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0일 참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접했습니다. 그것은 문화재청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이전으로 이관 받은 광화문을 포함한 경복궁 담장 내 미 지정 구역과 동십자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호)이 위치한 동십자각지 등 총 73,274㎡을 사적으로 추가
지정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분명히 궁궐의 일부분임이 분명한데 그 주변이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경복궁에서 외톨이로 떨어져 온갖 자동차 매연과 소음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십자각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답답했었는데 이제 정식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입니다.
경복궁 담장 위치에서 찍은 동십자각 동십자각은 광화문에서 연결되어 오는 경복궁 외궁성(外宮城)이 건춘문(建春門)을
향하여 꺾이는 부분에 세운 망루(望樓)인데 동쪽 담 옆으로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넓힌다고 궁의 동쪽 담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담장과 이별하여 지금같이 섬처럼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동십자각의 석단(石壇)은 조선 초의 것으로
추측되나 누각은 대원군 시대에 건립되었습니다. 하부기단은
멀리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당초문이 꽤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위로는 성벽처럼 벽돌로 담장을 만들었는데 이런 담장을 여장(女墻)이라고 하며 담장 중간에 십자형의 모양을 내었기에
십자각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벽돌로 만들었으니 전축(塼築)이고 위가
평평하니 평여장입니다. 종합하면 십자형 전축 평여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측으로 조그만 협문(夾門)을 내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고 누각의 기둥은 원주(圓柱)이며, 중앙 칸은 문비(門扉)를 단 방으로 되었고,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올려놓고 중앙 상부에는 연화노반형(蓮花露盤形)의 절병통을 올려 놓았다고 하나 위에서 보지 않으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붕은 겹처마 사모지붕이고 익공은 이익공
형태입니다.
동십자각은 망루이기 때문에 그 날의 당직이 오르내릴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지면에서 누각으로 통하던 석조계단은 서쪽에 세워졌던 서십자각(西十字閣)과 마찬가지로 일제 때에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디시인사이드 (http://dcinside.com/ ) 갤러리 '흑백세상'
일본의 우리 궁궐 파괴행위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망루의 계단을 없애버려 외부로부터 침입을 감시하는 동십자각의 역할과 위상을 생각
할 때 다시 한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십자각은 망루로서 옛날부터 전해져 온 궁궐조영제도에 따라 건립된 건물입니다. 궁궐이란 말은 궁과 궐이 합쳐진 말로서 궁(宮) 은 임금이 사는 규모가 큰 건물을 뜻하고, 궐(闕)이란 궁의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궐’에
해당하는 동십자각이 서십자각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면 지금의 경복궁은 궁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궁궐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많이 훼손된 채 온갖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서 있어주어서 다시금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맙고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규모는 적으나 조화로운 예술적 조형미로는 경복궁내 뛰어난 건축물중의 하나인 동십자각. 모든 문화재가 다 그러하지만 사지가 잘려나가고 숨쉬기 조차 쉽지 않지만 이렇게 버티고 남아주어서 눈물 나게 고마운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외로운섬 동십자각. 빨리 담장으로 이어야 할텐데..
문화재청의 광화문을 비롯한 경복궁 복원사업에 국민들의 큰 격려와 박수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2006 . 9 . 11
|
출처: 우회전금지 원문보기 글쓴이: 금강안金剛眼
첫댓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우리 주변에 살아 숨 쉬는 역사들을 살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자료들을 보면서 역사란 우리가 마땅히 곁에 두고 보살펴야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역사란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 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느꼈고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