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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와의 만남은 배움의 즐거움이 있다. ―일랑 이종상 화백의 초청강연을 듣고― 학문이나 예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발전을 선도하거나 주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문의 신경향에 대한 것들을 직접 배우거나 아니면 서적을 읽으면서 깨우치고 실천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주도 그룹이 아니면 최소한 도태(陶汰)되지 않도록 변화에 적응하면서 동참해야 한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이를 응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변화고자 하는 노력없이 현실에 안주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창작의 고통 속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결국 변화를 주도하거나 대처하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가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사)한국서예협회 부산지회(지회장 김희두)에서 오래간 만에 서협 부산지회 노두호 명예회장과 외부강사 일랑 이종상 화백을 모시고 강연회를 2008년 11월 29일(토, 16:00) 황실예식장 4층 회의실에서 개최하였다. 서협 부산지회 회원과 초대작가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 많은 작가들이 참석하여 시종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경청하였다.
(사)한국서협 부산지회 남천 노두호 명예회장
오후 4시 먼저 강연한 강사는 (사)한국서예협회 부산지회 명예회장이신 남천 노두호 선생의 “도서문자와 현대서예”라는 주제로 약 1시간 강의하였다. 문자의 연원을 찾아 그 의미를 회화형식을 빌려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금성옥진(金聲玉振)’의 경우 갑골문, 금문, 전서 등을 동원하고 내용은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설을 따와 화선지에 표현하는 일종의 현대서예와 유사한 창작이라고 소개했다. 이 외도 많은 용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이 자료들을 모아 강의 교재로 인쇄했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직접 펜으로 작성한 것이어서 이것 또한 새로웠다. 그 외 한자의 기원과 서예의 원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두 번째 소개된 강사가 너무나 잘 알려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였으며 현 예술원 회원인 일랑 이종상 화백이었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화가로 더 이상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서예단체에서 화가를 초빙하여 강연한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이점이 바로 오늘의 일랑을 있게 한 것이다. 일랑 이종상 교수는 화가이지만 서예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일중 김충현 선생의 추모사에서 밝히고 있다. 다음은 2006년 12월 ‘월간 서예문화’에 특집으로 기고한 내용 중 일부이다. 후에 선생께서 동방연서회를 아우에게 맡기신 후 당시 내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국전 최연소 추천작가로 화단활동을 전개할 무렵 모교 은사이신 심선 선생이 지도하시던 문인화반을 부탁해 오신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 10여 년 동안 줄곧 ‘동방연서회’에서 문인화반을 지도하게 된다. 이처럼 선생은 한자서예는 물론이고 한글서예와 더불어 문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저변화 시키는데 평생을 바치셨다.(일랑홈페이지 자료실, 잡지란) ‘동방연서회’에서 10여 년간 문의화를 강의를 했으니 서예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와의 첫 인연은 지면(紙面)이었는데, 그 첫 번째가 이종상 교수의 수상집인 ‘솔바람 먹내음(1987년, 민족문화문고간행회)’이고, 두 번째가 1989년 동국대학교에서 취득한 박사학위논문 “동양의 기사상과 기운론 연구(東洋의 氣思想과 氣韻論 硏究)”였다. 첫 번째의 수상집과 두 번째 박사학위논문의 주요 이론을 필자의 졸고 “문인화의 현대적 의미에 관한 소고(2003)”에 인용하면서 학문적 인연을 일방적으로 맺은 것이다.
교수 출신 화가여서 강의에는 이골이 났기 때문에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좌중을 압도하며 강의를 풀어나갔다. 주제는 요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통섭’이었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전공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려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의 통합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시도가 자연과학과 인문학, 자연과학과 예술을 통섭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자연과학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작한다면 이것이 통섭이다. 서울대학교가 이 통섭 이론을 받아들여 새롭게 학과들을 개편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음악과 미술과 공학을 합친 ‘미디어아트공학과’이다.
이 이론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1929~)의 저서 ‘consilience(1998)’에 있는 것을 최재천 교수가 번역하여 <통섭>(2005)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통섭은 ‘지식의 대통합’ 내지는 ‘학문융합’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이것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는 성격이 다른 두 전공이 만나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의미의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백북스카페’의 동영상 ‘학문간의 통섭’ 강의에서 밝혔다. 많은 단어들 중 떠오른 것들이 통합(統合), 융합(融合), 통섭(統攝) 3개 정도였다고 한다. 통합은 이질적인 합치로 물리적 결합이고, 융합은 하나 이상이 녹아서 하나 되는 것으로 화학적 결합이며, 통섭은 서로 다른 것이 섞이어 새로운 것이 탄생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생물학적 결합이라서 통섭이 그 의미상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해 통섭을 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섭은 원효의 사상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일랑 이종상 화백
화가가 이런 새롭게 등장한 이론인 통섭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해 “사고의 전환”과 또 학문을 연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예를 하는 서예가들에게 왜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통섭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좋은 작품을 창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교육방식이나 법첩에 의한 서예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첩에 의한 서예는 자칫 액자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 “서예가 어떻게 통섭해야 하는가?” 이점에 대해서 몇 가지를 제시했는데 이것은 필자가 정리한 것으로 강사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이종상 작 : 흙에서 -1991- 銅錐畵
첫째, “졸작을 두려워하지 말라.”였다. 자동차 사고가 두려우면 면허증을 장롱 속에 두면 사고가 나지 않고, 배를 항구에 정박시켜 놓으면 선박과 관련한 해상사고는 없다. 이것이 면허증을 취득하고 배를 만드는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면허증은 운전을 위해서, 배는 오대양을 누비기 위해서 건조한 것이다. 여기에 사고가 수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하면 본래 목적이 상실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졸작(拙作)을 두려워하면 좋은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서예를 쓰지 말고 그려라”고 하였다. 글씨를 쓴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그린다는 사고로 임하라는 것이다. 서화(書畵)는 동근생(同根生)이다. 그래서 서화(書畵)가 추구하는 것은 근원형상(根源形象) 즉 원형상(源形象)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것의 표현에 있어 그림은 쓰고, 서예는 그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고의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예가도 그림을 배우고 다른 학문도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특히 서예가 글씨를 반듯하게 써야 한다는 도덕적 관점에서 탈피해야 함을 물론 화론도 공부하고, 철학도 공부해야 예술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섭이라는 것이다.
셋째, “문자의 용(用)에 얽매이지 말라.” 지금 우리가 서예 작품화하고 있는 한자(漢字)는 기호의 용(用)이 있다. 이것은 문자로서의 의사전달 기능, 특히 문학성과 관계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호(記號)가 가지는 미(美)의 용(用)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로 문자에 색깔을 넣어 변화를 주든지 아니면 문자를 해체하여 추상적으로 구성하는 등 여러 가지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넷째, “액자의 노예가 되지 말라.” 먹과 붓이 지배(紙背)를 철하도록 해야 하며, 특정 서체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중에 나와 있는 한자 법첩에다 자신을 가두면 사대서예(事大書藝)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서예가는 전서든, 예서든, 그림이든 못하는 것이 없어야 하며 고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답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통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종상 화백의 어록이기도한 다음 내용을 가슴에 담아두라고 강조했다. “늙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낡음을 두려워하는 서예가가 되라는 것이다.” 이것을 풀어보면 “몸은 늙어도 사고(思考)는 낡으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사고가 낡으면 어떻게 될까? 앞서 말한 대로 현실에 안주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창작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 강조한 것이 뇌 전문가 박문호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의혹은 풀고, 의문은 품어라”라고 하였다. 이 말은 상당한 교감을 이끌어내는 말이었다. 의문을 품고 살아야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 “길섶에 밟히고, 또 밟혀도 죽지 않는 풀 한포기의 강한 생명력을 보고 문득 깨치기도 하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려다 순간적으로 깨우쳐서 깨달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마치 “원효가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친 것은 평소에 깊은 의문을 품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실례를 들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1시간 이상 열강하신 화백의 눈빛에는 창작에 대한 의욕이 넘쳐나고 있어 나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 속에 빠뜨렸다.
창작이란 어려운 것이다. 전례가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고뇌(創作苦惱)는 작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이 고뇌가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쾌감을 맛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고뇌가 크면 클수록 느끼는 쾌감 또한 클 것이다. 또 이런 창작고뇌에 수반되는 어려움 즉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큰 매력이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속의 일방적인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이것이 과연 내가 하는 작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평소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 외 모든 것은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변방(邊防)이다. 이것은 중앙에 모든 것이 치우쳐 있다는 의미이다. 중앙편중현상에 심기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교류를 하지 않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개구리 안목밖에 키울 수 없어 보는 것만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지역 작가들에게 안목을 키워주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 이런 행사들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집에 돌아와 메모한 내용을 정리하다 인터넷에서 오늘 강의와 유사한 내용의 동영상이 ‘백북스카페’에 올라와 있었다. 동영상 내용은 통섭을 번역한 최재천 교수가 약 90분, 이종상 화백은 약 50분에 걸쳐 ‘학문간 통섭’에 관한 강의였다. 최재천 교수 강의는 통섭 번역과정과 최근 학문적 추세 등이었다.(백북스카페http://blog.daum.net/100booksclub/7924071) 특히 최재천 교수의 강의 중 “자연을 표절하라”고 강조를 했는데 상당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었다. 자연은 억겁의 시간 속에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전부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먼저 사용하는 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얼마 전 선(線)에 대한 예술적 의미를 써다가 우연히 신비의 곡선 ‘사이클로이드’를 접하게 되었고, 또 글자의 형태를 분석하다가 거의 대부분 글자가 자연현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서양에서는 벌써 ‘피보나치 수열’, ‘황금분할(黃金分割)’ 등의 이론을 만들어 미적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반증하는 것인가? 인간의 미적 기준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은연중에 각인(刻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자연을 표절하라고 한 것에 대해서 동감한 것이다.
아무튼 대가들의 가르침대로 의문을 가슴에 품고, 졸작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열심히 작품에 매달려 보자. 그러면 뭔가 뚫릴 것이다. 2008년 11월 29일(토) (사)서협 부산지회 주최 초청강연회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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