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움 말)
16: 9 수하(手下) - 상징적으로 '힘', '명령', '지배'란 뜻, 곧 사라의 지배와 명령을 의미함
16:13 감찰(鑑察) - 자세히 보아 살피심
16: 2 "들으니라"; 이 단어에는 '동의하다', '만족하다'는 뜻이 들어있다. 즉,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순순히 사라의 요구에 응하였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었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적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을 유지하고 끝까지 묵묵히 견뎌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원래 이름은 '사래')는 전자의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먼저 사라는 약속의 지연을 순전히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수단을 강구하게 됩니다. 사실 그 당시에 결혼한 여인에게 아이가 없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할 수 없이 합법적으로 자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관습법에 의하면 남편은 마음대로 아내의 몸종을 첩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자식이 없었을 경우에 몸종이 낳은 아이는 여주인의 아이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여종 하갈은 여주인을 멸시하게 되었고, 사라는 본부인으로서 법적 지위가 위태롭게 되자 이에 반격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다시 여종의 지위로 격하되었습니다. 그러자 하갈은 비상수단으로 멀리 남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이럴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광야에 있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체험을 한 후에 그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세상법을 어기면서 얕은 신앙 가운데 태어난 그녀의 아기는 약속의 상속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은 단지 진정한 베두인 사람(참조, 창13장), 즉 자유롭고 야성적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호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 도전적이고 거만한 어머니에 걸맞는 아들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인위적인 해결책이 끔찍한 결과와 혼란만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법으로 해결합시다!"라고 하는 것은 궁여지책일 뿐이지 최선책은 아닌 것입니다.
삶의 변화를 위한 묵상)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중간시기'가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첩으로 준 것은, 이 '중간시기'를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는 처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라는 그와 같은 자신의 행위는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 때문이라며 하나님께 핑계를 댔습니다(2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내'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인내하지 못한 사라의 행동은 결국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까?
궁 금 해 요)
도망하는 하갈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약속해 주셨는가?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여 그 수가 셀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라는 것(10절)과 그녀가 낳을 아들의 이름("이스마엘", 11절)과 그 후손들이 동방의 고대 근동지역에서 살게 될 것(12절)이라는 약속(축복)을 받았다.
이스마엘 "들나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16:12)
여기서 말하는 '들나귀'는 '길들이지 않는 야생 나귀'를 가리킨다. 이 들나귀는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주로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아라비아 지역에 많이 서식하였다. 이러한 들나귀는 성질이 급하고 동작이 빨라서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광야를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이스마엘을 이같은 들나귀로 묘사한 것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베두인들이 유목민으로서 자유롭게 이동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을 뜻한다.
잠 깐 만 요 !)
"감찰하시는 하나님(엘로이)"
하갈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엘로이"라고 고백한다(창 16:13), '엘로이'란 말에는 '내가 본 하나님',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란 뜻이 들어있다. 즉, '엘로이'란 말은 '내가 나의 눈으로 확인한 하나님', 또는 '모든 것을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또한 살펴보신다'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