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수필
편의점
김인정
내 어린 시절 우리 옆집은 아주 작은 구멍 가게였다. 바닥조차 흙바닥에 마당을 가벽과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공간을 만들어 약간의 생활용품과 군것질꺼리와 담배를 파는 정말 작은 구멍가게였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며칠에 한 번씩에 구멍가게 방문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상의 하루였다. 그곳에서 구경하는 군것질꺼리들은 내 것이 아니어도 내 것인 양 흡족한 일이었다.
그 곳의 주인은 할머니였다. 주인 할머니는 군것질하러 온 모든 아이에겐 매우 자애로운 할머니셨다. 그 시절에도 많지 않았던 백발에 가운데 가르마와 쪽진 머리에 개량 한복과 항상 앞치마를 두르신 마치 사극 속에서 나온 배우 같은 할머니는 한 눈에도 우리 할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고, 어찌보면 한없이 자애스럽지만 어찌보면 수 십 년을 장사꾼으로 살아오신 근성 덕에 고집스럽고 강한 세월에 흔적이 묻어나는 그런 인상을 가진 분이셨다. 간혹 계산하는 와중에 싸움이라도 붙으면 그간에 화풀이라도 하시듯 절대지지 않으셨던 세월이 강하게 만들어 버린 그런 분이셨다.
어린 시절 그 구멍가게는 옆집이니만큼 부모님이 백 원짜리 동전이라도 몇 푼 손에 쥐어주신 날엔 어김없이 그 곳에서 탕진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고등학생 쯤 되었을 때였던가 중간 과정조차 없이 어느 날 그 작은 구멍 가게는 할머니 자식들에 의해 간판조차 없던 허름한 외관을 벗어 던지고 멋진 현대식 건물에 편의점이 되었다. 24시간이나 불을 밝힌 그곳 문 앞에 한동안 할머니는 작은 의자를 문 옆에 놓으시곤 앉아 계셨다. 앉아계신 할머니와 현대식 건물의 편의점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생소한 그 편의점 안은 할머니 가게 물건보다 훨씬 좋은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때보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물건이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면 할머니에 낡은 계산기나 간혹 암산을 잘못하신 할머니가 돈을 더 받거나 덜 받는 일이 사라진 것, 그리고 할머니와 나누던 장시간의 담소가 사라졌다는 것.
주인은 여전히 할머니셨지만 새로운 기계를 사용하고 일을 하는 사람은 젊은 아르바이트 생이었다. 그 뒤로 꽤 오랫동안 할머니는 일에서 손을 놓고도 아쉬우셨던지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시고는 했다. 처음 동네 오랜 단골들은 할머니를 찾아 편의점을 애용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곧 가까운 동네 슈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자리는 대신 젊은 사람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나는 편의점 이용이 싫지 않았다. 나는 젊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느꼈다. 어른들에게 편의점은 자판기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돈을 주면 그냥 물건을 뱉어 내는 공간, 바코드로 찍어내는 전자음과 아르바이트 직원에 의해 무성의한 기계적 인사, 적응은 되고 당연했지만 아주 간혹은 내 어린 시절 속에서 어린 나처럼 흙바닥에 슬레이트 지붕 얹은 그 곳에 진열품이 더 휘둥그레 마음이 가는… 향수병에 걸린 어른이 되고야 말았다.
현실 속에 어느 누구도 지금의 편의점에 불만을 갖고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작은 가게 내 어린 시절 속 허름한 가게보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편의점을 찾게 되니. 하지만 그 옛날 백발 가르마에 쪽진 머리 할머니에게 정을 느낀 세대라면 24시간 불 밝힌 편의점에서보다 어린 시절 소등 후 주먹 만 한 자물쇠로 가게 문 닫고 집으로 돌아가시던 할머니에 작은 구멍가게가 더욱 그리워진다는 건 내가 너무 현대인이 되어 버렸단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