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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자료실 스크랩 평화를 잃어버린 그 작은 마을, 베들레헴
허성욱 추천 0 조회 72 07.12.16 08: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평화를 잃어버린 그 작은 마을, 베들레헴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버스로 약 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바로 이 길이 2천년 전 동방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 별 따라 갔던 길이 아닌가?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마태복음 2장 6절]


 

 예수 탄생 당시 이상하게 빛나는 별을 보고 사막과 광야의 산 언덕을 넘어 저 동방의 현자들은 예루살렘에 당도한다.  중도에 그 예사롭지 않은 별을 잃어버리자, 분명 왕이 나셨을 터이니, 그분이 탄생하신 곳은 왕궁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까닭에 헤롯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메시아는 없었다.  대신 예루살렘 외곽지역, "떡집(베들레헴)"이라고 일컬어지는 조그만 마을에 바로 메시아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헤롯 왕궁을 나온 이 동방의 현자들은, 그들이 한 동안 잃어버렸던 탄생의 별과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는 되었다.  저 별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끄덕끄덕 낙타 등에 올라 탄 채, 별을 따라 산지의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은 그 옛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이 이동하며 다녔던 족장들의 길이다.  


 

 족장들의 길은 저 남쪽 헤브론으로부터 베들레헴, 예루살렘, 벧엘, 세겜 등 산 위에 형성된 성읍들을 거쳐 북쪽에 있는 다마스커스까지를 연결하는 성경의 역사가 구석구석 배어있는 산지길이다.  지금 나는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오고갔던 길, 동방박사들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여행했던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m 고지에 있는 산중의 도시이다.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 역시 산지길이다.  길 주변에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펼쳐진다.  유태인 키부츠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하얀 집단 거주지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산 저편 언덕 위에 깔끔한 자태를 나타낸다.  이런 언덕 저런 골짜기에서 목자들은 양떼를 몰고 다니며, 양을 쳤으리라....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 역시 산골 마을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다니며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였다. 다윗이 양들이 풀을 뜯는 것을 보며, 자연과의 깊은 교감 속에 시를 쓰고, 그 시를 수금 줄에 얹어 노래했을 산과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버스는 달린다. 


 

 베들레헴은 해발 777m에 위치한 산중의 도시로 팔레스타인 자치구안에 있다.  유대인들이 흠모하는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미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던 사건을 필두로, 성경 신구약의 많은 사건들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이스라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도시가 되었다.  유대인 운전자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들어가지 못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다니는 차들은 자치구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자동차의 번호판을 하얀 색으로 만들어 자치구 내의 차임을 구분한다.  다행히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아랍인이 운전하는 까닭에 운전사를 교체해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안에 존재하는 이 국경 아닌 국경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 못지 않은 경계심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검문 초소에는 베를린 장벽을 닮은 벽과 철조망이 양편으로 둘러쳐져 있어 왠지 모를 적대감과 살벌함이 느껴져 왔다.  두 지역을 구분하는 담벽에는 컬러로 낙서 같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여권을 살펴보는 지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된 후에 드디어 베들레헴 성내에 진입할 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박목사님이 이곳 경제가 지난 수년 간 많이 약화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많은 성지순례자들이 다녀가는 곳이어서, 제법 비즈니스가 잘 될 듯 싶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않은지, 예수탄생교회를 향하는 길가의 가게들은 초라하고 활기도 없다.  수년 전, 베들레헴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스라엘 군인들과 자치구 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총격전에 관한 신문 기사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러한 사건들이 이 지역의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으리라.

 


 

 거리에서 물건을 사다가 도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의 말을 듣는다.  남루한 차림의 아랍인이 "윈 달라!"를 외치며, 그림엽서 등을 들이댄다.  순간 경계하는 마음으로 어깨에 맨 가방을 나도 모르게 움켜쥔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또 낙후함이 느껴지는 베들레헴의 상가와, 초라한 모습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그곳 사람들을 보며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낀다.  아침 햇살이 퍼져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의 거리에는 실의와 무력감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나를 나오미(기쁨이란 뜻)라 부르지 마오.  차라리 나를 마라(괴로움이란 뜻)라고 불러주시오."  물질적인 풍요를 찾아간 모압땅에서 부(富)는 커녕,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된 며느리 룻만을 데리고 쓸쓸하게 고향 땅 베들레헴을 밟은 나오미의 탄식어린 일성이 생각난다.  이러한 나오미의 탄식이 오늘날의 베들레헴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 싶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반목과 적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  바로 이곳에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가 탄생했는데, 그 어느 곳보다도 평화와는 무관한 곳이 되어버린 베들레헴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베들레헴 탄생교회는 겉보기에 아무런 수려함이나 웅장함이 없는 그저 돌을 쌓아 올린 듯한 요새를 방불케 하는 무덤덤한 건물이었다.  로마 콘스탄틴 황제의 모후, 헬레나가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곳으로 추정되는 마굿간으로 쓰이던 동굴 위에 이 탄생교회를 지었다(339년).  그후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재건한다.  614년, 페르시아인들이 세력을 얻자 대부분의 다른 교회들처럼 훼파될 위기를 맞이했으나, 이 교회 내부에 있는 페르시아식 마기 모자이크 덕분에 그 형태를 보존하게 된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자 왔던 세 명의 현자가 페르시아 복장으로 묘사되어 있었기에, 페르시아인들이 이 교회를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들어가는 문이다.  육중한 돌담 밑으로 네모난 조그만 문이 나 있는데, 너무 낮아, 부딪치지 않으려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입구다.  그래서 '겸손의 문'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싫어도 경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이 되었다.  원래 있던 아치 모양의 문을 일부 막아서 입구를 좁고 낮게 만든 것은 대략 17세기경의 일로서 회교도들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보호조치였다고 한다.  이렇듯 예수 탄생교회는 인종, 종교, 정치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해온 역사를 지닌 채 오늘도 묵묵히 서서,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각양각색의 방문객들을 그 품안에 품는다.

 


 

 탄생교회에 들어서면, 정면 제단을 중심으로 바실리카 식의 돌기둥들이 양옆에 늘어서 있다.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마굿간은 교회내부 지하층, 계단을 따라 내려간 동굴 속에 있다.  아기를 나아 구유에 누였던 자리를 본다.  거기엔 커다란 별이 장식되어 있다. 1717년 카톨릭 교회에서 은으로 별을 만들어 대리석 바닥 위에 장식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탄생교회 바로 옆에는 성 캐더린 교회가 있는데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이곳에서 자정 미사가 열리고,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모여든다.

 


 

 

 베들레헴 자치구를 나와 이스라엘 영역으로 되돌아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을 검문소에서 보내야 했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여권을 검사 받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자치구 바깥에 일터를 두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러한 검문 절차를 거쳐야 하리라.  미움, 반목, 불신, 적의, 살의가 평화를 주려고 이 땅에 오셨던 메시아가 탄생한 작은 도시에 팽배함을 본다.  바로 메시아가 태어난 도시와 그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유대인과 아랍인)이 예수와 무관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게 여겨진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 14장 27절]

 

 또 다시 성탄을 맞으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참된 평화가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오랜 불화를 종식시키고 이곳에 가득 할 수 있는 날들을 마음속에 간구하며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뒤로한다.

 

주님 사랑 안에서,  이 영순 드림

새벽에 쓰는 편지 제 77신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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