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禮風雅』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평가 의견서
1. 자료의 성격
1) 기본 재원
*명칭: 『進禮風雅(진례풍아)』 단행본 원본
*자재: 漢紙(한지)에 漢文 詩歌 240여 수의 작품을 목판 인쇄한 서책
*창작자: 학교면 지역공동체 내의 輔仁契(進禮詩社) 회원 20여 명
*창작시기: 1944-1949(서책 간행시기: 1949년)
*형태와 크기: 106쪽(53장 양면 인쇄), 가로 18.3㎝ *세로 18.3㎝
2) 서책 제작의 배경
*현재 함평군 학교면 관내의 금송리, 석정리, 월호리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이웃사랑과 나눔, 상호 신뢰와 우의 증진을 목적으로 풍류단체를 결성하고 정례적으로 회합하여 漢詩를 창작하고 발표하기로 협약함.
*1944년 4월 지역 주민(지식인) 20인 내외의 구성원으로 輔仁契를 만들어 출범하고 1948년에 이 모임을 강화하여 進禮詩社로 개편하여 1949년 5월까지 약 6년간 22회의 詩會를 갖고 240여 수의 한시를 창작-발표하였고, 이 성과를 『進禮風雅』란 이름으로 서책을 간행하였음.
*『進禮風雅』의 서책명칭은 행정구역 상 학교면으로 개편되기 이전의 3개리에 대한 행정구역 명칭이 ‘진례면’이었음을 고려함.
3) 『進禮風雅』의 내용구성
*주요인사 6인의 서문(필진: 신몽식, 전기남, 양규상, 전방진, 박연호, 이신우)
*조선조 대표적 선비들의 漢詩 작품 8편(정몽주, 이황, 이율곡, 고경명, 정철, 김인후, 송시열, 기대승)
*지례시사 회원들의 작품 240여 수(정해진 주제는 없음. 주요 주제는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 안빈낙도 기원, 마을공동체의 이웃사랑과 두터운 인심,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강인하고 투철한 정신과 미래에 대한 희망 등 광범한 내용을 포함)
*進禮十一景을 상징하는 漢詩(한시) 11편
*책 말미에 지역원로 6인의 발문(박재무, 전남진, 김현득, 이진우, 장봉원)
4) 원본자료 발굴의 과정
이 자료는 고일석(지역원로, 전 교육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가 이 자료를 처음 확인한 때는 2016년 봄이었고, 당시에는 『進禮風雅』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었다. 이 복사본은 동문수학했던 이 고장 출신 장형이 서울에서 보내준 것이었다. 그는 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력이 있어 이 자료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였기 때문에 지방문화재로 등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지역 유지(양귀모 함평군의회 의장, 장록 법무사, 서재정 문화활동가)와 함께 군청을 방문하여 문화재 등록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는데, 군청의 응답은 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복사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원본이어야 한다는 응답을 받았다.
그리하여 2016년 봄 이후 원본 찾기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이 자료를 소장하고 있을 만한 인사를 대상으로 행방을 수소문했다. 여러 분이 떠올랐지만, 결국 두 가지 통로의 가능성이 탐지되었다. 모두가 진례 출신이지만, 한편은 서울에 거주하는 분들이었고 다른 한편은 광주와 진례에서 살고 있는 인사들이었다. 서울 쪽은 신몽식 집안의 신양선, 장봉원 가문의 후손인 장형 등을 접촉했고, 전남 지역은 김욱현, 김성현, 박무웅, 최원식 등과 서로 협력하여 그날 이후 5년 동안 원본의 소재를 탐색해 나갔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듭하던 중, 2021년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서울 거주하던 신양선이 조상 성묘를 위해 귀향했는데, 그 때 선조(신몽식)의 유품을 정리하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거의 폐기된 상태인 선조 유품가운데 고문서 3상자를 발견하였는데, 혹시 이 자료들 가운데 찾고 있는 『進禮風雅』가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고일석에게 연락했다. 서로 상의한 후 학다리 사거리로 운반하여 고일석과 함께 조사하던 중 마침내 그 상자 밑바닥에서 찾고 있던 원본을 발견했었다. 그리하여 지난 5년 동안에 걸친 끈질긴 발굴조사 작업의 성과로 묻혀있던 지역 선열의 소중한 지혜와 아름다운 정서의 결정체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2. 『進禮風雅』의 가치
하나의 역사적 자료가 갖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다양한 기준에 의거하여 평가할 수 있다. 우선 그 자료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테면, 고대의 건축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기준과 현대의 문학작품에 대한 기준이 동일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進禮風雅』가 하나의 문화재로 규정될 수 있는 평가기준을 <진실성>, <작품성>, <역사성과 희소성>, <정신문화적 가치>로 한정하여 평정하려 한다.
<진실성>
문화재 평가에서 가장 우선적인 기준은 그 자료가 원전이고 진품인가의 여부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평가기준에서도 이것이 최우선이다. 이 기준에 의거해 『進禮風雅』 서책을 점검해보면, 이 원본이 진품임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원본 소장자가 이 원본에 수록된 漢詩 창작자(신몽식)의 후손(신양선)임을 지역주민들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원본을 발굴하기 위해서 다수의 지역인사들이 참여하여 집합적인 노력을 경주했으며, 2016년 이후 5년의 기간 동안에 경주된 발굴자의 강인한 의지가 평가받을 만하다.
<작품성>
이 서책에는 조선조에서 대표적인 선비 시인의 작품 8편에 이어 進禮詩社 회원이 지은 240편의 漢詩와 進禮十一景을 노래한 1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회원이 지은 240편과 진례 명승에 관한 11편을 감상한 결과를 다음 세 가지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소재의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지역사회를 둘러싼 자연환경,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공동체의 다양한 활동과 그 활동의 결과물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이를테면 산천과 풍광, 새벽 닭과 가을 기러기, 막걸리와 노래, 가정과 이웃, 음식과 주거생활, 기쁨과 애환, 우정과 사랑, 난세와 평화 등에 이르는 광범한 영역에 이르고 있다. 이는 바로 지역사회가 아름답고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이 자료에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풍부한 고전 인용과 옛말을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蘭亭(난정)과 香山(향산), 箕山(기산) 潁水(영수), 백거이와 굴원, 도연명과 구양수 등의 풍부한 고대의 역사자료가 그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변방에 위치한 進禮詩社가 내장한 정신적 공력과 지적 자산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속금산과 무냉기, 월채재와 이별바우, 솔마지와 중천포, 여시바꿀과 넘언골 등의 토속어들 역시 우리가 보존하고 닦아내야 할 전통문화 자산인 것이다.
세 번째로 작품의 탁월성을 강조할 만하다. 이 책자에 수록된 작품은 한 지역사회에서 다수 주민으로 구성된 進禮詩社 회원의 창작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회원들은 전문적 수련과 일정한 경력을 거친 시인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생활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작품 창작도 일정한 절차와 준비작업이 없이 현장에서 한잔 술에 마음을 담아 지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발표된 한시들이 보여주고 있는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과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에서 작품의 수준이 높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회원들 가운데 호은 양규상, 석계 이양우, 그리고 후송 전남진과 송암 김현득 시인의 작품은 필자에게 특히 큰 울림을 주었음을 기억한다.
<역사성과 희소성>
風雅(풍아)란 원래 휘몰아치는 바람의 격동을 함축하는 정서(風)와 바르고 어김없는 법도(雅)를 함축하는 말로서, 國風(국풍)과 大雅(대아) 및 小雅(소아)를 결합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대개 漢詩集의 형태로 표현된다.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제20호, 1989년 등재)로 지정된 『靑丘風雅(청구풍아)』는 삼국시대 이후 조선 전기에 우리나라 명현들이 창작한 한시를 모아서 간행한 漢詩集이며, 조선 후기 철종 때 완도의 작은 섬인 신지도에 유배당했던 이세보가 귀족들의 부정부패, 민중의 애환, 그리고 이에 대한 왕족의 책임감 등을 시조로 표현하여 엮은 시조집 『風雅』가 있다. 완도군은 이 자료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평가하여 기념비(1991)를 세운 바 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볼 때, 『進禮風雅』 는 그 자체로 독특한 역사적 의미와 희소성에 따른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 우선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자료는 1940년대 우리 민족공동체의 위기인 첨예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생산되었다. 이 창작자들은 대부분 19세기 말경에 태어나서 20세기 전반의 격동기를 겪어온 주인공들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동학 혁명과 서구 열강의 침략,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의 전락 등 역사적 파고에 휩쓸리면서도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 지역민이 겪는 애환에 대한 위로와 기원을 담아내는 간절한 염원을 토로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자료에는 20세기 전반 이 지역공동체의 역사와 지역민의 아픈 정서가 깃들어 있는 정신자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자료는 진례 지역사회의 특수한 정서가 새겨있는 것으로서 다른 어떤 시기나 어떤 장소의 자료에서도 발견될 수 없는 역사적 독자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임을 강조할 만하다.
<정신문화적 가치>
이 자료집이 갖는 역사적 독특성에 더하여 정신문화적 가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詩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정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進禮風雅』 에 내장된 정신적 가치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이 시의 지은이가, 그리고 이 자료집이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요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시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우선 이웃사랑이며 공동체를 향한 사랑이다. 이웃과 공동체는 누구에게나 태어나고 죽어가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에는 보람과 아쉬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깃들어 있다. 또한 고난과 행운을 함께 나누는 위로와 격려의 공간이다, 그리하여 창작자들은 막걸리 한잔에 그 사랑을 채워서 함께 마시며 고난에 찬 삶을 우정으로 감내해왔던 것이다. 이 자료에 담겨진 시는 바로 고난의 인생길을 동행하면서 나누는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진 유산이다. 특히 『進禮風雅』가 사회의 중심부가 아니라 소외된 시골마을에서 피어났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의미가 더 크다. 이 자료집이 문화재로 공인되어 더 넓고 더 오래까지 읽혀진다면, 그 효과는 이제까지의 마을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넘어서 보편적 인간애에 이를 것으로 믿는다.
다음에는 자연사랑이다. 창작자들의 마음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두드러진 사랑의 마음은 다름 아닌 자연을 향하고 있다. 비록 말은 없지만 함께 호흡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생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들은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을 비롯하여 산야를 가로질러 날아다니는 벌 나비, 가을저녁 서편하늘을 줄지어 나르는 기러기, 새벽닭의 울음, 방죽을 휘 젖는 물고기들을 노래했다. 또한 이들은 말없이 지켜보는 앞산의 선바위, 산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여시바꿀과 솔마지재, 중천포와 이별바우, 넓은 품을 자랑하는 진례 들판과 고막강을 사랑했다. 이 시대에 다른 지성들이 힘주어 강조하는 생태환경의 보존 차원을 넘어서서 더 멀리 바라보는 경지를 우리는 이 작품에서 발견한다. 이 시들에 담긴 울림이 크고 멀리까지 퍼지는 이유는 변방의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 온 작가들의 호흡에 담긴 사랑이 그만큼 진실하기 때문이다.
3. 종합 논평: 더 아름다운 공동체로의 발전을 위하여
이상에서 『進禮風雅』에 대한 재원 및 발굴과정과 아울러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탐색했다. 이 과정에서 『進禮風雅』라는 역사자산에 담긴 중요한 요소들을 확인했으며, 더 나아가 이 자료가 앞으로 국가와 관련기관에 의해 공인됨으로써 이 사회의 미래발전에 값진 울림을 주리라 믿는다. 이 서책이 품고 있는 이웃사랑은 소외되고 고난에 찬 인간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그리고 자연사랑의 마음은 생태위기와 환경재해에 대응하는 데 값진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또한 이 자료집은 오늘과 미래 지역사회 발전의 정신적 토대를 강화하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창작자들이 귀족이나 명현의 선비작가가 아니라 시골 지역의 마을공동체 보통 구성원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이들이 개인작업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존재감을 상징하는 창작단체를 스스로 결성하고 이를 통해서 漢詩集 『進禮風雅』를 간행하였으니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와 같이 산간벽지의 소규모 지역공동체가 주도하여 역사문화적 의미가 큰 활동을 전개한 사례는, 앞에서도 보았듯이, 함평군은 물론 전국 수준에서도 그 사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본인은 위의 검토과정을 종합하여 판단하건데, 이 자료가 지역사회의 미래발전을 위한 문화자산인 문화재로 공인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끝.
2021년 10월 17일
작성자 羅 看采(전남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