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탄생 120주년…가나아트센터에서 미공개작 전시
입력2024.06.27. 오전 7:11
수정2024.06.27. 오전 7:11
황희경 기자
1950년대 서민 생활상 담은 '취야' 등 110여점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고암(顧菴) 이응노(1904∼1989) 탄생 120주년을 맞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30대부터 말년까지 그의 작업을 돌아보는 대규모 기념전이 열린다.
전시는 9월초까지 2부로 나눠 열린다. 26일 시작한 1부 전시 '고암, 시대를 보다: 사생(寫生)에서 추상(抽象)까지'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부터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콜라주와 문자추상 등 독자적인 추상 양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드로잉 등 평면 작업 110여점과 조각 작품으로 살핀다.
전시에는 1950∼1960년대 미공개 작품이 여러 점 나왔다. 한국전쟁 이후 작가는 폐허가 된 도시나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림에 담았다. 그중 하나인 1950년대 '취야'는 여러 사람이 탁자 주변에 앉아 술을 마시고 그 뒤로 여러 인물 군상이 배경처럼 그려진 연작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2점이 새로 공개된다.
작가는 취야를 두고 '자화상 같은 그림이었다'고 말한다.
"그 무렵 자포자기한 생활을 하는 동안 보았던 밤시장의 풍경과 생존경쟁을 해야만 하는 서민 생활의 체취가 정말로 따뜻하게 느껴졌답니다.…역시 나는 권력자보다는 약한 사람들,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쪽에 관심이 갔고 그들 속에 나도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이응노, 박인경, 도미야마 다에코와의 대담 중에서)
이응노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을 당시 옥중에서 그린 풍경화도 2점 나왔다. 1968년 대전교도소에서 그린 '풍경-대전교도소에서'와 1969년 안양교도소에서 뒷산인 모락산을 그린 그림 등이다.
이응노가 쓴 중·고등학생용 미술교재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1956)의 초판본과 이 책에 도판으로 실린 정물화 '배추'도 함께 전시된다.
대나무를 붉은색으로 그린 1988년작 '주죽'(朱竹) 역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동백림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왜 하필 붉은 대나무를 그렸냐는 미술계 인사의 질문에 이응노가 "그럼, 대나무가 검은색입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가나아트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전후 유럽 미술의 영향 속에서 다채롭게 변모했다"면서 "그 여정을 따라가며 그가 이룬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이어 8월 2일 시작하는 2부 전시는 고암을 대표하는 '군상' 연작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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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취야-외상은 안뎀이댜', 195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42 x 55cm. 그림 왼쪽 위에 '외상은 안뎀이댜'(외상은 안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 Lee UngNo / ADAGP, Paris - SACK, Seoul, 2024[가나아트 제공.
이응노, 모락산-안양교도소에서, 1969, 종이에 수묵채색, 41.5 x 64.5cm ⓒ Lee UngNo / ADAGP, Paris - SACK, Seoul, 2024[가나아트 제공
이응노, 주죽(朱竹), 1988, 종이에 채색, 138 x 69cm ⓒ Lee UngNo / ADAGP, Paris - SACK, Seoul, 2024
고암 이응노
[가나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