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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죽산 최한규박사 이문당 원문보기 글쓴이: 최한규
「밥 철학」에 관한 담론
―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중심으로 ―
죽산 최한규 박사
국문초록
본 논문은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 ‘밥 먹기’를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 밥의 존재론적·윤리적·사회철학적·정치경제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은 누구나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밥은 단순한 음식이나 영양물질을 넘어 인간의 생존과 노동, 가족과 공동체, 경제와 정치, 자연과 역사의 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본 논문은 특히 ‘서생적 문제의식(書生的 問題意識)’과 ‘상인적 현실감각(商人的 現實感覺)’의 결합을 밥 철학의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서생적 문제의식은 “밥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며, 상인적 현실감각은 “누가 밥을 생산하고, 누가 밥을 먹으며, 누가 밥을 충분히 먹지 못하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다. 전자가 존재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라면 후자는 생존과 경제, 분배와 권력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다.
동아시아 사상에서 밥은 유교의 예(禮), 불교의 연기(緣起), 도가의 자연(自然)과 연결될 수 있다. 유교에서 밥상은 관계와 예가 실천되는 공간이며, 불교에서 밥은 수많은 인연과 조건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연기의 결과이고, 도가적 관점에서 밥은 인간이 자연의 흐름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나아가 본 논문은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밥이라는 개념을 통해 연결한다. 밥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인 동시에 노동과 생산, 계급과 분배의 역사적 산물이다. 따라서 밥은 존재와 역사가 만나는 지점이며, 개인의 실존과 사회의 구조를 동시에 드러내는 철학적 개념이다.
결국 ‘밥 철학’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식생활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간과 사회의 근본 문제로 확장된다. 밥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공동체의 매개이고, 노동의 결과이며, 분배의 문제이고, 정치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밥은 최고의 도(道)다. 밥보다 위대한 도는 없다”는 명제는 인간의 생존을 철학의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제어:밥 철학, 밥, 생존, 공동체, 서생적 문제의식, 상인적 현실감각, 유교, 불교, 도가, 존재론, 역사유물론, 정치철학
Ⅰ. 서론
1. 문제의 제기
철학은 흔히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질문을 인간의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다시 묻는다면 그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밥은 먹었는가?”
한국 사회에서 “밥 먹었어?”라는 말은 단순한 식사의 여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이며, 관심과 정(情)을 표현하는 말이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은 만남과 관계의 약속이 되고,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은 동일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밥줄이 끊겼다”는 말은 단순히 음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생계수단의 상실을 의미하며,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국어에서 ‘밥’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밥은 생존이고, 노동이며, 가족이고, 공동체이며, 경제이고, 정치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확장된다.
☞밥은 존재인가, 관계인가, 생존인가, 노동인가, 권력인가, 사랑인가?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밥’을 하나의 철학적 개념으로 정립하고자 한다.
Ⅱ. 밥은 최고의 도(道)다.
1. 밥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간은 밥을 먹지 않고 존재할 수 없다.
철학적 사유도, 종교적 수행도, 정치적 활동도, 경제적 생산도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고차원적 활동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명제는 밥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밥은 최고의 도(道)다. 밥보다 위대한 도는 없다.”
여기서 ‘도’는 단순한 종교적·형이상학적 원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원리를 의미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추상적인 철학보다 중요한 것은 밥 한 끼이다.
따라서 밥 철학은 철학을 관념의 세계에서 생활세계로 내려놓는다.
☞밥에서 철학을 시작하는 것이다.
Ⅲ.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1. 서생적 문제의식
서생적 문제의식이란 현실을 넘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태도이다.
서생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밥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밥을 먹어야 하는가?
☞인간의 생존이란 무엇인가?
☞밥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것은 철학적 질문이다.
그러나 서생적 문제의식이 현실과 연결되지 못하면 관념론적 사유에 머물 위험이 있다.
따라서 밥 철학은 두 번째 요소를 요구한다.
2. 상인적 현실감각
상인적 현실감각은 현실의 구체적인 조건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상인은 묻는다.
☞쌀은 누가 생산하는가?
☞누가 유통하는가?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농민은 얼마를 받는가?
☞소비자는 얼마를 지불하는가?
☞누가 밥을 충분히 먹는가?
☞누가 굶는가?
이 질문에서 밥은 곧 경제가 된다.
그리고 경제는 정치와 연결된다.
따라서 밥 철학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서생적 문제의식 → 근본적 질문
상인적 현실감각 → 현실적 해결
이 둘의 결합이 필요하다.
☞“깊게 생각하되 현실을 놓치지 않고, 현실을 보되 근본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밥 철학의 방법론이다.
Ⅳ. 존재론적 관점에서 본 밥
밥은 ‘가공된 자연’이다.
벼는 자연에서 자란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도정하고, 조리하여 밥으로 만든다.
따라서 밥 한 공기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들어 있다.
밥은 자연 그대로의 쌀이 아니다.
자연 + 노동 + 기술 + 시간 + 인간의 생활
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밥은 존재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밥은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구체적인 존재이다.
밥 한 공기를 바라보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Ⅴ.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본 밥
밥은 권력과도 연결된다.
누가 식량을 생산하고, 누가 유통하며, 누가 가격을 결정하고, 누가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곧 권력의 문제이다.
따라서 밥은 사회적 관계를 구성한다.
‘밥줄’은 생계수단을 의미한다.
‘밥숟가락을 빼앗는다’는 표현은 생존수단을 박탈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표현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언어적 표현들은 밥이 한국인의 사회적 상상력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가능하다.
☞밥은 생존의 물질인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매개이다.
Ⅵ. 밥과 유교 ― 밥은 예(禮)다
유교에서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 역사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따라서 밥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와 질서를 배우는 장소이다.
어른에게 먼저 음식을 권하고, 함께 식사하며,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는 행위는 모두 관계의 윤리를 구체화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밥은 예(禮)의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밥상은 작은 사회이며, 식사는 관계의 정치학이다.
유교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인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일상에서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밥은 도덕이 생활 속에서 구체화되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공간이다.
Ⅶ. 밥과 불교 ― 밥은 연기(緣起)다
밥 한 공기는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햇빛, 비, 흙, 씨앗, 농부의 노동, 농기계, 유통망, 시장, 조리하는 사람 등 수많은 조건이 결합되어야 한다.
따라서 밥 한 공기는 ‘연기(緣起)’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나는 혼자 밥을 먹지만, 그 밥은 결코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연기의 세계관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수많은 존재와 조건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밥을 먹는 행위에는 감사와 자각의 의미가 포함될 수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밥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밥을 먹는 순간 자신의 존재 조건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Ⅷ. 밥과 도가 ― 밥은 자연(自然)이다
도가적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을 소비하는 동시에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곡식은 몸이 되고, 몸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독립된 실체라기보다 자연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도가적 관점에서 밥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매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행위이다.
Ⅸ. 공자·석가·노자의 밥 철학
세 사상을 밥이라는 일상적 행위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사상가 | 밥의 의미 | 핵심 개념 |
| 공자 | 관계 속에서 올바르게 먹는 것 | 禮 |
| 석가 | 먹는 행위를 알아차리는 것 | 緣起·覺 |
| 노자 | 자연의 흐름에 따라 먹는 것 | 自然·無爲 |
이를 보다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는 밥을 통해 사람이 되는 길을 말하고,
☞석가는 밥을 통해 마음을 바라보는 길을 말하며,
☞노자는 밥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말한다.
☞따라서 밥은 세 사상을 연결하는 생활철학의 공통 기반이 될 수 있다.
Ⅹ. 밥과 마르크스 ― 밥은 역사의 산물이다
밥은 자연적 대상인 동시에 사회적 생산물이다.
쌀이 밥이 되기까지는 노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밥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토지, 노동, 자본, 기술, 유통, 시장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밥은 역사적·경제적 관계의 산물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생산은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따라서 밥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다.
☞밥에는 생산관계가 들어 있다.
누가 생산하는가?
누가 소유하는가?
누가 분배하는가?
누가 소비하는가?
이 질문을 따라가면 밥은 경제학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다시 정치철학으로 확장된다.
Ⅺ. 밥과 하이데거 ― 밥은 존재의 조건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문제를 밥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인간의 존재는 추상적인 ‘존재 일반’에 앞서 구체적인 생활조건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세계 속에 던져져 있으며, 먹고 일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밥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밥은 인간 존재의 일상적 기반이다.
즉,
☞밥은 존재를 사유하기 전에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의 조건이다.
Ⅻ. 밥은 존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제 하이데거와 마르크스를 밥이라는 개념을 통해 연결할 수 있다.
하이데거 → 인간의 존재 조건
마르크스 → 인간의 역사적·물질적 조건
밥 → 존재와 역사가 만나는 생활세계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가능하다.
☞밥은 존재론과 역사유물론을 연결하는 가장 일상적인 철학적 매개이다.
인간은 밥을 먹어야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밥은 역사적 생산과 사회적 분배를 통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인간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역사 속에서 밥을 먹는다.
ⅩⅢ. 밥은 정치다
밥의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국 정치에 도달한다.
정치는 무엇인가?
공동체의 자원을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며, 구성원들의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가 밥을 먹는가?
누가 굶는가?
누가 밥을 생산하는가?
누가 밥값을 결정하는가?
누구의 밥줄이 위협받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더 이상 개인의 식생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불평등, 노동과 분배, 국가정책의 문제이다.
따라서
☞밥은 정치의 가장 낮은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높은 곳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라면 정치의 출발점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ⅩⅣ. 밥은 삶의 은유다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서 밥은 삶을 표현한다.
“밥심으로 산다.”
“밥값 한다.”
“밥이 보약이다.”
“밥줄이 끊겼다.”
“한솥밥을 먹는다.”
이 표현들에서 밥은 음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밥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확장된다.
밥 = 생존
밥 = 노동
밥 = 가족
밥 = 공동체
밥 = 경제
밥 = 정치
밥 = 사랑
밥 = 삶
결국 밥은 인간의 삶을 압축한 하나의 상징이다.
ⅩⅤ. 밥 철학의 통합적 구조
밥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차원 | 밥의 의미 | 핵심 질문 |
| 존재론 | 가공된 자연 |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
| 생명론 | 생존의 조건 | 어떻게 살아가는가 |
| 윤리론 | 관계와 배려 | 어떻게 함께 먹는가 |
| 유교 | 예(禮) | 어떻게 관계를 질서화하는가 |
| 불교 | 연기(緣起) | 무엇에 의존하여 살아가는가 |
| 도가 | 자연(自然) |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
| 경제학 | 생산·소비 | 누가 생산하고 소비하는가 |
| 정치경제학 | 분배 | 누가 밥을 갖는가 |
| 사회철학 | 공동체 | 누구와 함께 먹는가 |
| 실존철학 | 살아 있음 |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
| 정치철학 | 생존권 | 모두에게 밥이 보장되는가 |
이 표를 하나의 명제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밥은 자연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몸을 거쳐 관계가 되고, 관계는 공동체가 되며, 공동체는 경제와 정치의 문제가 된다.
ⅩⅥ.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통합
밥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적 명제는 서생과 상인의 결합이다.
서생은 질문한다.
“밥이란 무엇인가?”
상인은 질문한다.
“그 밥은 얼마인가?”
서생은 묻는다.
“인간에게 밥은 어떤 의미인가?”
상인은 묻는다.
“누가 그 밥을 생산하고 누가 그 밥값을 지불하는가?”
서생은 인간의 존엄을 생각한다.
상인은 인간의 생존조건을 계산한다.
서생은 이상을 제시한다.
상인은 현실의 가능성을 판단한다.
따라서 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한다.
서생적 문제의식 없는 상인적 현실감각은 현실에 매몰될 수 있고,
상인적 현실감각 없는 서생적 문제의식은 공허한 관념에 머물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 정치철학에는
☞“깊이 생각하는 능력”과 “현실을 움직이는 능력”의 결합
이 필요하다.
ⅩⅦ. 밥 철학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 밥의 문제는 단순한 식량 문제가 아니다.
농업의 위기, 노동의 불안정, 청년의 생계, 노인의 빈곤, 식량안보, 지역소멸, 기후변화, 식품가격, 세계적인 공급망 문제 등은 모두 밥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밥 철학은 다음과 같은 현대 정치의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최소한의 밥을 보장해야 하는가?
밥을 먹을 권리는 기본권인가?
식량안보는 국가안보인가?
농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노동의 대가는 인간다운 밥을 보장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통해 밥 철학은 개인의 식생활에서 국가의 정책으로 확장된다.
ⅩⅧ. 결론 ― 밥에서 다시 정치로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밥은 자연이고,
밥은 생명이며,
밥은 노동이고,
밥은 가족이며,
밥은 공동체이고,
밥은 경제이며,
밥은 정치이다.
유교적으로 밥은 예(禮)이고,
불교적으로 밥은 연기(緣起)이며,
도가적으로 밥은 자연(自然)이다.
존재론적으로 밥은 인간 존재의 생활조건이며,
역사유물론적으로 밥은 생산과 노동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적으로 밥은 생존권과 분배정의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밥을 먹는가?
역사적으로 밥을 먹는가?
정치적으로 밥을 먹는가?
아마도 우리는 이 모든 차원에서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밥 한 공기에는 자연이 들어 있고,
농부의 땀이 들어 있으며,
노동의 역사가 들어 있고,
가족의 정이 들어 있으며,
사회의 질서와 경제의 구조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밥을 누구나 공평하게 먹을 수 있는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정치의 문제에 도달한다.
따라서 밥 철학의 최종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밥을 충분히 먹는가?”
“누가 굶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것은 사회구조의 문제이며,
경제의 문제이고,
정치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밥 철학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명제로 귀결된다.
“정치란 결국 국민이 밥을 먹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최소 조건이자 공동체의 최고 가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다음의 명제를 제시한다.
밥은 최고의 도(道)다.
밥보다 위대한 도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도는 살아 있는 인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