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려운 종로구 인적 쇄신”
민선 8기 정문헌 새 종로구청장 시대에 대한 주민의 기대는 자못 크다.
이제 오는 7월 1일 정식 취임을 앞두고 정 당선인은 구청장직 인수위원회를 가동시키며 새로운 종로 발전 시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든든한 구청장이 되겠다”는 정 당선인의 포부에 종로구민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 설레이기도 한다. 600년 전통의 자랑스러운 종로가 그동안 명예와 자긍심을 살리지 못하고 ‘짝퉁 종로’의 변두리 지역으로 전락하는 광경은 참으로 암담했다.
1991년 지방자치 부활 이후 종로는 ‘종로에서 시작해서 종로에서 끝나는 동네’로 유명했다. 전통은 물론 역사와 문화의 고장으로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번지였으며, 젊고 활기 넘친 대도심의 중심부로서 종로의 명성은 단연 서울의 심장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 실시 이후 종로의 명성은 빛바랜 초상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였으며, 어느 순간부터 종로는 전형적 구도심의 전철을 밟는 모습이었다. 지방자치 시대 여타 지역이 무섭게 발전되고 활성화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종로는 찬란한 정체성을 살리지도 못하면서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는 종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종로 자치 지도자들이 종로 자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구청장 이하 시.구의원 등 종로 정치 및 종로 자치 지도자들이 너무나 안일하고 무지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종로의 특성과 정체성만 제대로 간파했더라도 지금처럼 망가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정문헌 민선 구청장이 등장하면서 주민들은 다시금 종로 발전의 깃발을 들고, 새롭게 종로 살리기를 학수고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 편이다. 특히 ‘새 술은 새 부대’라는 격언을 응용한다면, 새로운 종로 발전은 단연코 인적 쇄신이다.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단체자치’이고, 또 하나는 ‘주민자치’다. 단체자치는 구청을 중심으로 하는 공무원 자치이고, 주민자치는 구의회 의원이 중심이 되는 지역 주민자치다. 둘 다 지방자치 원재료인 사람이 중심인 것은 같은 차원이지만 구청 직원들과 주민들이라는 맥락에서는 다르기도 하다.
아무튼 종로 자치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 쇄신이 가장 급선무인 셈인데, 지금 종로구청 직원 분포도를 보면 참으로 암담한 편이다. 4급 서기관 이상 3급 부이사관까지 8명 모두가 호남 출신이다. 고위직 100%가 특정 지역 직원들로 구성됐다는 사실은 언뜻 봐도 불균형 또는 불공정한 내용이다. 더군다나 5급 사무관 57명과 6급 팀장 165명도 약 70%가 호남 출신이라는 놀라운 사실은 암담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비호남 출신 직원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비호남 출신 직원들이 토로하는 솔직한 심정들은 차라리 종로를 떠나고픈 마음뿐이었고, 근무 의욕은 상실 자체였다는 것이다. 호남 출신 직원들이 패거리를 짓고 그들끼리 뭉쳐서 인사나 승진을 나눠 먹는 실태는 종로가 호남 분실과 다름아니라는 분통 섞인 소리뿐이다. 지난 12년간 비호남 출신 직원들은 참혹한 현실에 몸부림만 쳤으니 종로 자치 발전은 요원한 것이 당연지사다.
당장 정문헌 신임 구청장이 취임해서 4급 서기관으로 두 명을 승진, 발령해야 하지만 그 승진 대상자 4명 중 3명이 역시 호남 출신이다. 또한 5급 사무관도 5명을 승진시켜야 하는데 후보다 대다수가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정 신임 구청장은 선택의 폭이 없는 셈이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선택 속에 무슨 인적 쇄신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한편, 정문헌 새 구청장이 당선되면서 종로 사회 오랜 유지급 인사들이 다시 발호하는 분위기다. 소위 원로급으로 통하는 인사들인데, 이들은 벌써 구청장직 인수위원회 고문단으로 16명이나 위촉됐다. 그래서인지 자문위원회 평균 연령이 75세라는 말도 나온다. 무슨 경로당 자치도 아니고, 아직 50대 중반을 넘긴 젊은 새 구청장 입장에서는 역시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새 구청장은 원하지 않지만 원로급 인사들이 고문 자리를 요구하며 나서는 마당에 그들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원로급 인사들을 고문 자리에 앉힐 수는 있다. 그동안 그들이 종로 사회에서 자리매김한 업적과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경력과 경험을 되살릴 필요도 있다. ‘노장청’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합심해서 새롭게 종로를 발전시킨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그들 고문들은 대다수가 팔순을 바라보고 있으며, 일부는 구순을 가까이 두고 있는 인사들이다. 그러니까 종로 사회에서 30년 이상을 주도 계층으로 활약했던 인사들이다. 환언하면 지난 30년 동안 종로 사회 기득권층이다. 한 세대를 넘기는 기간 동안 종로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린 인사들이다. 이제는 조용히 고문으로 남아 뒤에서 슬기롭게 자문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인데, 또다시 뭔가 자리를 탐내며 ‘노추’를 부리고 있다는 풍문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참으로 정문헌 신임 구청장은 주민에 대한 인적 쇄신도 무망한 상황이다. 이래저래 새로운 종로 자치 발전에 선결 과제인 인적 쇄신을 두고 정 신임 구청장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