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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같이 살았던 분신과도 같았던 무용가인아내 김명신( 뉴욕에서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 였다고함)이 독일남자와 바람 이나서 어느날 야심한 밤에 가출을 한다. 그는그의 충격으로 자살까지 결심할 정도였으니 그의 영혼은 다시 가는 전선위를 건너는 것처럼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졌으며 황폐해졌다. 이러한 정신적 방황속에서 전처를 못잊어 토해내는 노래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20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하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 방황속에서 우연히 하숙집 딸인 몽골계 러시아인 인 옥사나 알페로바 (Oxana Alferova)를 만나 재혼하게 되었다.
그대 어디 있소 그대 어디 있소 오 있소 오 있소 내 맘속에 그대 모습 있소 그대 모습 있소 오 있소 오 있소 내 맘속에 머나먼 지금까지 허공에 휘날려 도 남겨진 향기같이 오로지 그대 위해 때문에 그대 사랑 있소 그대 사랑 있소 오 있소 오 있 소 내 맘속에 그대 안고 있소 그대 안고 있소 오 있소 오 있 소 내 맘속에 그대 살아있소 그대 살아있소 아 있소 아 있소 내 맘속에 그대 사랑 있소 그대 사랑 있소 아직도 아직도 내 맘속에 아직도 아직도 내 맘속에
한대수.....
요즘 대중(大衆)들에게 좀 회자(膾炙) 되는 한대수지만 정 작 1집 발간(發刊) 때의 그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시절(軍部 獨裁時節)에는 어느 누구도 알아 주지도 않았고 알수 있는 눈높이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진보(進步)한 아티스트(artist) 였으며 시인 (詩人)이였다. 양희은에게 행복의 나라 가 히트 하면 서 쬐금 그의 궤적(軌 跡)이 묻 어나기 시작 하였 지만 양희은이도 그의 곡이라고 선뜻 이야기하고 다지니 못 하 였으니, 우리는 양희은으로 대표(代表)되는 통키타와 포크 가수(歌手)들이 그것을 절취 (竊取) 하였다 고 믿었을 정도로 그는 그렇게 대중적(大衆的) 이지 못하였다. 그는 그시대(時代)의 예민(銳敏)한 아킬레스건(Achilles腱) 이었다. 왜? 그는 민중(民衆)들 보다 항상(恒常) 먼저 저 먼 발치 가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그가 스스럼 없이 우리곁으로 닥아오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제법 다양(多樣)하고 진보(進步 한 사회(社會)를 건 설(建設) 하였기에 말이다. 그렇게 그와 그의 음악(音樂)을 들어주는 아주 조금인 팬들 이 그 시대(時代)에 존재(存在) 했기에 지금의 우리민중(民衆) 이 있는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밝-
70년대초에 한대수와 김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상처받은 영혼을 고스란히 뇌이고 있더군요.... 저는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친애 소리를 들었 습니다 "문밝"10.06.2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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