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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정사
 
 
 
카페 게시글
**조당집** 스크랩 우두(牛頭) 화상
검산 추천 0 조회 17 17.01.05 20: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당집 제 3 권

  

  정수선사 문등 지음

  김월운 번역

  

  우두(牛頭) 화상

  

  4조(祖)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법융(法融)이요, 윤주(潤州)의 연릉(延陵) 사람이며 성은 문씨(文氏)이다.

  

  4조(祖)가 쌍봉산(雙峯山)에 있을 적에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이 산에 오기 전 무덕(武德) 7년 가을에 여산(廬山) 꼭대기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니, 기주(蘄州)의 쌍봉산 봉우리에 자줏빛 구름이 마치 일산 같이 서리었고, 그 밑에는 흰 기운 여섯 가닥이 가로 퍼져 있었다."

  이 때 4조가 5조(祖)에게 물었다.

  "그대는 저 상서(祥瑞)를 알겠는가?"

  5조가 대답했다.

  "스님 문하에서 옆으로 한 가닥의 불법이 나타날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4조가 말했다.

  "그대는 내 뜻을 잘 알았다. 잘 있으라. 나는 강동(江東)으로 가리라."

  바로 떠나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捿寺)1)에 이르니 스님이 수백 명 앉았는데 아무도 도기(道氣)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을 보고 물었다.

  

  

1) 강소성(江蘇省) 강릉현(江陵縣) 남쪽에 있는 조당산(祖堂山)에 있다. 유송(劉宋) 대명(大明) 연간에 세웠다.

  "대중이 모두 몇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가운데는 도인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스님은 사람을 너무나 얕보시는군요. 출가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4조가 물었다.

  "그러면 누가 도인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더니, 이어 말했다.

  "산꼭대기에 나융(嬾融)이라는 이가 있는데 몸에는 베옷 한 벌만 걸쳤으며, 스님을 보아도 합장도 할 줄 모르는 특이한 사람이니, 선사께서 가 보십시오."

  4조가 암자 앞으로 가서 왔다갔다하면서 말했다.

  "선남자(善男子)야, 심심삼매(甚深三昧)에만 들어 있지 말라."

  이에 나융이 눈을 뜨니 4조가 물었다.

  "그대의 배움은 구함이 있어서인가, 구함이 없어서인가?"

  나융이 대답했다.

  "저는 『법화경』에서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게 한다'고 한 말에 의해 도를 닦습니다."

  4조가 말했다.

  "연다 함은 누구를 연다는 것이며, 깨닫는다 함은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

  나융이 대답이 없으니, 4조가 말했다.

  "서천(西天)에서는 28조사께서 부처님의 심인[佛心印]을 전하셨고, 그리고 달마(達摩) 대사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서로 전하여 4조에 이르렀는데, 그대는 모르는가?"

  나융이 언뜻 이 말을 듣고 이내 말했다.

  "저는 항상 쌍봉산을 바라보고 정례하면서 직접 가서 뵙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4조가 말했다.

  "4조를 알고자 하느냐? 바로 내가 4조니라."

  

  나융이 벌떡 일어나 발에 머리를 대며 절하고 말했다.

  "스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여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4조가 말했다.

  "특별히 방문차 왔노라."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여기 말고 다른 거처가 따로 있는가?"

  나융이 손으로 암자 뒤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른 암자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인도해서 암자 앞으로 가니, 범과 이리가 암자 앞뒤로 둘러 있고, 사슴 떼가 사방에 뛰고 있었다.

  4조가 두 손으로 두려운 시늉을 하면서 "으악" 했더니, 나융이 말했다.

  "스님에겐 아직 그런 것이 남아 있습니까?"

  조사가 물었다.

  "아까 무엇을 보았는가?"

  나융이 이 말씀에 의해 현묘한 이치를 깨달았으나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조사가 다음과 같은 설법을 해주었다.

  "대저 백천 가지 묘한 법문은 모두가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래같이 수많은 묘한 공덕은 모두가 마음 자리에 있다. 일체 선정과 온갖 지혜가 모두 본래부터 구족하고 신통과 묘한 작용이 모두 그대의 마음에 있다. 번뇌와 업장이 본래부터 비었고, 온갖 과보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다. 벗어날 삼계도 없고 구할 보리(菩提)도 없으며,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非人]의 성품은 같은 것이다.

  대도(大道)는 비고 넓어서 생각과 분별이 끊겼나니, 이러한 법을 그대가 이제 이미 얻어서 더는 모자람이 없으므로, 부처와 다름이 없고, 더 이상 성불할 다른 법 따위는 없다. 그대는 다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재하되 관행(觀行)도 짓지 말고, 마음을 모으지도 말고, 탐(貪)·진(瞋)·치(癡)를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을 품지도 말라.

  완전히 텅 비어 걸림이 없고 뜻에 맡겨 자재하니, 온갖 선을 지으려 하지도 말고, 온갖 악을 지으려 하지도 말라. 다니고, 서고, 앉고, 누울 때와 눈

  

  에 띄고 만나는 인연이 모두가 부처의 묘한 작용이어서 즐겁고 근심 없는 까닭에 부처라 하느니라."

  나융이 물었다.

  "마음에 이미 모두가 구족하다면 어떤 것이 마음이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4조가 대답했다.

  "마음이 아니면 마음을 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을 물으면 마음이 아닌 것이 아니니라."

  또 물었다. 

  "관행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경계가 일어날 때엔 어떻게 대치(對治)하리까?"

  조사가 말했다.

  "경계의 반연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에 굳이 이름짓지 않으면 망정(妄情)이 어디서 일어나랴?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마음이 마음껏 두루 알아서 마음을 따라 자유자재할 것이요, 더 이상 처음도 끝도 없으므로 상주법신(常住法身)은 아무런 변역(變易)도 없다 하느니라.

  내가 나의 스승 승찬(僧璨) 화상에게서 이 돈오법문(頓悟法門)을 받았는데 이제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대는 잘 받아 지녀서 나의 도를 실현시켜라. 이 산에 살기만 하면 뒷날엔 다섯 사람이 그대의 뒤를 이어 끊이지 않게 되리니, 잘 간직하라. 나는 떠나리라."

  이 말씀에 선사(나융)는 옥의 티 같은 번뇌가 갑자기 몽땅 없어지고, 모든 상이 영원히 없어지니, 이로부터는 신령스런 귀신이 공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이것으로써 살피건대 여래의 비밀한 뜻이 어찌 닦아 증득함으로써 능히 조사의 뒤를 이어 나란히 하겠으며, 현묘한 문에 어찌 고요함만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말을 여의고 이치에 계합하여 현요(玄要)에 집중한다는 것도 하늘과 땅[雲泥]2) 차이고, 고요한 생각으로 근원으로 돌아가 선추(禪樞)

  

  

2) 운(雲)은 하늘, 니(泥)는 땅이다.


  를 바람도 초(楚)와 월(越)과 같이 멀기만 하다.

  나융이 다시 여쭈었다.

  "대저 성인은 어떤 법을 끊었으며, 어떤 법을 얻었기에 성인이라 불리웁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한 법도 끊지 않고 한 법도 얻지 않나니, 이것을 성인이라 하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끊지도 않고 얻지도 않으면 범부와 무엇이 다릅니까?"

  "다름이 있느니라. 왜냐 하면 범부는 모두가 끊어야 할 허망한 계교[妄計]가 있다고 여기고, 얻어야 할 참마음이 있다고 여기지만, 성인은 본래 끊을 것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다고 여기니, 그러므로 다르니라."

  또 여쭈었다.

  "어째서 범부는 얻을 것이 있다 하고, 성인은 얻을 것이 없다 하십니까? 얻음과 얻지 않음에 어떠한 차별이 있습니까?"

  "차이가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범부는 얻을 것이 있으니 허망함이 있고, 성인은 얻을 것이 없으니 허망함이 없다. 허망함이 있으면 차별이 있고, 허망함이 없으면 차별이 없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차별이 없다면 성인이란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범부와 성인 둘 모두가 거짓 이름이다. 거짓 이름에 둘이 없다면 차별이 없는 것이니라.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여쭈었다.

  "성인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 같다면 마땅히 없는 것이리니,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배우게 합니까?"

  조사가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거북의 털이지 거북까지 없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대는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가?"

  나융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면 거북은 무엇에 견주고, 털은 무엇에 견주었습니까?"

  조사가 말했다.

  "거북은 도에 견주었고 털은 나[我]에 견주었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은 나가 없고 도만 있으며, 범부는 도는 없고 나만 있다. 나에 집착하는 자는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으니라."

  이어 지엄(智嚴)3)에게 법을 전하니, 현경(現慶) 원년(元年)이었다. 사공(司空)4)인 소무선(蕭無善)이 건초사(建初寺)5)로 나오시기를 청했는데, 조사가 사양하다가 못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이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니라."

  산문을 지나자마자 짐승들이 슬피 울며 한 달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았고, 산골의 못, 개울, 우물에는 자갈과 모래가 솟아서 일시에 메워졌고, 뜰 앞의 오동나무 네 그루가 5월에 번성하더니 하루아침에 모두 말랐다.

  조사가 현경 2년 정사(丁巳) 윤 정월 23일에 건초사에서 입적하니, 춘추(春秋)는 64세요 법랍은 41세였다. 27일에 장례를 지냈다. 탑은 금릉(金陵) 뒤 호수의 계총산(溪籠山)에 있으니, 곧 기사산(耆闍山)이다.

  이로부터 우두종의 여섯 가지가 생겼으니, 제1은 융(融) 선사요, 제2는 지암(智巖)이요, 제3은 혜방(慧方)이요, 제4는 법지(法持)요, 제5는 지위(智威)요, 제6은 혜충(惠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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