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8일-17일 인도네시아 교육봉사 체험기
교육봉사와 여행을 곁들인 이번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은 색다르다. 물론 주 목적이 교육봉사로 8박10일의 일정에서 5박을 자카르타에 머물며 교육봉사와 국제학교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나머지를 사흘을 여행 체험이었으니 여타의 여행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였다. 미리 사전모임을 하면서 대략적인 사정을 전해듣고 나름의 자료를 준비하였으나 첫날 마주한 방기방사 (?) 학교는 상상 이상이었다. 시설이 낙후되거나 열악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상상을 했으나 주변 환경의 방치내지는 방관이 나 자신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교회 건물 옆에 세워진 학교는 부서진 농구대와 미끄럼틀이 전부인 농구장 두세배 크기의 운동장에 그 옆의 수로엔 썩은 물에 쓰레기가 둥둥 떠 있었다. 2층 강당으로 가려니 서너평 남짓한 사각 수조에도 쓰레기와 오물, 올챙이 들이 가득했고 비상계단의 철제 난간은 머리를 부딪히게 할 높이에서 우리가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레 지나야 했다. 2층에 올라서니 건물 옆은 커다란 늪처럼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둥둥 떠있었다. 목재, 플라스틱, 비닐 등등 이런 환경을 방치하고 교육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에서 나의 상식을 의심하게 하였다. 낯선 얼굴들 그러나 순박한 미소로 답하며 우리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시선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를 들어 본적이 거의 없는 학생들에게 노란 병아리색 조끼를 맞춰입고 나타난 13명의 선생님들은 어떤 대상이었을까 ? 34℃를 넘나드는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교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땀흘리며 접고 붙이고 손짓 발짓으로 수업을 하며 조금씩 가까이 가고 서로에게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전해들은 얘기로는 이들의 한달 학비는 우리돈 3,000원이며 그중 70% 무료로 다니고 있단다. 수업은 오전에 끝나고 오후가 되면 교사도 교장도 없는 텅빈 학교가 된다. 오전엔 교육봉사 수업을 하고 오후에 는 학생도 교사 교직원도 없는 곳에서 우리들만의 노력 봉사를 하였다. 처음엔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억들도 5일째 금요일날 국제학교를 방문하고는 일부 해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학교 교사 월급이 20만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반면에 국제학교 학생들과 비교되어 속이 많이 상했다. 국제학교 학생들은 학비가 한달에 우리돈 55만원 1학기에 300만원 정도부터 그이상인 학교도 있단다. 국제학교 학생들과는 피부 색깔부터 얼굴 표정부터 다른 듯했다. 학생 수는 별만 차이가 없는 데 청소를 도와주는 사람만 17명이라는 곳과 청소할 빗자루가 있는지 조차 희미한 학교 학생들의 차이는 상상이상 이었다. 그 후에 방문한 다른 국제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방기방사 빈민학교 학생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흘째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지금 너희들의 모습이 나의 50년 모습과 같다’고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학생들은 믿지 않는 눈치 였으나 분명 나의 어린 시절이 그들의 처지와 겹쳐지는 부분이 많았다. 196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였다. 그당시에 내나이 7세이고. 대학생이 되었던 1977년에 1,100달러 였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절대로 잊지마라 너는 할 수 있다. “ You can do Don’t forget your dream ” 교육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줬다고 강조를 했다. 그들이 얼마나 이해했으랴 아마 그학생들에게 우리들이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상현실 체험도 하고, 2층집에 각종 가구를 접어서 배치해 보는 실습도 같이 하였다. ‘해피하우스 마이 홈’이라고 써 붙인 모형에 자신의 이름도 적어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 한번도 해보지 않은 수업, 신선한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스프링과 고무줄의 탄성력을 이용한 자동차라든가. LED 꽃 등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성취감을 맛보았을 것이고 젓가락과 고무줄 만으로 만드는 투석기 실습에서는 한국 학생과 별 차이없는 창의력을 선보였던 학생들이다.
그들 스스로의 가치와 꿈에 대한 생각을 스치가는 스콜처럼 잊어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2일째 부터는 운동장조차 빗물에 잠겨 맨발로 교실을 건너 가거나 담을 넘어 하교해야만 학생들,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청소나 뒷정리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교직원들의 마인드를 보면서 한숨이 절도 나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우리의 교육봉사가 작은 바램과 희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은 매우 낯설고 불편한 것이 많았다. 식당이 길건너 있는 것을 보고서도 40여분을 빙빙 돌아서 가야하는 교통 체계와 도로 혼잡, 간단한 물건을 사고 계산하는 데 보통 30분이 걸리는 느림과 비효율이 내 머리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였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몇십층짜리 건물들이 빼곡한 수도에서 도로에 뛰어들어 밀려오는 차를 막아서서 차량흐름을 유도하며 목숨걸고 푼돈을 버는 아이들이 있음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자꾸 나의 어릴 적 생활과 이들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연수 내내 습관처럼 반복되었다. 수줍게 선물을 받거나 건네는 사탕을 주먹에 쥐는 학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리를 배우고 더불어 사는 것을 익히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는다. 우리와 함께한 학생들이 노란색 조끼를 입은 이방인 교사를 통해 잠시 꿈을 생각해보길 희망한다. 자기 발전에 대한 외부의 자극과 격려, 주변의 기대치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들에게 머물렀던 시간을 아주 짧은 것이다. 교실 벽의 페인트를 바꾸고, 때에 쩔어 붙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던 화이트보드를 신나로 닦아내고, 2개는 새롭게 구입하여 달아주고 하였으나 그것을 계기로 변화와 자극을 유도해주는 교사의 인도가 없다면 그저 1회성에 그치리라. 그런 점이 이번 교육봉사에서 남은 아쉬움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기 어렵다는 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학생 뿐만아니라 교직원들도 고마움을 넘어 스스로 무엇인가 변화를 주려는 시도를 해주었으면 한다. 주변에 넘쳐나는 쓰레기라도 치우는 적극성이 아쉽다. 저지대라서 하수구가 넘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부터 가르쳐 주며 솔선수범하는 것을 바라고 싶다. 관점의 차이이며 책임감의 차이일 것이다. 수업은 윗사람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눈이 더 무서운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행동하나하나가 그들의 시선이 되고 그들의 기준이 될 것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어릴적 모습을 한 학생들과 마주한 인도네시아 교육봉사는 앞으로 내 교직생활 내내 많은 생각을 품게 할 것이다. 교육봉사를 통해 조급증에 대한 작은 여유도 배웠고 교육자로서의 의무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였으며 더불어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의 은공에 감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대 변혁기를 거치며 성장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미국 원조의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받으며 성장한 우리 세대가 이처럼 외국에 교육봉사를 하게 되었고 우리의 어린 시절을 말할 수 있는 산증인으로 봉사를 나서게 되었음 자랑스럽다. 이번 인도네시아 교육봉사 체험은 오랜 기억과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방기방사 학생들의 초롱한 눈망울을 기억하며 스스로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극제가 되고 있을까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계기를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나는 올해로 36년째 교단에 서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수많은 만남과 인연을 만들었으니 소중한 하루 하루가 아니겠는가? 그 만남으로 학생들 스스로가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들에게 자극제로 나의 잔소리가 가끔 생각난다면 나는 교사로서 당당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수많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도 그 미소 속에 행복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