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49,1-6 / 시편 71,1-2.3과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 요한 13,21ㄴ-33-38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13,37-38)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바로 그날 밤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리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의 허세는 거의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베드로가 지닌 성격상의 모든 담대함이 죽음에 직면해서는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 목숨 때문에 겁이 나서 몇 시간 전에 한 확고한 말(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완전히 생존에 관한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것은 죽음에 대한 강한 공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공포는 분명힌 악마가 부추긴 것입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쉽게 우리를 하느님의 평화로부터 떼어내어 죄로 인도하는지 보여줍니다.
물론 죽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정상적인 것이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죽음은 본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성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죄 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게 되신 거룩하신 구세주께서도 이 혐오감을 느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직면해서는 예수님도 두려움과 슬픔에 압도되셨다는 사실에 우리가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26,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두려움은 베드로의 두려움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드러내시지만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신뢰 행위로 끝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에 공포에 압도되었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부활 사건 이후에 베드로가 보여준 모범은 신뢰의 자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 이전에는 이런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더라고, 성령 강림 때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날 위층 방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밤에 죽음의 공포에 압도되었던 바로 그 사도들이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불꽃은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이 용기 있게 끔찍한 순교에 맞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마비될 정도로 죽음에 공포에 압도당할 때, 우리도 성령의 선물을 받았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께서,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죽음에 직면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승의 삶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더라도, 성령께서는 우리 스스로는 결코 불러올 수 없었던 과감한 용기를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성령의 능력에 잠기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으며 악마의 맹렬한 유혹을 모두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성찰과 중재기도
1단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십시오.
눈을 감고, 셀를 통해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 자신을, 모든것을 아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어린아이로 상상하십시오.
사랑이신 하느님의 눈길을 통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기중심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관점만이 중요하기에, 이 단계는 성찰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2단계: 성령의 인도를 청하십시오.
하느님 은총의 빛 안에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짧은 기도를 바칩니다.
3단계: 하루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했는가?"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루의 어떤 두드러진 순간이 떠오르면 거기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러나 이 단게는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의 양심 성찰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에 주목하며
그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내어드리십시오.
4단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관점에서 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임종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영원한 삶과 관련하여 이전 단계에서 떠올랐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이 단계에서는, 그날 하늘나라를 위해 나에게 준비된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십시오.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5단계: 내일을 예비하십시오.
다음 날을 미리 바라보고 예비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 단계에서는, 또 다른 하루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선물은 하느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음 날 일어날 일들, 특히 특별한 은총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맞닥뜨릴 시련이나 기쁨의 순간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그 은총 안에서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단계를 충실히 하면, 삶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는 사람들 가운데 지나친 걱정이나 긴장과 싸우는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걱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성모송을 바치십시오.
후에 완덕의 길이 제 앞에 열렸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고, 언제나 가장 완전한 길을 추구해야 하며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저는 또한 이해했습니다. 거룩함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각 영혼은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고,
그분 사랑을 위해 많은 것을 할 수도 있으며, 거의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희생 가운데에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제 어린 시절 때처럼 외쳤습니다.
"주님, 저는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저는 반쪽 성인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고통받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 모두를 선택하겠사오니 제 의지의 봉헌을 받아들이소서."
저는 제 기억에 깊이 각인된 어렸을 때의 꿈을 기억합니다.
제 생각에 정원에서 혼자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무 가까이에서 두 마리의 끔찍스러운 마귀가 석회 통 위에서,
발에 무거운 사슬이 묶여있는데도 놀라운 정도로 민첩하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그것들은 제가 불타는 듯한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겁을 먹은 듯, 눈 깜박할 사이에 석회 통 바닥으로 들어갔다가, 어떻게 그 통에서 나오서는 정원 쪽으로 나있는 세탁실로 도망가서 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겁쟁이인 것을 보고는 뭘 하려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문 쪽으로 갔습니다.
그 가련한 작은 녀석은 내 눈을 피해 어떻게 숨을지 알지도 못한 채로 탁자 위를 뛰어다니며 그곳에 있었습니다.
가끔 그것들이 가까이 와서 불안한 기색을 띠고 창문을 통해 보면서, 제가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아주 절망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물론 이 꿈이 특별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그 꿈을 통해, 은총 상태에 있는 영혼은 마귀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고 마귀들은 겁쟁이며
어린아이의 눌길로부터도 도망간다는 것을 제게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한 영혼의 이야기]
묵상과 기도 기록하기
* 오늘 복음을 읽고 내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나는 어느 사도일까요?
예수님께서 누군가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그 장면에 머무르면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그분께 말을 걸어보고 그분의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나 사물을 그려보십시오.
또는 나에게 영감을 준 복음의 구절을 써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