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이재효가 누군지 모른다고?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의 커다란 나무 공, 서울 광장동 W호텔의 나무 공 15개로 만든 ‘미로’라는 작품을 만든 작가이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이재효(45) 작가의 작업장이 있는 경기도 양평으로 가보자.
7월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지평면 무왕리에 있는 그의 작업장까진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마을에 들어서자 담쟁이 덩굴로 뒤덮인 건물이 ‘예술가의 집’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본 집은 그러나 예술공간이라기보다는 공장 같았다. 마당 한편엔 조각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원목들이 쌓여 있고 창고는 온갖 연장으로 가득했다. 트럭에서 일꾼들이 우르르 내렸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작업복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작업 반장’ 같은 사내가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그가 빈손으로 이곳에 들어온 지 14년 만에 세계에서 주목받는 조각가가 된 이재효 작가였다.
양평군 지평면과 이재효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6년이다. 후배한테 놀러 왔다가 마음에 들어 터를 잡고 눌러앉았다. 가난한 무명 작가로 들어와 지금은 각종 대회 수상·개인전 경력·작품 소장처를 기록한 내용이 10포인트 크기 글씨로 A4용지 세 장을 가득 채울 만큼 유명하고 비싼 작가가 됐다. 작업장엔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만 14명이다. 대부분 마을사람이다. 작은 공장 규모인 그곳에서 일꾼들은 그를 “작가 선생님”으로 부르기보다는 “사장님”으로 부른다. 매일 출근하는 그들 외에도 농한기인 겨울엔 마을 어르신들이 아르바이트로 작품용 나무의 껍질 벗기는 일을 한다. 그 덕에 마을은 활기차다. 그 외에도 이 마을엔 조각가·도예가 등 7명의 작가가 살고 있다. 작은 마을이 예술가 마을이 된 것이다.
최근 그는 평생 최고의 ‘작품’을 완성했다. 건평만 500여평에 달하는 자신의 전시장을 만든 것이다. 마을 아래쪽에 있는 작업장에서 차를 타고 500m쯤 올라갔을까.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살림집을 포함해 5개 동으로 이뤄진 3층 높이의 전시장이 나타났다. ‘이재효’ 하면 많이 떠올릴 도넛 모양의 나무 작품이 건물 앞에 당당하게 서있다. 그 작품은 지난 달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전시됐던 작품이다.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눠놓은 전시장은 직접 설계를 했다. 작은 공부터 지름 5m에 달하는 큰 공이며 의자 모양의 나무 작품, 대형 못 작품, 돌을 매단 모빌 같은 작품, 고물(古物)을 조물락거려 만든 동물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웬만한 미술관이 부럽지 않을 규모다. 전보다 훨씬 넓어진 공간에서 마음껏 작업하고, 마음대로 전시할 수 있으니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 그는 이 전시장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려들까 염려해서다.
이재효와 나무, 그리고 못
그를 먼저 세상에 알린 것은 공 모양의 나무 작품이다. 나무를 까치집처럼 덩어리로 엮어놓고 붙인 후 자르고 깎아서 공이나 도넛 모양의 형태를 만든다. 나무는 주로 밤나무·잣나무·낙엽송 등 근처 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가리지 않고 가져다 쓴다. 나무의 변형을 막기 위해 먼저 3~4일 푹 찐다. 그의 나무 작품은 공에서 반원·도넛·의자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1998년 지름 2m의 공 작품 두 개로 일본 오사카 트리엔날레에서 조각 대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수상보다 상금 1억원이 더 반가웠다.
▲ 못 작품이 주로 전시된 공간.
2003년부터는 못으로 만든 작품을 시작했다. 어느 날 타다 만 나무 위에서 물방울이 튀면서 반짝이는 것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떻게 만들면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나무를 태우고 그 위에 못을 박아 구부린 후 반짝반짝 갈아내는 작품이 나왔다. 한 작품에 수백 개,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못이 들어간다.
작품 위에 마음대로 앉아보고 만져보라는 그의 작품 철학은 뭘까? “철학은 없다. 예술은 더하기 빼기다. 가식과 군더더기는 빼고 재료가 가진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 가장 아름다운 나무와 못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나무가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못으로 이렇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면서 사물을 다른 각도로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그의 작품은 한번 보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흔한 재료로 전혀 새로운 조형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 모양의 나무 작품은 2~3t을 넘는 무게지만 금방이라도 둥실 떠오를 것처럼 가벼워 보인다.
이재효의 부인, 조각가 차종례
그는 홍익대 미대 조소과 84학번이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석사 학위·유학으로 이력서를 채울 때 그는 대학 졸업 한 줄로 끝냈다. 목공소 일꾼처럼 투박하게 생긴 그의 옆에는 역시 조각가인 예쁜 부인이 있다. 부인 차종례(42)씨는 이대 조소과 88학번이다. 신촌에서 두 대학의 조소과 학생들끼리 자주 어울렸다. 그가 부인을 죽도록 쫓아다녔겠다고 하자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쳐다본다. 그는 데이트 하고 집에도 안 데려다 주는 무뚝뚝한 남자였다. 차 작가는 그런 그가 좋았단다. 당시에 미술하는 남자에게 선선히 딸을 내주는 부모는 드물었다. 둘은 차 작가의 부모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 차 작가가 28살 되던 1995년에 빈털터리 조각가 부부가 탄생했다. 결혼하기 2주일 전에 신랑의 주머니엔 달랑 200원이 들어 있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에 있는 우사 한편에 방 하나를 만들어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래도 낙천적인 부부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마석에서 1년을 지낸 후 지평으로 옮겼다. 남편이 유명작가로 크는 동안 차 작가도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중학생·초등학생이 된 딸 둘을 낳고 몸조리 하는 몇 달을 제외하곤 계속 작업을 했다. 차 작가도 나무 작업을 주로 한다. 전시장 한 동엔 차 작가의 전시실이 따로 있다. 부부의 작품은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미술계에서 아직도 그들이 부부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해외전시로 바쁘다. 작년에는 영국·일본·대만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는 서울 용산동 비컨갤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정웅 작가와의 2인전(7월 6일~8월 8일까지)과 홍콩 전시에 이어 10월에 런던 전시가 계획돼 있다. 그의 작품은 제네바 인터컨티넨탈 호텔·워싱턴 하얏트 호텔·베를린 그랜드 하얏트 호텔 등에도 전시돼 있다. 부인도 내년 1월 다섯번째 개인전이 잡혀있다. 200원으로 시작한 대책 없던 조각가 부부는 해외 갤러리에서 찾아대는 성공한 작가 부부가 됐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수줍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부부는 그들 작품처럼 재료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무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