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0년 동안 정신분열증과 투병하고 있는 장애우입니다. 그 긴 기간을 짧은 글로 소개하기는 어렵겠지만 저의 투병 생활과 재활 활동 그리고 병에 대한 편견과 아울러 의사 선생님들께 바라고 싶은 것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입시를 치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자 저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였고 인생도 끝인 것 같았습니다. 재수를 해서 서강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공부도 잘 안되고 사회생활도 어렵고 대인 관계도 잘 되질 않았습니다. 이 당시 저는 망상, 환청, 자폐에 시달렸습니다. 정신병인줄도 모르고 24살 때(1970) 병원에 갔더니 정신분열증으로 진단 받았습니다. 이후 전기치료를 30여 차례 받았습니다.
입원을 반복하고 학교는 자퇴하면서 많이 좌절하였습니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후 명지대학 영문과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30살에 졸업하였습니다. 이 당시에도 현실감이 없고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일도 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잘 안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약을 끊고 재발하였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5번 반복한 후 32살 때 환청, 망상에 시달렸는데 다행히 병식이 생겼습니다. 약을 먹으니까 환청, 망상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이것이 나의 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약을 꾸준히 먹고 30여 년 동안 입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성 증상이 사라졌더라도 음성증상과 양가감정, 인지기능장애, 공황장애, 공격성, 불안, 우울 등이 따라 다녔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아무 것도 하기가 싫습니다. 이 닦기가 싫고 샤워하기가 싫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 다니는 것처럼 씻기가 힘듭니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병이 걸린 후 처음부터 제가 재활의지를 보인 것은 아닙니다. 담당의사가 저를 보는 태도에 따라 제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맡았던 의사는 재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만 지어주고 결혼에 대한 희망도 주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려는 제 의지도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10년 간 맡았던 의사를 바꿨습니다. 새로운 의사 선생님은 재활 쪽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따르며 신이 났습니다. 어머니 식탁도 준비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역회사를 3개월 다니며 영문편지를 썼습니다. 43살 때는 대학 강사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떳떳했습니다.
대학 강사를 3년 열심히 한 후 용기를 내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생활에 장단점은 나름대로 있겠지만 제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 많은 체험을 하면서 삶의 질과 시야가 넓어져 제가 더욱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의활동과 박사과정 공부를 병행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5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냈습니다.
부산에 5년 동안 살면서 정신치료를 계속 받았는데 제 건강에 큰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남은 인생을 살 모든 힘을 기르고 좋은 습관을 배워 익히고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좋은 습관으로는 식사 준비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돈을 규모 있게 쓰는 것, 어렵더라도 직장에 꼭 나가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독서하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50세부터는 대학 강의를 하면서 정신장애우를 위하여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국립서울병원 낮 병동 환우들에게 4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 집단상담자로서 자격을 갖추며 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후 고양정신병원 입원 환우들에게 여러 가지 재활 프로그램을 리드했습니다. 이때는 수필을 읽고 나눔 시간을 가진다든지,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하고, 글쓰기 시간도 갖고, 비디오를 감상하며 감상 후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는 수원 정신보건센터에서 상담, 전화방문, 집단 상담, 영어회화지도를 합니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내가 환자였을 때를 생각하며 내게 해주길 바랐던 것을 지금의 환우들에게 해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지금은 저는 한국정신장애인협회 회장을 맡아 환우들의 권익 옹호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바란다면 제 자신이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재활의 시작은 제 스스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대우받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사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제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이것이 제 재활의 소박한 동기입니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서 몇 마디 하려 합니다. 정신과 의사, 전문요원들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인도해 주십시오. 환자를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 본인과 가족들도 너무 편견이 심하여 자신들이 괴롭습니다. 저는 정신병과 투병하기가 지독히 힘들지만, 이런 어려운 병과 싸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 자신에 대해 항상 대견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지독한 음성증상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강의를 나온 제 자신을 맘껏 칭찬하고 자신 있게 학생들 앞에 섰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 있게 병을 오픈합니다. 학교에서도 논문에서도 대학 강단에서도 병을 오픈했습니다. 왜냐하면 병을 이렇게 극복해온 ‘위대한 내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이 약간 있습니다. 환자가 양성증상만 치료되었다고 다 나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환자들이 재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환자가 절망해도 의사 선생님들은 정신치료를 꾸준히 해 주십시오. 그리고 환자가 집에서 하는 일상생활에도 관여를 하셔서 세밀하게 지도해 주시고 환자가 자주 활동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끝으로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용기 있는 자의 것’ 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모든 사건마다 용기를 내 왔습니다. 27살 때 대학에 편입할 때, 40살에 대학원에 입학할 때, 44살에 대학 강단에 설 때도 용기를 내서 세상에 바로 서 왔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용기, 용기, 용기를 냈기 때문에 저는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용기를 내서 병과 싸워 간다면 여러분도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첫댓글 경원님, 저도 윤석희님처럼 되길 원합니다...^^ 아니, 윤석희님의 100분의 1 , 1000분의 1 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네요... 너무 큰 욕심일까요...? 제가 뭘 착각하고 있는 걸까요...? 교만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경원님,이런 말은 하기가 주저되는데요, 윤석희님의 얘기에 공감하기 때문에 한 마디 하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통원치료를 받고있는 박 선생님께서도, 제가 대학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리면 힘들 거라고 말하시며 반대하십니다.. 어제, 병원에 약을 타러 들렀는데 서울 댁에 가신다면서 자세한 면담은 다음 기회에 하시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윤석희님의 얘기처럼 정말 인간적으로 환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정성(능력)을 다해 재활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런 의사 선생님이 이 땅에 얼마나 계신지 궁금하네요.. 물론 의사도 한 인간으로서의 힘든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에, 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의대 공부를 했기에
졸업 후,보상심리가 작용해서 너무 돈만 밝힌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물론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의 고충을 제가 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저만의 잘못된(착각인)욕심일까요.? 경원님,말이 나와서 그런지 한 마디 더 하겠습니다.우리 연구소의 촉탁의인 박**님께선 연구소에서 지불하는 비용엔 아랑곳하지않고,어디 한 번 연구소를 방문해서 전문가로서 저희 회원들에게 조언의 말씀 한 마디라도 해주셨는지요(제가 연구소에 다니는 동안은 한 번도 박 선생님을 뵌적이 없는 줄 압니다)..솔직히 비호감입니다.혹, 제가 미처 알지못한 사정과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박 선생님을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원님,죄송합니다..한 마디만 더하고 마치겠습니다..지지난 주, 손*영님을 뵙고 참 하실 말씀이 많은 것 같아서 보호작업을 하며 그냥 그 분의 말씀만 들어주었습니다(소장님,절대 상담이 아니였습니다..제가 뭔데 주제넘게 그런걸 할 수 있겠습니까)..짧은 얘기였지만 그 분은 자신의 병식을 하지 못하고, 아예 병원치료(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있는지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암튼 마음이 아팠습니다..그 후론 연구소에도 나오지 않는군요..물론, 경원님께서 그 분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전 우리 연구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겐 최대한 그 분들의 생각과 의사를 존중하면서
늘 더 크게 열려있는 연구소가 되길 바랍니다(당연히 경원님과 선생님들께서는 공무(사무)처리에 항상 바쁘시면서도 우리 회원들에게 깊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다는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기관(시설)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이지요..) 연구소가 익산에 첫 발을 내딛은지 3년이 훨씬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원님, 제 생각이지만 신학을 공부하시고 큰 꿈을 품고서 처음으로 교회를 개척하시는 목사님들의 말 못할 고충과 어려움들을 우리 연구소와 센터장이신 경원님이 겪고 계신지는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원님, 힘내십시요!!^^v~
마무리 하겠습니다.지금 전 미친 곰 한 마리가 주제넘게(착각하고,교만하고,이기적이고)쓸데없는 얘기(헛소리)를 하고 있는지는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그렇다면 저를 이해해 주십시요.성경 말씀에도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는데..-_-;;앞으론 정말 불필요한 말은 삼가하겠습니다.소장님,오늘은 거룩한 주일이네요.많은 우리 연구소 식구들이 교회에 가서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겠죠.저도 부탁하신대로 경원님과 가족들(송 선생님, 현승이, 지현이)그리고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요즘 전 주님께서 절 포기하지(버리지)않했다는 걸 아주 쪼끔씩 느끼는가 봅니다.경원님,소중한 축복받는 하루 되십시요.언제나 샬롬~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