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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리뷰
시로 형용할 수 있는 시간의 변주
-배태건 시집 《내 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작가마을)
-이소희 시집 《오오》(파란)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세상이 달라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 정의가 무엇이고 국가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 가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작금에 보았다. 그런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는 방증이다. 다행스럽기도 하거니와 그 와중에 문학판에서는 봄을 맞기 위한 준비가 한창으로 매번 겪게 되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원고의 청탁도 귀한 것이어서 우선 답부터 해놓곤 하지만, 후회도 겹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타고난 문업이기에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배태건, 이소희 두 시인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를 쓴다는 그 자체가 심리적 우려와 긴장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에서다. 삶과 밀접한 상관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시집 속에 담긴 시편들은 고스란히 살아온 내력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두 분의 시집 속 공통점이라면 약간의 편수에서 차이는 있지만, 시편들을 시집 안에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제각각의 삶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다른 문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1. 흘러간 시간으로 찾아온 말들
먼저 배태건 시인의 『내 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를 살펴보자. 다들 가슴 안에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따뜻한 온정으로 다독여 가는 시편들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시편 곳곳에서 언젠가 있을 법한 추억들을 “꽃자리 자리 자리에 펼쳐놓은 이름 하나”, “목련꽃 터지는 봄밤이면 허공 가득 돋는 너”(「목련꽃 밤하늘」)를 상기하며 시적 상상력을 문장으로 형상화해 간다. 그런 것에서 볼 때 지난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며 현재를 바라보려 한 시인의 시심으로 번져온 “첫사랑 아득히 피어있네// 가던 길 멈춰 서서 내 마음 얹어 놓네”(「매화」)라는 첫 시가 눈길을 끈다. ‘첫’이란 의미 속에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첫사랑은 상당한 시간을 경과하면서도 변함없이 가슴속에 또아리를 틀어 아련한 기억을 더듬게 한다. 그 첫사랑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순정함을 잃지 않고 바라봐주는 ‘매화’의 은근한 향내에 잊고 지낸 첫사랑이 뭉클하며 떠올랐다. 그 마음은 아직껏 변함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일 것이다.
사람 사는 것이 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비둘기도 무리지어 먹이를 찾듯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이라야 되는 것이다. 밤 깊어 가는 시간에 거리의 악사가 슬픈 통기타를 뜯고 있다. 아직도 고픈 배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 비둘기처럼 궁색함이 역력하다. 노숙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온몸 터져라 긁어 대는 밤의 집시여/ 가자 낭만으로/ 텅텅 빈 속을 채워 넣으며/ 길들도 기울어지는 곳”(「낭만 노숙」)에서 그날따라 엇박자처럼 어긋난 노랫가락마저 구슬프다. 그 노숙자의 통기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고 지폐를 털어 한두 장씩 놓고 가는 밤 풍경이 훈훈해졌다.
“바람이 차도/ 동백꽃은 고요히 물들고/ 상처 위에 저를 누인다”(「길 위에서 말리다」)는 동백꽃의 한 생도 따지고 보면 그리 화려한 것도 긴 것은 아니다. 긴 시간 동안 개화를 준비했지만, 폈다 지는 시간은 찰나와 같다. 동백섬의 동백 꽃길을 걸으며 화자는 길가에 나뒹구는 꽃잎 속에 깊숙이 드리운 상처를 생각한다. 그 꽃들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참담함 그 자체다. 통꽃으로 떨어져 길가에서 짓밟히고 뭉개져도 안타깝게 바라본 사람도 없다.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저 홀로 ‘상처’를 어루만져 말리고 있다. 아픈 상처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치유해 가는 것이라며 세상을 향해 말하고 있다. 화자의 마음은 온통 세상의 살아있는 것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해 있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생명만이 전부가 아니라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마찬가지다. 아침마다 찾아와 즐거움을 선사했던 파랑새였다. “황사가 새벽을 밀고 왔다/ 가뜩이나 먼 풍경의 산봉우리를 가리고/ 아침을 열어주던 파랑새는 기척이 없다”(「파랑새의 언어」)라며 봄이면 몰려오는 황사로 인해 살아있는 것마저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 곳에서 둥지를 튼 파랑새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으로 살펴온 파랑새가 어느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다 못해 안타까운 화자가 파랑새를 땅바닥에 그려보았지만, 돌아올 리가 없다. 삶의 환경이 파괴된 이후를 상상하며 우리 주위를 하나씩 떠나고 있는 생명체를 통해 지구적인 환경의 폐해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것의 궁극은 우리 삶의 터전인 환경을 지켜가자는 호소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삶의 목적이고 끝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일 수 있다. 다만 그 생각은 천차만별이라도 밥상에 오른 온정은 누구나 같다. “묵은지 쭈욱 찢어 올리고 한 쌈/ 하루를 고명으로 올리고 한 쌈/ 지친 기억들 고명으로 올리고 한 쌈// 한 그릇 뚝딱 몇 숟갈 더”(「집밥」)하다 보면 배가 볼록하니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질 것이다. 그 밥상에 오른 찬들에 어머니의 손맛이 담겨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상차림 인 것이다. 어머니가 해주신 것들이 어찌 한 두가지 뿐이겠는가? “어슷썰기/ 달인이신 어머니// 아픔도 어슷 어슷/ 설움도 어슷 어슷/ 그리움은/ 기억 위에 고명으로 얹힙니다// 떡국 김 서린 설날 아침/ 이제야 알겠습니다”(「매생이 떡국」)라며 지난 시간들의 허드레 같던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들이 이제야 가슴에 박혀 마음으로 전한 깊은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이 다가왔다 흘러간다. 그러면서 은연중 지난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순간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화자도 마찬가지로 과거의 시간들을 현재화시키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보며 안타까움을 시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그것의 표현이 시라는 형상으로 발현되면서 더 없이 깊어지는 시편들이었다. 스스로 시속에서 타자화된 지점에서 바라보며 다시는 그러한 일들의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성찰의 기회란 것을 알고 있다. 「시인의 말」에서 “내 가난한 문장을 찾아 길을 잃는다”라는 의미를 천착해 볼 때 이후 다가올 시간들에서는 좀 더 내실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보았다.
2. 안과 밖을 바라본 진정한 마음들
이소희 시집 『오오』는 제목부터 색다르게 다가왔다. 감탄의 마음을 담은 의미와 뒤늦은 잘못을 깨닫고 내뱉는 탄식의 의미로까지 그 말에 포함되어 있는 간극의 편차는 큰 것이어서 단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깊은 시의에 함의된 의미가 조금씩 희미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모두가 그에 따른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며 유전자처럼 전해 온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임을 시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어 망의 깊이가 상당하게 느껴진 시 “다디단 꿀 한 모금 마실 때/ 벌 한 마리가 오간 수천의 길을 마신 것이다/ 수만의 날갯짓을 들은 것이다”, “민들레 씨앗 흩어지는 하늘을 보았다면/ 덜컥, 다음 생을 본 것이다// 그는, 그의 바깥에 있다”(「민들레의 바깥」)라며 각성한 듯한 형용이 예사롭다. 우선 한 모금의 꿀을 통해 그동안 헌신해 온 시간들을 되새겨 본 혜안이다. 이 한 모금의 꿀을 위해 수많은 꿀벌의 날갯짓과 꽃을 찾아 헤맨 노동의 시간을 헤아리게 된다. 그야말로 그 시간은 처절하리만치 치열한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본능에 충실한 결과였다. 꿀벌의 몸에 새겨진 생존 본능이란 것은 벌집에 빼곡하게 들어찬 다음 생명을 위한 헌신이다. 마찬가지로 민들레 홀씨가 하늘을 날아올라 무한 허공으로 펴져 나갈 때도 그와 마찬가지로 날아올라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모든 만물 속에는 당장의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도래할 세대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월이 하 수상하여 사월에도 눈이 내린다. 그런 이상 기후 변화를 긍정으로 바라본 시선도 그렇거니와 그 나름의 색다른 이해로 다가온 “사월에 내리는 눈, 그게 바로 눈의 뿌리야”, “첫눈이 온다고 팔짝 뛸 때, 바로 그때 눈사람이 도착한 게지”(「봄 눈사람」)라고 말하는 화자의 진의에 담긴 세계관은 다름 아닌 지속적인 연관으로 이어진다는 인연적 사고에 바탕을 깔고 있다. 사월에 내린 눈이 이상 기후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음 겨울에 올 빌미를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사계절이 우리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세계가 이만큼 혼란에 빠지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의 전지적 사고가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시간이 흘러 닥칠 제 운명을 미리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생래적으로 고유한 유전자에 그런 습성이 내재되어 있다면 그마저 놀라운 일이다. ‘blind cave fish’는 생후 3~개월부터 눈이 퇴화되어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미리 알았던 것일까? 화자는 언뜻 언뜻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어느 순간처럼 떠올랐다 사라지는 환상같은 환영을 상상한다. 그것의 기억은 마치 ‘blind cave fish’가 과거 잠깐 보았던 형상들을 기억하고 있듯이 화자도 유년의 추억 속을 유영하곤 한다. “투명한 수조 벽은 미로처럼 이어진다/ 꿈의 모통이를 돌고 돌아도 마실 물은 없다/ 수족관 밖에는 마른 빌딩들 눈 앞을 가린다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기적 소리가 들린다 그때/ 빌딩 사이로 재빠르게 사라지는,/ 내 꼬리지느러미”(「눈먼 동굴 물고기」)에서 ‘기적소리’가 꿈길을 달려오듯이 과거의 환상같은 시간 속 기억을 더듬곤 하나 보다. 그렇지만 매번 답답한 도시에 갇히고 마는 나를 확인하면서 끝이 나곤 한다. 화자는 이 시를 통해 자본주의 폭주 속에서 자꾸만 삭막해져가는 현대인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은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이 물씬 밴 ‘수야리’가 생각도 날 법 했다. “저녁상을 물리고 수박도 물리고 정제 소제까지 다 끝나야 겨우 해가 진다 평상에 누우면 할아버지는 모깃불을 피운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새우 눈알처럼 하늘못에 별들이 돋아난다 손가락 끝이 간질거린다“(「수야리, 여름의 집」)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선연해졌다. 거기에 더해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겨운 억척도 정겹기만 하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수야리’의 겨울 풍경도 그윽하기 그지없이 따뜻하기만 해서 듣다보면 가없이 쏟아지는 졸음처럼 사랑이 가득하다.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만들어 주신 썰매가 유년의 한때를 고스란히 채우고 있다. 긴 겨울밤 아궁이 속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구마를 꺼내 손녀에게 건네던 그 손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도란거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어느새 꿈에는 나비 두 마리 난다 무게도 없이 손끝에 앉는다“(「수야리, 겨울의 집」) 스르르 잠들곤 했다는 풍경은 다시는 볼 수 없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존재한다. 세상이 변해 그토록 아름다웠던 시절은 어디에도 없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엄혹한 곳이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고 살아남는 나름의 묘안을 생각 해냈다. 눈을 뜨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상 속에 우리는 산다. 그날도 그랬고 또 다음날도 그랬다. 하지만, 화자는 매일 매일을 마감하듯 어제의 일들을 안녕이라는 인사로 과감하게 단절하곤 한다. 굳이 어제의 것으로 마감하지 않아도 매일을 그렇게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터득한 듯하다. 어찌 보면 신생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겠다는 삶의 철학이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일상을 접하면서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여한 없는 이별의 인사인 “안녕, 오늘/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인사한다”(「안녕, 오늘」)는 그만의 인사법이 어찌 보면 중독된 삶의 일상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남는 수단일 수 있겠다.
이소희 시인의 시가 줄곧 말하려 한 유의미한 언어 망은 실재케 한 과거의 것에 대한 긍정의 인연성에 기인한다. 화자는 병실에서 링겔을 맞으면서 한때의 기억을 살려낸다. 어릴 적 뱀에 물린 삼촌이 당신 몸보다 화자를 먼저 챙기면서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다. 이미 뱀독이 온몸에 퍼져 한 달 넘게 고생하다 겨우 살아난 삼촌이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내 아픈 거 이거는 아무것도 아인기라”(「사력」)라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처럼 이소희 시에서 옛것이거나 과거로 치부되는 인연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긍정으로 작용한다는 것으로 삭막한 현실도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 준다.
박철영|1961년 전북 남원 식정리에서 태어나 2002년 《현대시문학》 시, 2016년 《인간과문학》 평론을 등단했다. 시집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 『월선리의 달』, 『꽃을 전정하다』. 산문집 『식정리 1961』. 평론집 『해체와 순응의 시학』, 『층위의 시학』, 『이면의 시학』, 『시안』 등이 있다. 더좋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숲속시’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