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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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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계단을 오르는데 밑에는 작은 폭포수가 흐르고
마치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계단 끝에는 하늘이 닿을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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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위에 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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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도, 금강문도, 해탈문도,천왕문도 없었고,
우리 시골집 대문보다 더 작은 대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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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만나다.(펌)
가려서 볼수 없다면 가리지 않은 곳을 더 자세히 볼 수있다고 극락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극....락....전 액자형식의 편액이 아니라 글자를 한자 한자 달아 놓았다.
무슨 뜻이 있을 텐데 ......알길이 없다. 극락전은 전통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매우 유명한 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백제식 건축양식인 하앙(下昻)구조가 사용된 건물이라고 한다.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에 백제양식이란 점이 흥미롭다.아마 그 때도 복원의 개념으로 다시 지어졌나 보다.
하앙식 건물은 일반적으로 강우량이 많은 지역에 나타나는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강우량이 많으면 비와 햇살을 피할 수있는 긴 처마가 필요하다. 처마를 길게 늘이기 위해 포작과 서까래 사이에 부재(하앙)를 끼어넣어 공포없이 처마를 더길게 빼내는 건축기법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히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 동안 발견되지 않아
일본에선 한국의 영향을 부정하는 논리적 근거로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백제의 장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법륜사를 짓고 했던 사실들을 인정하기 싫었겠지.
그런데 70년대 화암사에서 하앙구조가 발견되자 우리는 뛸듯이 기뻐했다고 하고
일본은 머쓱하게 되었다 한다. 한일 사이에 문화적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에피소드일 뿐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백제건축양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앞 쪽에는 용을 투각한 모습이고 뒷면은 쐐기모양으로 뾰족하게 튀여 나와 하앙을 쉽게
찾아볼 수있다. 하앙을 만나는 것은 백제를 만나는 것이다.. 봉정사 극락전에서 고구려를 만났듯이 ..
화암사는 임란 때 전화를 피해가지 못했다. 숨어있는 요새같은 지형 때문에 전쟁에 패한 병사들이 이곳에 모여 들어 반격을 도모했을 것이다.지리적으로도 전라에서 충청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그러니 왜군의 눈에는 당연 절집으로 보이질 않고 요새로
보였을 것이다. 절집은 물론 동종까지 남김없이 불타 버렸다.
극락전은 1611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사백년가까이 된 건물이다.옛모습 그대로 짓자 했던 모양이다. 잡석을 쌓고 덤벙주초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운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백제 건축양식 '하앙'이 건물의 유명세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러나 극락전의 제일 멋들어진 것은 바로 단청이다.
300년 묵은 단청이 빚어내는 그 오묘한 빛갈이란 말이나 글로 어찌할 수가 없다.
창방에 그려진 부처상이나 순각판에 그려진 비천상, 주악상을 보라. 요사를 떨던 색들은
세월따라 모두 날아가고 남아있는 것은 색이 아니라 세월의 빛이다.
고색찬연하다라는 말이 한참 부족하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미타 부처위에 닫집이 황홀하다.다포식 공포가 세겹 처마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호화로운데 경망스럽지 않다. 날아갈듯 날렵한 모습이다. 그 속에 용이 꿈틀거리고 비천상의 옷고름이 하늘 거린다.반자를 짜맞춘 천정과 대들보와 기둥의 단청은
세월의빛이 살아있는 색이다. 색의 향연이 극락전안에 가득하다.명품이다.
한편 구석에 동종이 다소곳하다. 스스로 소리를 냈다는 이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괜히 사람들이 호들갑이다.
극락전을 나와 보수공사중인 적묵당 안으로 들어갔다. 벽은 다 털어내고 기둥과 보와 서까래만 남아있다.오래된 나무와 새로운 나무가 만나 독특한 조형미를 만들어 낸다.새것이나 묵은 것이나 제자리에 있으면 이렇게 아름답다.적묵당 뒤로 조그만 산신각이 있다.산신각이라기보다는 조막만한 창고같은 분위기다.자연암반 위에 장독이 있고 돌담이 나즈막하게 누워있다.다들 제자리에 있어 이쁘다. 영락없는 시골 살림집 같은 분위기다.
서편 둔덕에는 중수기를 적은 비문이 하나 있는데 이를 알리는 안내 간판이 더 호들갑을 떤다. 제발 객이 더 큰소리치는 이런 일 좀 없었으면 좋겠다.
화암사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한 것은 바위 위에 핀 연화공주 꽃에 대한 전설도 아니고 국내 유일의 백제계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사찰이란 것도 아니었다. 안도현의 시 '화암사' 중 잘 늙은 절 한채 ...찾아가는 길은 굳이 알려주지 않겠다는 한줄의 싯귀였다.
대찰이니 명찰이니 삼보사찰이니 해서 찾아가 보면 여기저기 파헤치고 시멘트로 덧칠을 하고, 정체를 알수없는 이상한 건축물이 들어서고, 분칠인지 분장인지 알수없는 흉 한 꼴에 어처구니 없어한 곳이 한두곳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이 잘 늙었다고 하고, 알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이니
이보다 더한 믿음이 어디 있을까.비록 보수공사중이라 아쉬움이 많았지만, 부디 불사라는 분칠이 아닌, 늙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 그런 공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 힘겨워 화암사 하늘천정이 그리워지면 다시 찾으리라. 굽은 기둥도 휘여진 문지방도, 없는듯 화려한 단청도, 마당에서 꼬박꼬박 졸던 누렁이도 그대로 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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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창옥님 좋은 자료 감사하구요 수고하심에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