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 이사를 가야 한다.
이사라고 해야 3층에서 2층으로 옮기는 것 뿐이지만 일머리가 없는 나로서는 마음이 분주하기만 하다.
뜨내기 살림이라고 가구 하나 변변한 것도 없어 옷은 옷대로 책은 책대로 맘껏 방바닥에 펼쳐놓고 살다가 막상 집을 옮겨야 한다니 심란하다. 그래도 지난 겨울 우연히 인터넷에서 바로 아랫층이 경매에 나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또 10명을 제치고 불과 23000원 차이로 내게 낙찰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야훼 이레'(하느님이 미리 마련해 주심)이라 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디가서 또 이 돈으로 이 만한 집을 구하랴.
경주가 생각 보다 집값이 만만치 않고 특히 아파트 전세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오피스텔이라 베란다도 없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도 없지 않지만 이리 저리 옮겨 다니지 않게 된 것만도 감지덕지.
그런데 먼저 사시던 분이 묵은 살림이 많더니 벽이 온통 못천지이고 화장실 타일도 여기 저기 구멍이 많은 게 좀 험하게 쓰셨더군. 나는 남의 집이라고 못 하나 마음대로 박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 내 집이라 생각하니 별게 다 아깝고 신경쓰인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새집으로 이사가는 마당에 또 쓰레기 담듯 쓸어 담아 가려니 마음이 울적해지려 한다.
부산에 살림집이 있고 여긴 임시 거처라고 하지만 일주일의 닷새는 여기서 자는데 아무리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는 집이라 해도 너저분을 떨며 사는 게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자꾸 짐을 늘렸다가는 나중에 돌아갈 때 힘들어질 것 같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다.
두 녀석 대학 등록금에 용돈에 이 늙은 부모 허리가 휘는 줄 누가 알기나 할런지.
살이 넉넉하니까 살림도 넉넉하려니 모두들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다.
어쨌거나 더 이상 궁상 떨기 싫어 우선 도배 장판부터 바꾸기로 했다.
가구는 몇가지 인터넷에서 제일 싼 집을 골라내어 주문을 했다.
마치 가난한 신혼 부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이것도 나쁘진 않구나.
괜히 흥분이 되어 안절 부절하기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돈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짜증을 내었다 꼭 옛날 새신랑 때같군.ㅎㅎ
게다가 남편이 주장하여 벽 한면은 분홍꽃 벽지로 포인트까지 주었다.
이것도 잠시 이사가자 마자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온갖 잡동사니를 집으로 끌고 올 게 뻔하지만 잠시라도 깔끔을 떨며 안하던 짓을 하는 남편을 쳐다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다.
어머니가 눈이 잘 안보인다며 안경을 맞추고 싶다고 내일 오라고 전화가 왔다. 황반 변성으로 시력이 자꾸 떨어지는 건 줄 어머니도 모르시지 않지만 한번 생각이 눈에 미치면 어찌나 속을 끓이시는지 기어이 안경이라도 새로 맞춰야 맘을 푸실 것 같다.
말을 뱉으면 당장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급한 성질은 모전자전인가 보다.
우리도 이사 생각에 괜스레 맘이 바쁜데 어머니까지 불러대니 좀 귀찮아지려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던가.
내일은 이사고 뭐고 다 잊고 느긋하게 어머니 말벗이나 해드리고 오자.
하루 걱정은 하루면 족하다. 정 안되면 이삿짐 아저씨가 부려 놓은 대로 놔두고 쓰지 뭐.
첫댓글 넉넉하니까 살림도 넉넉하려니 모두들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다..=>그러게 살을 빼야지. ㅎㅎ 집들이 해야지? 하이타이 사가지고 가게.
분홍꽃 포인트 벽지로 도배하고 3층에서 2층으로 옮겨 이사 잘 하시고 신혼방 심플하게 꾸며서 예쁜꿈 꾸시고 건강히 사세요~ 느티나무님. ㅎㅎ
재테크 잘 하셨네요. 우린 경제머리가 없어 재테크를 못하는데.. 새집 입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