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바이블의 앙상블 - 4]
-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플랫 장조>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성(城)을 사이에 두고 공방을 벌이는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온다. 성은 도시의 외곽을 따라 돌이나 흙으로 높이 쌓은 벽이다. 성벽 위에서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침략을 시도하는 아래의 적군을 향해 돌을 굴리거나 화살을 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성을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운제(雲梯)’라는 높은 사다리와 성문에 충격을 가하는 ‘충차(衝車)’ 등을 동원한다. 그런 무거운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어려움에 더하여 성 아래에서는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싸워야 하기에 소모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성의 전술적 가치가 있다.
평평하고 드넓은 개활지에서는 싸움의 승패가 오로지 군사력의 우열에 달려있다. 백제 계백의 5천 군사가 신라의 5만 병력을 맞아 결사 항전하다가 전멸한 곳이 황산벌이라는 평야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은 충주 탄금대 평원에 배수진을 치고 전투에 임한 결과, 왜군의 압도적인 무기와 병력 앞에 완패하지 않았나. 그러나 권율 장군은 행주대첩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산성의 이점을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지상전에서는 보기 드물게 대승을 거둔다. 그만큼 산성은 대개 적의 공격과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피해 안전하게 머물던 곳도 바루트부르크(Wartburg)라는 성 안이었다. 그는 여기서 라틴어로 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성경의 대중화에 성공한다. 이때 문자 그대로 산성이 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느끼며 만든 찬송가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산성의 역할을 해주신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시 59:17)
성서에 많은 성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 가장 견고했던 것은 여리고(Jericho) 성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이는이스라엘 백성의 병력과 무기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다. 이 때 하나님께서 비책을 알려주신다.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성 주위를 매일 한번 씩 엿새 동안 돈 후, 7일 째엔 제사장들이 나팔(Trumpet)을 길게 불고 백성들은 함성을 크게 지르라는 것이다. 손자병법이나 육도삼략 등 고전적인 병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뭔가 좀 허접해 보이는 전술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말씀에 순종한 결과,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전쟁은 우리 손에 들린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수 6:20)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 17:47)
당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된 악기가 나팔, 즉 트럼펫이다. 그만큼 트럼펫은 강력하고 장엄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승리와 환희,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 악기는 군대에서의 신호나 왕의 행차 때, 또 백성의 집회를 소집할 때 불곤 했다. 그뿐인가. 앞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에도 트럼펫 연주가 예고되어 있으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Trumpet)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살전 4:16)
트럼펫 연주곡 중 가장 고전적인 작품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그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작곡되었으며 트럼펫이라는 생소한 악기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작품이다. 빈 궁정 연주자이던 안톤 바이딩거(Anton Weidinger, 1766 - 1852)가 기존 악기의 성능을 개선하여 새로운 트럼펫을 고안해내자, 하이든이 그를 위해 작곡한 곡이다. 당대 유럽의 제일가는 작곡가로서 하이든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음악에 도전한 것은 색다른 악기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후배 안톤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은 7-80년대 MBC 인기 프로그램 [장학퀴즈] 시그널 음악으로 유명하다. 출연자들이 학교의 명예를 걸고 지식과 순발력을 겨루던 이 프로가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다. 여기에 '선경합섬'이 단독 후원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지금 재계 3위(SK)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 게 아닐까. "이겼다 또 이겼다, 승리의 스마트다. 선경의 학생복지 스마트 스마트"가 기억난다면 당신은 연식이 꽤 되신 분일 듯...
얘기가 우째 옆으로 새어 나갔지만..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은 대체로 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주는 밝고 화려한 곡이다. 각 악장마다 현악기의 제시부에 이어 오케스트라와 트럼펫이 때로 협력하고 때론 경합하며 주제를 재현하고 발전시켜가는 형식이다.
팡파레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이 <트럼펫 협주곡>도 예수께서 재림할 때 연주될 음악 후보의 하나가 될 수 있을까?
Berlin Chamber Orchestra와 영국의 천재적인 여성 트럼페터 앨리슨 발솜(Allison Balsom)의 협연으로 들어본다.
남자들도 다루기 힘들다는 트럼펫을 어쩜 그리 자유자재로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지...
동영상J. Haydn: Concerto para Trompete e orquestra em Mi bemol maior 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