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 김병현을 괴롭히지 맙시다
사람들의 사회 행동은 마치 무대에 오른 배우의 역할과 같습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는 규범과 역할에 의한 공적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지만,
무대 뒤로 퇴장했을 때는 이미지 가꾸기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무대 뒤는 규범으로부터 느슨해지는 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은 '긴장을 풀고, 무대와 역할을 잊은 채',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교사 휴게실에 들어선 교사는
더 이상 교사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휴게실이 교육 자체를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은 아니지만,
업무 중 피신하거나 휴식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무대 뒤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에 대해 신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으므로
격의 없는 태도를 취하거나 더 장난스럽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무대 뒤에서는 일반적인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장소 같으면 예절에 어긋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트림이나
방귀도 그저 재미있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화장실을 단순한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은 사람들이 화장실 밖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과 역할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무대 뒤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직원이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을 때 울며 뛰어가는 곳도,
재잘대며 마음껏 수다를 떠는 곳도 화장실입니다.
남자들도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수 없을 때,
즉 창피함을 느끼거나 욕을 퍼붓고 싶을 때
화장실로 피신하여 담배를 피우면서 마음을 달래곤 합니다.
(화장실을 무대 뒤로 인식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계급별로 화장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영자와 종업원들, 교사와 학생들, 장교와 사병들은
각기 다른 화장실을 사용합니다.)
무대 뒤 영역에서는, 그것이 화장실이든 휴게실이든
자신의 역할이 교사든, 회사원이든, 연예인이든,
누구든 간에 그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관객의 눈길로 인한 행동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관계없는 사람이 무대 뒤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합니다.
아예 문을 잠그거나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등의 팻말을 붙여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대 뒤를 훔쳐보고 싶어 합니다.
파파라치는 유명인사들이 무대 뒤에서 하는 행동을 몰래 촬영하여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몰래카메라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몰래카메라에 찍힌 연예인은 마음 놓고 무대 뒤에서의 행동을 드러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안방에서 그 행동을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몰래카메라에 비친 인기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흥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가 공개되는 일은 당사자에게는 대단한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무대 뒤에서의 삶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호기심이 일더라도 식당의 주방이나 종업원 휴게실,
남의 안방과 같이
초대받지 않은 무대 뒤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서로가 지켜야 할 규범입니다.
운동선수들은 시즌 내내 극도의 긴장 속에 삽니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에
볼 하나하나에 실리는 부담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특히 한국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달고 외국에서 뛰는
골프선수, 축구선수, 야구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리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오프 시즌의 고향은 바로 무대 뒤와 같습니다.
온갖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는 귀중한 장소인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공인(公人)이라 해도, 무대 뒤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히지 맙시다.
그들의 무대 뒤 휴식을 인정하고 보호해 줍시다.
재충전하도록 도와줍시다.
홍성태님이 2003-11-18 오전 11:3에 글 올림 중앙일보
네티즌 생각
*. 요즘 언론이 사회적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에 더욱 치중한다는 생각이듭니다.
비록 김병현 사건의 발단은 저질 신문의 대명사 굿데이가 발단이지만 정작
중요한 자신들의 기능은 망각한 채 가쉽거리나 자신들의 정당화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신문 사회면은 보기가 싫어집니다.
교수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교수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공인에게도 사생활(마음 놓고 쉴 수 있는)이 있고,
이는 지켜져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감히, 공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공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고, 공인은 그런 관심으로 먹고삽니다.
사생활이 그들에게 이득이 되거나(이병헌, 혜교) 이미지도 개선하죠.
이러한 공인의 사생활에 지나치지만 않으면,
관심은 어찌 보면 ''권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김병헌의 경우, 기자가 지나쳐서 발생한 경우인데요.
어찌됐든 공인은 행동, 말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도 크게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연예계에서 이런 이야기 (성 상납, 음주운전, 도박)는 많죠.
''공인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은 무리라고 할 수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말이 장황하게 길어졌네요.
저의 미천한 생각을 한번 적어 봤습니다.
교수님, 파이팅 입니다~
*. 옳은 말씀이나 화장실 비유보다 더 그럴듯한 장소비유도 있음직한데..
그건 그렇고 공인이라고들 글 올리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김 병현은 스포츠
스타라는 게 정확한 표현 같네요.
공인이란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공직자. 의원. 사회에 교육적 영향을 미치는
종교 지도자.학자 등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