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는 다섯 바탕에 불과하지만 본래는 열두 바탕이 있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바탕인데, 이 다섯 바탕 판소리를 '바탕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승 과정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은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신선타령]이다.
전승 과정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의 탈락 시기는 19세기 후반기로 알려지고 있다. 민중적 기반 속에서 태어난 판소리는 19세기 들어 자체 변모와 발전을 통하여 다수의 양반들을 청중으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했으나, 또 이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 속에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양반들의 감성과 미의식에 적합하지 않은 일곱 작품들이 탈락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일곱 작품은 그 내용에 있어서 철저하게 세속적 세계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는바, 절도와 균형, 세련을 요구하는 양반층의 문화와는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승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과 전승 다섯 바탕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생소한 [적벽가]의 내용을 소개한다.
적벽가(赤壁歌) 기본 줄거리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차용하고 있는데,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고 공명을 모시러 삼고초려를 하는 대목부터, 적벽대전에서 공명이 동남풍을 빌어 조조의 군사를 대파하고 마침내 관우가 조조를 사로잡았다가 놓아주는 대목까지 부른다. 그러나 세부에 있어서는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이 창작된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적벽가]는 판소리사의 초기부터 불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권력을 놓고 다투는 내용이 중심 줄거리를 이루고 있어서 옛부터 양반 귀족들이 즐겨 들었다고 한다. 수많은 군대와 장수들이 등장하여 전투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빠른 장단에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를 많이 사용하는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이다.
[적벽가]는 전통적으로 [충의(忠義)]를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 또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 판소리의 여성화 추세로 인하여, 전승 탈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
변강쇠타령 [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하며, 신재효 사설집에 전승에서 탈락한 일곱 바탕의 소리 중에서는 유일하게 실려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는 부분적으로 불려지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다.
[변강쇠타령]은 남도에 사는 천하 양골 변강쇠와 황해도에 사는 천하 음녀 옹녀의 이야기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성애만을 추구하다 자기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되는데, 이들은 중간에서 만나 부부가 된다. 처음에는 도시 살림을 해보지만, 강쇠가 놀기만 일삼고 강짜만 부리기 때문에 살지 못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도 놀기만 일삼던 변강쇠는 장승을 베어다 때고는 장승 동티가 나서 죽는다. 변강쇠를 치상하는 과정에서 치상한 후에 옹녀와 살기로 하고 변강쇠를 치상하려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땅에 드러붙는 변괴가 생긴다. 그러나 사당 거사패들과 뎁득이가 지성으로 귀신에게 빌어 붙었던 궁둥이가 떨어져 치상을 한다는 내용이다. 1971년에 박동진이 복원해서 부른 바 있다.
[변강쇠가]는 매우 음란한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성을 직접적 소재로 하여 인간사의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변강쇠가]에 등장하는 떠돌이들의 뿌리뽑힌 삶의 모습이나 장승으로 상징되는 지배 계층의 완강한 자기 보호 의식은 [변강쇠가]를 성애만을 노래한 작품으로 볼 수 없게 한다.
옹고집타령(雍固執打令) 소설 [옹고집전]이 전하고 있어 내용을 알 수 있다. 옹진(雍眞)골 옹당촌(雍堂村)에 사는 옹고집은 욕심 많고 심술궂어 매사를 옹고집으로 처리한다. 옹고집은 또 불도(佛道)를 능멸하여 동냥 온 중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도승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도승은 도술을 부려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로 또 하나의 옹고집을 만든다. 허수아비로 만든 가짜 옹고집은 옹고집의 집을 찾아가 진짜 옹고집을 내어쫓고 그의 아내와 같이 산다. 진짜 옹고집은 가짜에게 쫓겨난 후 갖은 고생 끝에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 도사의 용서를 받은 다음 다시 집에 돌아와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옹고집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서민 부자 층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사회의 일반적 규범을 벗어나는 행동이 서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신랄한 풍자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옹고집은 놀보와 같은 인물 유형으로서 조선조 후기 화폐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심화된 계층간의 분화와 갈등이라는 동일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동진에 의해 복원되어 불려진 바 있다.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 소설 [배비장전]이 남아 있어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서울의 김경(金卿)이라는 양반이 제주 목사가 되어 부임하는 길에 서강(西江) 사는 배선달을 비장(裨將)으로 데리고 간다. 배비장은 도덕군자인 체하는 사람으로 제주에 도착하여 주색을 멀리하고 도도하게 지내는데 상관인 제주 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愛娘)과 방자의 계교에 의해 애랑의 유혹을 받고 애랑의 집에 찾아갔다가 알몸으로 뒤주 속에 갇힌 채 바다에 버려진다. 배비장이 버려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사실은 감영의 뜰이었는데 배비장은 이를 모르고 헤엄쳐 나오다가 둘러선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행실의 바름을 뽐내던 배비장의 비속성이 드러나고 형식에 치우쳐 공허한 유교적 도덕 관념이 통렬하게 풍자된다. 최근에 박동진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진 바 있다.
강릉매화타령(江陵梅花打令) [매화타령]이라고도 한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로 되어 있으나 현재 소리는 전하지 않는다. 1992년 [강릉매화타령]의 사설을 바탕으로 한 [매화가(梅花歌)]라는 소설이 발견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강릉 부사의 책방 골생원이 강릉의 일등 명기 매화를 만나 즐겁게 지내는데 서울에 와서 과거를 보라는 부친의 편지가 온다.
서울에 온 골생원은 과거 시험 답안에 매화를 그리워하는 시를 써내고 낙방하여 강릉으로 돌아온다. 강릉 부사는 거짓으로 큰길가에 매화의 무덤을 만들고 매화가 죽었다고 한다. 골생원은 매화의 무덤에 가 통곡하고 매화의 초상화를 그려 껴안고 지낸다. 그러다가 황혼 무렵 사또의 지시로 매화가 귀신인 체하고 골생원과 만난다. 다음날 매화는 골생원을 나체로 경포대로 유인하고 골생원은 매화와 함께 자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사또에 의해 자신이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매화타령]은 타락한 인물인 골생원에 대한 풍자와 희화화를 통하여 삶의 건전성과 균형감각을 일깨우고자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장끼타령 [자치가(雌稚歌)]라고도 한다. 소리는 실전되었으나 소설 [장끼전]이 전하고 있어서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데 장끼가 까투리의 말을 듣지 않고 콩을 주워 먹다가 차위(짐승을 잡는 틀)에 치어 죽자 까투리는 여러 새들의 청혼을 받게 되나 결국 문상 온 홀아비 장끼에게 시집가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등의 교훈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여성의 정조 관념에 대한 풍자와 기층 민중에 대한 참혹한 수탈의 양상을 아울러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박동진에 의해 판소리로 불려진 바 있다.
무숙이타령 [왈자타령(曰者打令)]이라고도 한다. '왈자'는 건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중고제 명창 김정근(金定根)이 잘 했다고 하나 소리는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
1991년 소설 [계우사(戒友辭)]가 [무숙이타령]의 사설 정착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주인공 김무숙은 대방왈자로 서울 중촌(中村) 갑부의 아들이며 여자 주인공 의양은 평양에서 선발되어 궁중에 바쳐진 내의원 소속 기생이다. 의양을 한 번 본 무숙이는 대혹하여 의양이를 기적에서 빼내어 함께 살림을 차리게 된다. 의양은 살림을 제법 규모 있게 꾸려나가지만 무숙이는 여전히 허랑방탕한 생활을 한다. 보다 못 한 의양은 무숙의 본처, 노복 막덕이, 대전별감 김철갑, 다방골 김선달, 평양 경주인 등과 공모하여 무숙을 극도의 경제적 궁핍에 빠지게 함으로써 마침내 개과천선케 한다는 것이 [계우사]의 내용이다.
이로 보아 [무숙이타령]은 18세기이래 서울에 도시적 유흥이 뚜렷한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한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의 기생적 존재인 왈자의 행태를 풍자·교정함으로써 새로이 등장한 평민 부호층의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을 일깨우고자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신선타령(假神仙打令) 사설이나 소리가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1810년 경 송만재(宋晩載)라는 사람이 쓴 [관우희(觀優戱)]에 등장하는데 [관우희]에 [光風癡骨願成仙 路入金剛問老禪 千歲海桃千日酒 見欺何物假喬佺(생김새는 그럴 듯해도 못난 사람이 신선되려고 금강산 들어가 노승을 찾아 신선이 먹는다는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와 천일주를 먹었었다니 무엇으로 속였는가 가짜 왕자교(王子喬:신선 이름임)와 악전(齷佺:신선 이름임)이여.)]라는 귀절이 있어 신선이 되려고 금강산에 들어가 노승에게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와 술을 구해 먹었으나 속고 만 이야기라는 정도의 윤곽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첫댓글 좋은자료 너무 감사 합니다.
감사히 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