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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26회 졸업 40주년 再相逢記
옛날 옛적 신선들이 놀았다는 삼선동 산골짜기를 오르던 까까머리 소년들이 졸업 40주년을 맞는 2010년 10월 23일 옛 교정에서 다시 만났다. 그 시절의 푸르름은 사라지고 이제 회색빛 중년이 되어 동창생들을 만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한다. 40년전 세상에 내던져진 후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했던 인생이 결말을 향해가는 시점에서 매듭을 짓는 심정으로 옛 교정을 찾아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여기저기 모여 방담을 나눈다.
진짜로 40여년만에 만나는 동창들도 꽤 되지만 이런 저런일로 만나는 친구들이 거개인지라, 이산 가족들처럼 얼싸안고 제 설음에 겨워 울지는 않았지만 옛시절을 추억하며 서로들 안부를 묻는다. 학교 인근을 온통 아파트가 둘러 싸서인지 웬지 교정이 작게만 느껴진다. 그 시절의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중에 아직도 옛 강당은 그대로 있어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을 되살린다.
강당에서 치루어진 행사는 이벤트사에 맡겨서인지 마치 전당대회를 치루듯 일사불란하다. 교문앞과 강당에 걸린 현수막에 “40번째 프로포즈, 경동고 26회 졸업 40주년 기념 모교방문행사”라 적힌걸 보니 프로포즈란 말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생이 끝없는 프로포즈의 과정이니 도전이 멈추면 인생도 막을 내리는 것이다. 행사장 입구에 깔린 레드카펫을 밟으며 마치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가 된 기분으로 강당으로 들어섰다.
대장암을 극복한 이상현이 준비 고문으로 행사의 개막을 알리고, 이번 행사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 박영수 회장은 당 총재같은 거창하고 열정적인 연설로 동창들을 환영했다. 박회장의 모교에 대한 원과 한이 이참에 모두 승화되었기를 기원하며, 몸이 멀쩡한 사람들은 더 재미있는 일을 하느라 뒷짐 짓지만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위해 애쓰는 회장단의 노고가 있기에 동창모임도 굴러가는 것임을 새삼 느껴본다.
이날 행사에는 167명의 동창생과 부인들이 참석하였다. 키가 큰 조규선과 최형돈이 모교기와 동창회기를 들고 늠름하게 입장하니 마치 출정식을 하는 기분이다. 유명을 달리한 30여명 동창들에 대한 묵념이 있었고, 임종웅 총동창회장(18회)과 맹섭 발전기금조성위원장(15회)의 격려사, 김종원 현직 모교교장의 “경동고가 자율형 고교로 지정되었으니 서울 전역에서 학생들이 지원하여 옛 명성을 찾을수 있도록 홍보대사가 되어 달라”는 부탁의 인사가 있었다.
박태문(독어), 홍준기(수학), 김만제(생물)선생님등 3분의 은사가 연단에 앉아 자리를 빛내주었다. 함께 늙어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이제는 모두가 어슷비슷한 모습들이다. 홍준기 선생님은 늦게까지 제자들과 즐겁게 환담을 나누었는데, 박태문 선생님은 수제자였던 도장록 전임 회장과 함께 중간에 사라져 버렸다. 26회 동기회 명의로 모교발전기금 1,000만원과 학교발전기금 200만원을 전달하였고, 은사님들께도 정성을 표시하였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양교석 선배겸 선생님과 전 동기회장인 이진규 고려대 교수, 정진섭(27회), 장광근 (29회) 국회의원은 축하 동영상 메세지를 전해왔다.
이날 호주 멜버른에 30년째 거주하다 잠시 귀국한 노신사 천성길이 해외동문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하였고, 시카고에 사는 농구부 이명과 중동에서 배구감독을 하던 이춘표가 부인과 함께 자리를 같이했다. 홈피지기로 고생하는 김영택과 임대종, 석상복, 안창헌, 장도훈 등 의사그룹과 고액 기부자인 김형수, 이용현, 정상진, 그리고 동창회에 공로가 많은 이진규, 김호균, 이규승, 현상윤, 정흥수, 임종윤, 김진희, 한도상, 안우길, 이상현, 김명수, 최기덕 등에게는 공로패가 수여되었다. 최기덕은 지은 죄(2대회장시 신군부에 쫓겨 미국으로 도망간 일)가 있어 극구 고사하였으나 앞으로 글을 잘써 남기라는 취지에서 회장단에서 배려한 것이다.
고교시절 밴드부 악장이었던 허용범의 지휘로 교가 제창이 있었고, 박영수회장과 신동일 등산회장 부부, 송근영 전회장의 케익 절단이 있은 후 박찬수 수석부회장의 건배제의로 “있을때 잘해, 평소에 잘해, 끝까지 잘해”를 따라하니 1부 행사는 절정에 달았다. 식사 막간에는 최형돈과 신동일의 아리따운 여식들이 부모들을 위해 연주를 해주었다.
2부 행사는 경동고 26회만의 자랑인 9인조 밴드의 ‘코튼 휠드’ 연주로 막을 여니 모두 함께 흥겨운 여흥의 시간이었다. 기분이 ‘업’된 방상진이 특유의 코믹댄스로 무대를 휘어잡고 동창부인들 앞에서 허리춤으로 재롱(?)을 부리니 조금 야한듯 싶었지만 나이 60에 그리하기도 힘든 일이다. 5대양을 누비던 허용범이 “남자라는 이유로”를 색스폰으로 연주하니 숫놈 몫을 하기위해 거친파도와 싸우던 용범과 우리 모두의 지난 인생을 반추하는듯 싶어 숙연했다. “너희들은 내가 해방의 기쁨에 우는 줄 알지만 .....,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던 8.15 해방날 오장환 시인의 절규를 듣는 듯 했다면 너무 ‘오바’인가.
육사출신 5인방 중에서 살아남은 백병춘, 박용준, 조규선과, 한국은행 3인방 인 김주식, 박현덕, 김만호, 서강대 3인방인 박철, 신준호, 원성규가 모두 참석하였다. 고대파는 박주홍 초대회장과 이명호, 제정일, 김기완, 김성식 등 하도 많아 생략한다. 국회 출신으론 이율복과 김희진이 나왔고, 명민한 모범생이었던 김인규와 목희수가 근무지인 창원에서 올라왔고, 한국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조원근 목사도 어려운 걸음을 하였다. 은행계의 전진택, 고선호, 권정호, 최세영 등과 시청(모임)파의 박인기, 최훈영, 언론계의 이우성, 송대근 등이 참석했다. 학계에서는 문원구, 이규승 등이 교육계에서는 김성기, 김홍섭 등이 보였고, 늘 행사 협찬을 아끼지 않는 영등포파 이효선과 김명수가 부인들과 함께 했다.
(생각나는대로 계속 참석자들을 추가함을 양해 바람) 골프회와 등산회가 동창회의 양대 주축이니 이들을 언급치 않을수가 없다. 재상봉 행사 1주전에 20여명의 골프회 멤버들이 중국 청도로 골프여행을 다녀왔는데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참가하여 자리를 빛냈다. 말년 팔자가 좋은 이들은 이광우, 김기완, 이강호, 김만호, 박현덕, 도장록, 최병창, 최찬묵, 송근영 등이다.
등산회에서는 임원단이 모두 행사위원으로 수고하였고, 동창들 칵테일 만들어 주느라 애쓴 신규한, 이순모, 김한득, 김용기, 권정호, 최세영, 박용준, 김희진, 이명호, 제정일, 김명수, 김성식, 현상윤 등이 참석하여 동창회의 양대 주축임을 과시하였다. 참석한 동창들을 일일히 거명치 못함은 기록자의 아둔함이니 널리 혜량해주기 바라며, 이번에 최신 동창명부 수첩을 발간하였으니 궁금했던 친구들은 찾아보기 바란다.
동창들의 많은 협찬으로 풍성한 경품추첨이 있었는데, “1학년8반에서 3학년6반으로 고교시절에는 줄곳 엘리트 코스를 달렸다가 그 이후는 좀 헤매였다”고 자평하는 이강호는 이날도 단 한개의 경품에 당첨되지 못하자 자신의 비운을 회장단에 돌리며 탄핵운운하여 나중에 회장의 특별배려가 있을 것이라고 겨우 달래었다. 모두들 조촐하니 상품들을 안고 돌아갈수 있도록 주선한 회장단과 협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날의 행사는 마지막 축포삐라까지 잘 짜여진 시나리오속에 매끈하게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이야 행사란게 그런가보다 하지만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고는 말할수가 없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듯”이 3시간의 행사를 위해 준비위원들은 1년을 준비했다. 안우길, 한도상, 박용철, 신동일, 성기운 등 음지에서 고생한 친구들에게 동창 모두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을 전한다.
밴드부는 이날 행사를 위해 따지고 보면 40년을 연습한 것이다. 고교 졸업후 끊이지 않고 서로 만나 음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청바지에 흰티,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9인조 풀밴드로 열심히 연주하는 이들을 보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용범의 명언이 증명된다. 1부와 2부의 사회를 맡은 임종륜과 서재성, 그리고 정흥수, 허용범, 이치훈, 이희훈, 오대우, 박진평, 이들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만으로는 대단히 부족하지만 전 동기생들의 이름으로 고맙다는 마음의 일단만을 전한다.
이날의 행사는 지금껏 각 동문회와 총동창회의 행사를 모두 지켜본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역대 최고의 행사였다는 찬사이다. 이제 우리가 과연 졸업 50주년 행사까지도 할수 있을런지는 지금 가늠할수 없지만, 인생의 매듭을 짓는 기분에서 상징적이라도 이런 행사가 자주 있기를 기원한다. 죽지않고 다시 만나 반가웠던 동창생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한번 동창은 영원한 동창이다”로 재상봉기를 마감한다.
2010년 10월 24일 기록위원 최 기 덕 쓰다.
첫댓글 이글은 중요한 기록이 될것이니 동기여러분은 부기할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댓글로라도 올려주기 부탁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치 못했지만, 준비한 손길들과 참석한 동기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건투를 빕니다!!^^*
투병중인 형님의 병세가 악화되어.. 꼭 참석하려던 모임에 참석 못하여 죄송. 노고를 아끼지 않은 회장단 과 준비 위원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생기는 것도 없이 이 날의 행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한 회장단과 총무님들 그리고 밴드부원들 수고 많으셨소. 하나님께 이들을 축복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멋있는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安堂이 강당은 그대로 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자리는 그 자리이나 건물은 새로 지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학교자체가 이사가지 않고 그자리에 있다는 것 만으로라도 어릴때의 추억에 잠길 수있어 행복한 저녁이었소.
오랜만에 주춤거리며 찾은 교정에 모인 친구들 이젠 흰 머리 드믄드믄 보이며 인생의 훈장을 달듯 서로를 확인하는 의식.
소중한 시간이었고, 우리의 정체성이 다시 희망이라는 화두로 부활하는 기회였답니다. 그동안 준비에 오랜 노고를 아끼지 않은 박영수 회장과 우길, 용철, 동일, 도상 , 또한 가물가물 기억을 되살려 값진 글로 기록함으로써 후에도 되새길 명문을 남긴 안당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해 모교 사랑이 말 뿐이 아닌 실제적으로 기부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종도 울릴 때 종이라 했거늘......
박영수 회장님의 초대장, 안우길 총무님의 초청 편지, 박용철 총무님의 초청 문자 안내등이 있었음에도, 해외 출장으로 부득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고, 또 열심히 준비하신 박영수 회장님을 비롯한 행사 준비위원님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고, 참석하신 여러 동기생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강서지역 담당 한도상 총무님 수고 많으셨읍니다....
이제 올해로 모두들 환갑이네그랴...그 유명한 어떤 사람이 제 묘비에 그랬다면서 ? " 우물쭈물하더니 내 그럴줄 알았다...." ....우리도 이젠 환갑이네 그랴...과시 40여년이란 그 세월을 남자로 살기엔 좀 길었지 않았나 ?....앞으로는 모두 그간의 또는 이제부터의 업에 따라 정해질텐데....옆 사람들도 쳐다보면서 함께 살아봅시다....나는 이외수씨는 좀 별로던데 딱 한가지 "나 밖에 모르는 넘 = 나쁜 넘이다"를 강조하는 것은 참 맘에 들더라고....박영수회장 이하 열심일꾼덜 모두모두 수고들 많았습니다....감샤...근데 우길이 허리 괜찮냐 ?...약 사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