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앞 이래유~~드레스 미싱 한대 시집갈때 가져가면 먹고 살았던 시절입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 근처가봐요.....리어카 한대로 온식구를 먹여 살리던 가장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 고단했던 시절이였구요.
서울역앞 자전거 타고 가시는분......양은 솥단지 입니다.
남대문 근처와 무교동 일대에 1980년 초까지만 해도 남도 음식점으로 유명한
곳이 꽤 여러군데 있었습니다.
서울시내에도 양극화가 심한 동네가 있었네요.
양옥집옆으로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없이 사는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시던 개척 교회 목사님들....
여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지금 이땅엔 참다운 성직자는 없습니다.
서울역앞에 군용차량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걸 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반공 사상이
가장 투철했지 않나 싶군요.
전 어릴때 북한 공산당은 이빨을 드러낸 야수같은 괴물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시절엔 고개도 많았습니다.
한남동에서 옥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제가 어릴때 한남동에서 살았습니다.
외인주택가를 동경하며 양키놈들이 던져주는 껌이나 받아먹을려고 기웃거리던 시절
뉘이면 인형 눈알이 감았다 떴다 하는 머리털 쑤세기가 되어버려 쓰레기통에 버린
인형을 좋다고 가지고 놀던 제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한남동 옥수동 금호동......
이 사진은 수원성 근처 어느 민가의 모습이랍니다.
지금이야 성곽 근처에 개발도 못하게 보존하고 있지만 그시절엔 성곽이 담벼락을 삼아
살았나봅니다. 먹고 살기에도 똥구녕 찌져지게 가난했던 그때에 국보 보물같은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일본놈들에게 국보 보물을 팔아먹은 족속들이 바로 한국인 종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일본놈들이
한국인을 무시하지요.
지금 일본놈들이 150억 주면 되돌려 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니.......에혀.........
여러분들 소식적때 각각 집에서 김장 몇포기씩 했나요?
저희집은 8식구에.....김장 200포기에 깍두기랑 총각김치 동치미 파김치 갓김치
마당 앞에 땅파고 김장독을 주르륵 묻어뒀던 풍경이 생각납니다.
저 시절엔 소달구지에 배추를 실고 팔러 다녔나 봅니다.
6.25 전쟁후 얼마안된터라 모든 자원이 부족한탓에 이산저산 나무라는 나무는 남아나는게
없었지요. 오죽하면 지리산 영신봉에 주목나무들이 죄다 나무그릇 만들어내느라
없어졌겠습니까? 뭐든 돈만 된다하면 누구나 할것없이 먼저 차지하는게 임자라~~하여
무식하게도 베어내고 짤라내가고 했습니다.
저기 밀집모자 쓴 남정네 손에 들고 있는 소주병이 금복주 4홉들이 쐬주병입니다.
저 금복주 쐬주병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울친정 아버지는 49살 나이에 잔디이불덮고
일찌기도 주무셨지요.
그렇게 말려도.....그렇게 울엄마랑 싸우면서도......죽자고 마셔대더니...죽을때는
굵은 눈물 흘리면서 죽기싫다고 우시더랬지요.
지금이야 봉고트럭에 탑차들이 각종 물건을 실고 다니지만 그 시절엔 소달구지가 모든
운송수단으로는 최고였지요.
쌀가마니와 소달구지......한때 유행하던 유행가 가사가 떠오릅니다.
" 덜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 가네...." 어느 여가수 노래들 생각나지요?
누구였드라?????
김장철때 인가봅니다. 애엄마 모습을 보니 약 30대정도?
울딸내미들은 저 애기엄마 보다 나이를 더 먹었어도 김장은 커녕 김치를 담궈먹을 줄도 모릅니다.
김치는?.........친정엄마가 담궈 주는거
저또한 김치는 잘 담과먹질 않아서 딸내미들한테 뭐라 할 자격도 없지만서도.......
암툰 저 시절에 아낙네들은 하루종일 식솔들 입에 뭐라도 들어가게 할려고 무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시래기 무청도 엮어서 매달아 놓은거 보세요.....
겨울내내 일용할 양식들입니다.
가을겆이를 하고 난 지푸라기 하나라도 버리는게 없었던 시절입니다.
지붕 이엉엮어 올려야지.....소 먹이로 쌓아둬야지
새끼엮어서 이래저래 쓸요량으로 장만해둬야지..........
전 뭣보다도 짚푸라기 위에 자반 고등어 꿔먹던 그맛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성남에 있는 남한산성의 성곽입니다.
요즘도 남한산성에 가보면 계속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진을 들여다 보니
어디쯤인지 알것 같습니다.
옛날에야 남한산성 안에도 무허가 집을 짓고 많이들 살았지요.
무속인들의 무당집도 무진장 많았구요.....남한산성엔 터가 아주아주 쎄서 무속인들이
기도할때 켜놓았던 촛불로 불도 많이 났더랬지요.
지금도 깜깜한 밤중에 징징징.......북 뚜둘기며 기도하는 무당들이 간혹 있습니다.
한남동앞 제 3한강교 같은데요?
가수 혜은이씨가 불렀던 제3한강교.....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밑을~~~~
그나저나 혜은이씨는 성격도 좋고 인물도 좋은데 남편복은 없는지 이태껏 빛갚느라
고생만 했다네요.
남편은 인물만 잘나면 뭐합니까? 인물 뜯어먹고 사는것도 아닌데....
미국대사관 앞이라네요.
한때 미국으로 이민가고 싶어 이민병에 도진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캐나다 와 미국으로 이민들 많이들 갔지요.
캐나다로 이민간 울영감 친구들....지금에 와서 보면 그네들이나 우리나 별반 차이 나지도
않습니다. 연금받아서 생활비에 턱없이 모자라는건 캐나다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친구들도 아직까지 장사하면서 언제 일손을 놓을지 기약없이 살더군요.
한국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입국해서 어디 땅뙈기 없나? 있으면 형제들끼리 싸우고.........
수원화성 이랍니다.
요즘 수원 화성에 가보면 으리뻔쩍 잘도 정비해놨더군요. 시민들이 애들하고 나와서
연도 날려가며 평화로운 풍경속에서 공원다운 공원으로 거듭나 있습니다.
수원화성 성곽 한바퀴 돌아봤는데 좋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우리 청춘방님들하고 수원에서 모임을 한뒤 성곽을 함 걸어보고 싶습니다.
가슴 흔들릴때 걸어야지.......무릅팍 흔들릴때는 못걷습니다.
이사진도 수원시내 풍경입니다.
저멀리 고기와집이 보이는것을 보니 창녕문 근처 같네요.
저산은 팔달산 같구요.
서울 시청앞 입니다.
찌뿌차 뒤로 보이는것이 전기선인가 통신선인가 케이블 공사가 진행되는듯한
모습이 보이는군요. 1966년대엔 전기불 없이 사는 집들도 많았습니다.
전기불 들어오고 전화있는 집은 요즘같으면 강남 아이파크 정도에 사는 수준이였지요.
저는 1966년도에 한남동에서 미국 양키들이 사는 외인주택가에서 쓰레기통 뒤지며
고물 줒어다 강냉이 바꿔먹었습니다. 양주병 하나 득템하면 그날은 게 타는 날입니다.
산에 땔감 될성싶은건 이렇게 죄다 베어내어 한때는 온나라 산들이 벌거숭이가 되었지요.
제가 국민핵교 시절에 나무를 심자~ 산에 나무를 심자고 노래까지 불러가며...
푸른산을 가꾸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으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어딜 다녀도 온산이 너무 무성해져서 간벌 작업을 하고 있지만서도요.....
요 사진도 수원 성곽의 어느 마을입니다.
팔달산에서 내려와 우측으로 ......성곽을 도는 코스가 있는데 풍경으로 보아 한국은행수원점
입니다. 제가 수원지리를 잘 알아서 압니다.
수원 화성근처 냇물이 흘러가는곳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는군요.
지금은 저 냇물엔 오리들이 한가롭게 노닐고......자전거 도로가 마련되어 시민들이
운동을 하는 코스로 변모되어 있습니다.
자.....이렇게 1966년도에 풍경을 보시고 느낌이 어떠한지요?
저시절보다 잘먹고 편한 집에서 살면서 저시절보다 행복한가요?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미국도 아니고 유럽 선진국도 아닌............가난한 어느 아프리카의 국민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