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백일장 고등부 산문 최우수상>
유관순
배원빈(안양예술고 3)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던 봄날이었다. 윤중로 바로 옆에 있던 중학교에서 나는 3학년 5반 맨 뒷줄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국사수업이 한창이었지만 나는 햇살을 받으면 발그레하게 피어있는 진달래, 벚꽃, 그리고 개나리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울잠에서 눈을 부비고 일어나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들이 기특했다. 널리 피어있는 벚꽃이며 개나리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애기똥풀, 금난초 같은 들꽃들도 저마다 새날의 향기를 내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왠만한 향수보다 더 좋았다. 향기로운 풀내음… 게다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이라니! 이제 곧 벚꽃 축제가 시작되면 솜사탕이며 번데기, 색깔 풍선 장수들이 줄지어 서 있겠지? 그 길을 걸어다니며 봄을 느낄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야, 이거 봐. 이수정이랑 똑같이 생겼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김광우가 내 국사책을 가리켰다. 김광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한 소녀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얼굴이 퉁퉁 부운 채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사진 밑에는 ‘고문으로 갖가지 고통에 시달린 유관순 열사’라고 적혀 있었다. 내 단짝인 수정이는 김광우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김광우의 말은 남자애들에게 퍼졌고, 웃음소리가 조금씩 커지는가 싶더니 결국 선생님께 걸렸다.
“김광우 뭐가 그렇게 재밌어?”
“아니, 저……. 그게…….”
“말해 봐. 우리도 같이 좀 웃자.”
선생님의 계속되는 물음에 김광우는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교과서에 나온 유관순 사진이 이수정이랑 닮은 것 같아서…….”
김광우의 말을 듣자 아이들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평소 외모컴플렉스가 있는 수정이는 교과서에 실린, 퉁퉁 부운 얼굴의 유관순 누나 사진이 싫은지 미간을 찌뿌렸다.
“와, 이수정 영광이네?”
선생님께서 수정이에게 말했다.
“누가 살면서 유관순 누나같이 대단한 분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보겠어. 아, 마침 오늘 유관순 누나에 대해 배웠지? 누가 유관순 누나가 한 일에 대해 말해 볼 사람? 오늘이 27일이니까, 27번!”
27번은 나였다. 다른 애들은 아싸,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벚꽃을 보느라 수업을 못 들은 터라 자신없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교과서를 곁눈질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음……. 이화학당에 다니던 시절…태, 태극기를 몰래 만들었고, 음… 그걸 시민들에게…….”
“지금까지 뭐 들었니? 으이구, 앉아!”
나는 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김광우는 내게 메롱을 했다.
“유관순 누나는 3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지. 그 만세 운동에 힘 입어 전국 각지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어. 4월 8일날, 목포에서도 정명여고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 정명여고 학생들이 재현 행사를 하고 있단다. 세상에, 그 먼 목포에서도 독립운동이 이어졌다는 게, 상상이 되니?
내 육체는 마음대로 할 수 있을지라도, 정신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일본 교관에게 소리쳤대, 유관순 누나가 그러니까 김광우! 넌 지금 이수정에게 위대한 위인을 닮았다는, 최고의 칭찬을 한 거다. 너희들 모두 그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하도록!“
수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아이들은 유관순 누나의 정신을 듣자 모두 감동을 받은 듯, 웃음기를 거두고 생각에 잠겼다. 김광우도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나는 유관순 누나에 대해 무지했던 것을 반성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평화롭게 공부할 수 있는 건 다 유관순 누나와 같은 독립열사분들 덕분인데……. 우리같은 청소년 때 그런 우대한 결심과 일을 했다는 게 너무 존경스러웠다.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아도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니 순간, 봄바람에 흩날리던 벚꽃잎 한 장이 날라와 내 교과서 위에 앉았다. 4월 8일이면 이맘때인때……. 목포에서 곧 유달산 꽃축제가 열린다며,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꽃구경을 하자던 말이 생각났다. 90년도 더 넘었던 그 해 4월 8일에, 목포에서도 벚꽃이며 개나리며 새 시작을 알리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있었겠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함성들이 새 봄에 피는 봄꽃들과 함께 피어났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윤중로’가 일본 말이라는 걸 들었던 적이 있다. 본 우리말로 하면 ‘뚝방’이라고. 그런데 다시 새 표기로 고치자면 예산이며 수정작업이며 많은 노고가 필요해 수정 작업이 늦춰지고 있다고 했다. 유관순 누나는 나라를 되찾기 우해 온 몸과 정신을 바쳐 열심히 만세를 불렀는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어 하나 되찾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나라의 희망은 청소년이라는데, 당장 우리부터 열심히 주장하고 열정을 보여야 단어 뿐만이 아닌, 점점 잃어가는 유관순 누나의 정신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유관순 누나를 존경하는 동시에 부끄러움이 느껴져 뺨이 붉어졌다.
교과서에 앉은 벚꽃잎 한 장을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숨을 거뒀어도 두 빰과 마음에 남아 있는 유관순누나의 온기 같았다. 어찌보면 열정 같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창 밖에 여의도며 대전, 광주, 목포……. 심지어 제주도까지 피어있는 벚꽃길이 다 내다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벚꽃길이 우리나나를 되찾기 우한 만세 행렬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달아오른 뺨에 담겨있는 열정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지금은 부끄러움 때문에 달아오른 두 빰이 유관순누나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정 넘치는, 그래서 달아오른 두 뺨으로 변하게 하겠다고.
봄이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 때, 내 마음도, 새 결심도 봄처럼 발그레하게 달아올랐었고, 3년이 지나 목포에서 열린 독립기념 백일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때 내가 다짐했던 결심을 다시 되새겨 보고있다. 그리고 다시 그 다짐을 달아오르게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