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를 대할 때 느끼는 것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애정을 인간에게 품을 수 없다는 걸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려면 내가 인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존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겠지만, 혹시나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초인의 고독과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인 나는 그저 새끼 고양이라도 사랑해주고, 인간은 또 인간으로서 존경하며 가깝게 지내고, 서로 조심하며 미워하지 않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 하야마 요시키 <새끼고양이> 중에서
Miserable misanthrope(불행한 인간혐오자), 이 말이 때때로 나를 위협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넘치지만,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 가로막혀 그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우리가 작은 짐승에게는 비로소 순수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오만함의 표출일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이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작은 짐승을 사랑하는 것은 불행하고 연약한 인간이 ‘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 데리다 도라히코, <고양이의 죽음> 중에서
그날 저녁 나는, 사랑하는 자식이 유괴를 당해 죽은 부모도 있는데, 고작 고양이가 죽었다고 이렇게 운다면 그런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안 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슬프다.
봄추위 속
내 무릎에 다가와
잠들었네
어째서 이렇게 슬픈 걸까, 슬픔을 잊으려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각자의 세계를 따로따로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일부만이 서로 접촉하거나 겹치는 원이다. 그에 비하면 개나 고양이는 내 원 안에 완전히 들어 있는 동심원 같은 게 아닐까. 게다고 고양이의 마음은 전혀 알 수 없기에 그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셈이니, 그것은 고양이의 삶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의 마음이다. 10년간의 내 삶의 일부, 그것을 잃은 것이 꼬마의 죽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인간의 죽음보다 더 슬픈 게 당연한 듯한 생각이 든다.
-사토 하로우, <애묘 꼬마의 죽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