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양심 작가의 소명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의 창립을 새롭게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오랜 세월 한반도의 역사와 고락을 함께 한
한국 현대문학사와 궤를 함께 합니다. 식민지시대의 카프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70년대 자유실천문인회의 태동기부터 민족문학의 깃발을
넘어 새 천년 이후의 통일조국과 공동체 담론까지 고스란히 우리들의 흔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듯 난세를 돌파하는 청년의 혈기로
매진하다가 문득 흰서리 머리칼을 마주하면서 물상의 변화에 만감을 교차하기도 합니다.
먼저 지구의 온난화로 표상되는 환경 재앙의 문제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자화상을 외면한 채 오로지 문명에 몰입한 우의
대가는 부메랑의 인과응보로 돌아올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종, 종교, 영토, 이데올로기가 부딪칠 때마다 화약 터지는 소리입니다.
세계 최강대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선출된 이후에도 강대국에 의한 일방통행은 여전합니다. 무너진 사회주의 복판에 자본의 혼돈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도 지구촌 곳곳에는 쇠붙이에 의한 속박의 파장이 시한폭탄처럼 위험 수위를 예고합니다. 민족과 계급의 이중적
모순에 허덕이는 제3세계 민중들의 실상도 절박한 해결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 역시 곡절의 연장입니다. 인터넷과 핸드폰 그 정보망의 쓰나미 속에서도 다문화 가족과 비혼모
같은 새로운 용어의 안착들이 얼핏 화합의 공동체로 꾸며질 듯도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약진은 이 땅의 요소요소에 불안의 덫을
경고합니다. 수입소와 4대강 파헤치는 포클레인 소리, 줄 세우기 교육, 고등실업 양산문제, 그리고 용산참사를 비롯한 노동운동의
깊은 상처들이 삽날이 되어 어깨를 겨눕니다.
이런 시점에서 작가적 의무감은 더욱 무겁습니다. 문학은 난세의 선구자가 되는 동시에 우민화의 첨병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의
돌출된 물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아픔이 작가의 기쁨입니다. 작가는 후미진 구석 어디쯤 소수자의 구들장을 세밀하게
찾아내는 동시에 벽과 벽의 간극을 메우는 점액질이 되어야 합니다. 벼랑 끝에 몰아놓고 한 발자국씩 양보하자고 하는 양비론의 오류를
날카롭게 밝혀내면서, 노동에 지치고 부은 발등을 식혀주는 그늘자락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일한 대전작가회의와의 분리는 아쉽지만 필연적인 귀결이었습니다. 비록 행정적으로 분리되더라도 영원히 동반자로
남아 함께 가슴을 채울 것입니다. 그릇된 글들은 세상을 부려먹는데 쓰이고 바르게 쓰는 글들은 세상을 섬기는 데 쓰입니다. 우리는
게오르규의 붓끝처럼 ‘잠수함 토끼의 가장 예민한 감각대’가 되어 부재의 공간에 소통의 시대를 열어주는 창(窓)으로 남을
것입니다. 동지들의 도정에 국밥과 사랑이 넘치기를 전폭적으로 응원합니다.
2009년 12월 5일 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 발기인 일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