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雪注意報(대설주의보) 최 승 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대설주의보』, 민음사, 1983
<핵심 사항> ▶ 성격 : 묘사적, 상징적, 현실비판적 ▶ 표현상의 특징 : 폭설에 비유하여 암울한 시대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 ▶ 제재 : 산간의 폭설 ▶ 주제 : 삶의 자유를 억압하는 암울한 시대 상황 비판
<감상 길라잡이> 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정치라는 것이 본래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있건만, 종종 그러한 것들이 모두 활자로만 존재하는 허망한 개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승호의 시에서 세계란 비정하고 폭력적인 세계로 그려진다. 「大雪注意報(대설주의보)」의, 무섭게 내리는 大雪(대설)은 사실 暴雪(폭설)이다. '폭설', '폭우'의 '暴(폭)'은 글자 그대로 '폭력'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며 '폭압'이다.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눈보라 속으로 날아가는 쬐그마한 굴뚝새'야말로, 폭력의 시대를, 폭압의 시대를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왜소한 모습이 아닌가. 이 시는 다분히 사회 상황과 연결되어 읽힐 수밖에 없다. '힘찬 눈보라의 군단'과 '백색의 계엄령'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70년대 말 그리고 80년대 초의 정치적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학생들에게 이런 상황을 유도하는 일은 쉽지 않겠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하여 이런 정치적 상황이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학생들에게 군단과 계엄령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겠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는 마구 퍼붓는 눈보라와 함께 힘차게 꿈틀거리고 출렁이는 산을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쬐그만 굴뚝새에게 가해지는 힘찬 폭력이며, 동시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1연 4행), '펑펑 쏟아져 날아올 듯 덤벼'(2연 3행)들고, 힘차게 다투어 몰려온다(2연 4행, 3연 7행). 그 눈발에 산들은 온통 백색이 되어 있다. 건곤폐색(乾坤閉塞). 온통 천지가 백색으로 하나 되어 꽉 막힌 세상,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었던 세상. 그것이 70년대 말 80년 대 초의 우리 사회였다.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길을 이어서 소통이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1연 2행) 절망적인 상황이다. 어쩌면 '길 잃는 등산객들'(2연 1행)은 우리들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디로 걸어가야 할 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길은 끊어졌다. 마치 핏줄이 끊어져 생명이 멈춘 몸뚱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외딴 두메마을'(2연 2행)과 '굶주리는 산짐승들'(3연 5행)은 고립되고 절망적인 존재들, 또는 폭압적인 권력에 생명을 잃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겠다. 당(唐)의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시 '千山鳥飛絶 萬徑人 滅'을 떠오르게 한다. 거기서 '삿갓 쓴 늙은이[蓑笠翁]'―화자는 홀로[孤舟] 낚시질을 하며[獨釣 차디찬 눈 속[寒江雪]에서 견뎌내고 있다. 묵묵히 시련을 감내하는 늙은이 ― 화자의 모습은, 한겨울이 가면 곧 봄이 오리라는 시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품은 지사(志士)의 모습이다. 「대설주의보」의 화자 역시 모진 추위가 물러간 뒤의 봄날이 더욱 따뜻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등산객들) 있을 듯'(2연 1행), '(길) 끊어 놓을 듯'(2연 2행),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3연 4행), '(산짐승들) 있을 듯'(3연 5행), '(가지들이) 부러질 듯'(3연 6행)처럼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짐작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추측'에는 현실의 상황을 단정짓지 않고 거부함으로써, 조심스레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져보거나. 또는 화자의 그런 소망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아직 '그 어디에가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3연 4행)을까 두려워하여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3연 3행)추는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꺼칠한 굴뚝새'는 눈보라의 상황을 견디어내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초상이다. 소나무 가지들도 부러뜨릴 만한 무게를 지닌 눈더미, 백색의 계엄령이 해제될 때는 언제일까. 1연의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과 2연의 '다투어 밀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과 '눈보라가 날리는 백색의 계엄령'이 3연에서 다시 한 번씩 반복되는 것으로 짐작해 보건대, 봄은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이제 그 군단도 물러가고 계엄령도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부리부리한 솔개는 뒷간에 몸을 감춘 굴뚝새를 찾고 있지 않은가.
2 80년대는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절이었다. 이 시에 나오는 군단이라든가 계엄령 등의 시어들과 그것들이 주는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그러한 시대적인 배경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시인은 자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눈 내리는 모습에서조차 그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읽어 내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겨울에 눈 내리는 현상은 당연한 자연적인 현상이자 우주의 섭리이다. 따라서 눈이 내리는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눈은 평범한 일상적 현상으로서의 눈이 아니다. 여기서의 눈은 해일처럼 굵은 눈발을 휘두르며 천지를 삼킬 듯이 내리는 눈이다. 그것은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온 산을 백색으로 물들일 듯 거칠게 내린다. 이러한 흉폭성은 자연을 파괴하고 그 질서를 교란시킨다. 그리하여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의 삶들을 제압하고 위협하기 시작한다. 굴뚝새를 `죄그마한 숯덩이'같이 초라하게 만들고 서둘러 뒷간에 몸을 숨게 만드는가 하면, 삶과 삶을 연결시키는 `길'을 끊어 놓기도 한다. 또한 온갖 산짐승을 굶주리게 하고 소나무 가지를 부러뜨릴 정도의 위험으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이 시는 시대적 상황을 눈 내리는 일상적 현상에서 읽어 내며 그 비극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에서 보듯 이 시대를 이겨내려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해설: 조남현]
2006/09/29 421번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