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豊漁)가 넘치는 해변마다 울려 퍼지는 풍어제(豊漁祭)에는 온갖 풍물이 동원된다.
‘날만 새면 내 돈이다’가 판을 치는 미맹(味盲)의 그늘에 기생(寄生)하는 장소에는 늘 풍류(風流)가 따라 다닌다.
왜 노래하는 새들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들끓게 되는가?
그것은 한풀이하는 위로의 마당이요,
무거운 수고와 짐을 가볍게 하는 안위(安慰)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 그 장소에는 세상의 온갖 버거운 것들이 달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명가수들의 콘서트(concert)나 유랑 극단의 나팔소리가 높은 곳,
혹은 부흥회(復興會)다 무슨 응원들의 모임에는 반드시 풍악이 뒤따라가며 사람들의 여흥(餘興)이 무르익는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거기에 몰두할 때,
일체감 혹은 카타르시스(catharsis)가 느껴지며 황홀경에 빠지기 때문이다.
맘껏 고함을 지르며, 몸을 흔들며, 도취하는 거기에 희열(喜悅)이 뒤따라오고
잠시 잠깐이나마 세상의 것들에서 벗어나
기분이 쇄락(灑落)해 지기 때문이다. 왜 풍류 한마당이 신이 나는가?
거기에는 세상적인 것들이 개입할 소지가 없다.
남여(男女)와 노유(老幼)가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이 한데 어우러지며
한 그물에 쌓일 때 상하(上下)가 통속(通俗)이 되고,
대의(大義)와 민의(民意)에 따르는 대중민주주의(大衆民主主義) 내지 보통(普通)민주주의가 그 근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에 창궐(猖獗)하고 있는 노래방은 국민의 정서 달래기와 무거운 것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사실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에는 반드시 기분 전환이라든지, 시원함이라든지, 삼쾌(三快)가 따라온다.
삼쾌(三快)란 유쾌(愉快), 상쾌(爽快), 통쾌(痛快)를 일컫는 말로서 기분에 관한 것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말한다. 즉, 무거운 것, 답답한 것,
더부룩한 것, 찝찝한 것, 씰룩거리는 것, 불룩해지는 것 들이 달아나고 홀가분해 지는 것을 말한다.
왜 풍악을 울려야만 하는가?
즐겁게 살고, 기쁘게 살고, 가볍게 살기 위해서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의 나그네 길에서 모든 사람들은 크든 작든 짐을 지고 간다.
그것이 버거울 때, 무겁고 힘들 때, 그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우리는 풍악(風樂)을 의지해야 한다.
한창 신나게 풍류에 몰두하고 나면, 온 몸은 흥건하게 땀으로 젖는다.
땅에서 난 체질인고로 땀을 흘리는 것은 보약(補藥)을 먹는 것과 같다.
생활하느라 찌든 온갖 체내의 노폐물(老廢物)이 신나게 한마당 풍악을 울리고 나면 해소(解消)가 되는 것이다.
사실 풍악을 울리는 장면은 지구상 모든 나라와 족속,
온갖 문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삶의 진솔(眞率)한 형태이다.
왜 그런가? 그게 사람의 살아가는 속성과 많이 닮아 있고,
본능의 욕망을 진무(賑撫)하고 안위(安慰)하는 원초적인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악(風樂)을 울리고, 사람들의 욕망(慾望)을 분출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풍악을 울릴 때, 신명나는 굿판과 굿거리가 펼쳐지고 거기에 동참할 때,
어깨 춤사위가 절로 나며 무거운 짐들이 제거되고, 쳐진 어깨가 활짝 펴지며,
연약한 무릎이 새 힘을 얻고 깡충 깡충 뛰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게 된다.
얼~쑤 ! 지화자가 연신 터져 나올 때, 어찌 기분이 좋아지지 않으랴 !
사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만큼 기분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경우도 드물다.
풍악(風樂)은 시원케 하는 기능과 구실을 하며,
어렵고 고된 일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길러준다.
농악(農樂)과 격양(擊壤)가, 풍어(豊漁)가 등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순화시켜 주는 춤과 노래는
언제든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문화와 풍토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전통 문화 속에 숨 쉬고 면면히 이어져오는
미풍(美風)과 양속(良俗)이다. 풍악을 울리는 곳에 화합(和合)과 대동단결(大同團結)의 고운 기상이 싹이 트고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신명나는 삶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늘 우리 주변을 춤과 노래로 가득 채우자.
가무(歌舞)가 있는 곳에 풍류(風流)가 있고, 그것은 멋있는 삶의 운치 있는 모습이다. g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