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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스타의 동시통역본부 스태프는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코나미컵에서 차별화된 통역 서비스를 제공했다. 앞줄 왼쪽이 이동훈 인재스타 스포츠컨벤션부 팀장이다.
사진 제공=인재스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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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 통역에 종사하는 사람들(7) 일본 통역전문회사 '인재스타' 스포츠통역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국제대회 통역과 외국인선수 통역, 경기운영 및 이벤트 통역, 각종 매스컴 통역이다. 이 가운데 그 나라 통역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잣대가 국제대회 통역이다.
대개의 국제대회에서는 만족스러운 통역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열린 도하아시아경기대회는 45개국 1만 5천 명 이상의 선수가 출전했지만 대회조직위원회가 준비한 통역은 거의 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영어 통역서비스를 했지만 스포츠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잘못된 통역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어디 카타르만의 문제겠는가.
예외가 있다면 일본이다.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의 경우 체계적인 통역서비스가 제공된다.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 ‘코나미컵’이 좋은 예다.
이 대회에서는 팸플릿에서부터 대회요강, 각종 자료 등의 번역은 물론이려니와 대회 관련 각종 회의와 선수단 그리고 기자회견장에 실시간 통역이 제공됐다. 대회에 투입된 38명의 통역요원 모두가 야구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전문가를 뺨칠 만큼 해박했다. 매우 전문적인 야구용어를 알 뿐만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역시 대단한 수준이었다.
통역요원에게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돌아온 답은 “보통이 아니게 공부한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나미컵과 같은 대회에는 심판회의, 기록원 회의 등 매우 전문적인 분야에도 완벽한 통역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통역들은 풍부한 야구 지식을 갖춰야 한다.
스포츠통역을 특화해 성공한 ‘인재스타’2005년 제1회 코나미컵 때부터 일본프로야구기구(NPB)의 의뢰를 받아 통역서비스를 제공한 곳이 ‘인재스타’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도쿄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때도 통역서비스를 했는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통역전문회사로 꼽힌다.
2002년 도쿄에서 재일동포 오희창 사장(43)이 자본금 1천 1백만 엔으로 설립한 인재스타가 불과 3년여 만에 일본 최고의 통역업체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스포츠통역만을 특화했기 때문이다. 오사장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 J리그에서 뛰던 홍명보와 유상철의 통역을 했다. 오사장은 “두 선수의 통역을 할 때 스포츠통역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를 위해 무엇보다 스포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통역요원의 양성이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오사장의 사업 구상에 힘을 보탠 이가 이동훈 씨(36)다. 인재스타 스포츠컨벤션부 팀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지바롯데에서 뛴 이승엽의 통역을 맡았다. 오 사장의 비전과 이 팀장의 가세로 인재스타는 스포츠통역만을 특화해 나가기 시작했고 이들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지금까지 인재스타에서 통역을 담당한 외국인선수 가운데 한국인은 축구의 홍명보, 유상철, 안정환, 최용수, 최성국 야구의 이승엽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외 외국인선수의 경우 J리그 감독과 선수들이 많다. 빗셀 고베의 하섹 감독(체코)과 2005년 J리그 MVP인 감바 오사카의 골잡이 아라우조(브라질)가 이 회사의 주요고객이었다. 지난해 15살의 나이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대만의 ‘야구신동’ 린이하오의 통역도 인재스타에서 맡고 있다.
이동훈 팀장은 “스포츠통역에서는 많은 국제대회 경험과 통역요원의 현장 경력이 필수적이다. 코나미컵이나 WBC같은 국제대회의 경우 몇 달 전부터 통역요원들에게 야구전문가 수준의 교육을 하며 가능한 한 선수 출신의 통역요원을 선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일 스포츠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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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건스 홍보부에서 일하는 전승환 씨는 한국, 미국, 일본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특별한 경력을 자랑한다.
사진 김동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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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건스 홍보부에서 일하는 전승환 씨(33)는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했다. 2004년 LG 트윈스에서 외국인선수 통역을 맡았고 2005년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서재응과 구대성의 통역을 담당했다. 올해부터는 주니치 홍보부에서 한국담당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주니치의 한 관계자는 전씨를 가리켜 “3개국 프로야구단의 업무를 경험한 세계 최초의 사나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이다.
전씨는 “어느 나라나 야구는 같지만 스포츠통역의 업무와 환경은 다소 차이가 난다”며 “메이저리그의 경우 외국인선수가 통역과 함께 다니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 “시샘 때문일 것”이라고 전씨는 설명한다. 실제로 보통 도미니카공화국을 비롯해 중남미 출신 선수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구단에서 통역을 제공하지 않는다. 한국이나 일본 선수들은 구단에서 알아서 통역을 붙여준다. 시샘이 날만도 하다.
전씨는 “일본에서는 통역을 외국인선수 대하듯 잘 대우해 준다”며 “한•미•일 가운데 가장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스포츠통역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LG는 8개 구단 가운데 통역이 일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내가 일할 때 알 마틴을 비롯해 외국인선수들이 착해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전씨가 3개국 프로야구단에서 일하며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가장 힘들었던 게 3개국의 야구용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번트 자세를 하다가 기습적으로 타격하는 걸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버스터’라고 한다. 그런데 메츠에 있을 때 작전회의에 들어갔는데 ‘슬래시 번트’라는 말을 썼다. 뭔가 알아봤더니 ‘버스터’의 미국식 표현이었다.” 전씨는 야구 서적을 끼고 살았고 중계를 보며 나라마다 서로 다른 야구용어를 익히는 데 전력을 다했다.
통역은 조연이자 그림자‘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는 대중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분야다. 그러나 스포츠통역에게는 화려함보다는 의무와 책임감이 요구된다.
인재스타 이동훈 팀장은 “통역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조연의 역할을 잊고 앞에 나서는 일은 절대 삼가해야 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프로선수들은 대부분 일류 선수들이므로 통역 입장에서 팀 담당자가 언급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통역은 선수가 싫어해도 들은 대로 전달해야 하며 어디까지나 팀의 통역이므로 팀의 규칙 아래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주니치의 전승환 한국담당도 같은 생각이다. “스포츠통역은 작전회의나 전술미팅 같은 비공개 공간에 외국인선수와 함께 들어간다. 따라서 절대 비밀을 엄수해야 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도 업무내용을 공개해서는 안 되는 게 철칙”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각종 국제대회를 잇따라 유치하고 있으며 스포츠산업도 성장세다. 스포츠통역 시장도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스포츠통역에 종사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팀장은 “통역은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수와 구단을 아우르는 존재”라며 “일본의 경우 통역에게 자신이 맡고 있는 외국인선수의 출신국가에 대한 전문지식을 언어능력과 함께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환 한국담당은 “외국어를 잘 하는 건 기본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통역이 화를 내면 불이익은 선수와 구단에게 돌아간다. 침착한 성격과 융통성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