매듭에 발이 묶여 온몸으로 속앓이를 했다. 그 알 수 없는 무게감은 새해 벽두부터 잠결에까지 파고들어, 좀처럼 꾸지 않던 이런 저런 꿈을 꾸게하였다.
첫 번째 꿈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3년형을 선고받은 이야기였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왜? 손주들이 가장 예쁘게 자라는 시간을 놓쳐야 한단 말인가?” 울부짖으며 깨어보니, 뺨 위에는 이미 뜨거운 눈물이 흘러있었다. 문득, 손주들의 해맑은 웃음이 내 삶의 가장 큰 낙인데, 무슨 더 큰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나 자문하게 되었다.
며칠 뒤, 두번 째 꿈속에서는 키 크고, 일그러진 얼굴의 낯선 이가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내가 무슨 죄로 죽어야 합니까? 나를 아시오?” 외마디 비명 같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미지의 인물이 총을 겨눈 그를 거칠게 내동댕이 쳤다. 크게 다친 그의 모습에 경악하며 잠에서 깼다. 묻지마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의 주인공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가슴 한편에는 가면을 쓴 얼굴로 타인의 업적을 도적질 해 가는 갑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결국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예순이 넘은 이 나이에도 여전히 ‘을’의 입장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현실이 너무나 아팠다. 그 속상한 만큼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내내 가슴 속에 구겨 넣고, 다시 구기고, 펼쳐 망치질하듯 다져왔던 그 감정들. 꼬박 일 년을 버리지 못한 미움이 결국 나 자신을 잠식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 수없이 다짐하고 마음을 살피었건만, 명상도 부족했고, 마음도 끝내 다스려지지 못했다. 걱정, 염려, 미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얼마나 무섭고, 부질없는 것인지, 스스로 짓누르고 있던 미움은 육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였고, 무서운 꿈으로 이어졌다. 악몽같은 지독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행복과 행운이 이미 내 삶에 가득했는데 앓이할 가치도 없는 일에 왜 연연해 왔던가 후회뿐이었다.
목욕탕도 가고, 혼자 가까운 길을 드라이버했다. 바람부는 대로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의 리듬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며칠을 쉬었다. 소름끼치도록 혹독한 꿈은 그렇게 나를 깨우쳤다. 미움의 틀에 허덕이던 나에게,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으로라도 구하려 다녀가신 듯 마음은 따뜻해졌다.
마음을 털어내고 나니 갑자기 명치 끝이 아팠다. 속이 쓰려 숙면취하기도 어려웠다. 내시경 검사한 결과, 심한 십이지장궤양으로 두달간의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속을 끓여왔구나 싶고, 이제 표를 내는 장을 고이 치료만 잘 하면 된다. 그 모든 해답이 결국 나의 마음 안에 있었던 것을 깨닫고 어리석은 꺼풀 하나를 벗었다. 평화는 내 마음에 있었고, 이제 꺼내어 맘껏 누려보려 한다. (202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