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힘
김 진 영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과의 만남을 조심한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그로 인해서 내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늘어난 몸무게와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 문제, 그리고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관심 있는 연예인에 관한 동영상을 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주제의 동영상을 멍하게 보기도 했다. 평소엔 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던 핸드폰 게임을 붙잡고 점수에 집착하기도 했다. 또 웹툰을 볼 때면 시간은 물 흐르듯 그냥 흘러가 버렸다.
핸드폰에서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가 있었는데, 버릇처럼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연속적으로 들어가는 순간, 흠칫 놀라며 현재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무의식이 의식을 이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혼자 있는 상태에서의 실수였지만, 이 상황에 대해 찬찬히 생각하게 되었다. 혹여나 다른 사람과 있을 때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에 아찔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위기의 상황 직전인지도 모른다. 더 지나쳤다면 아마도 그것에 더 빠져들었을 것이다.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내 실수를 거기에 덮어 씌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핑계가 필요했다.
자동차에도 브레이크가 있듯이 지금의 상황은 브레이크가 필요한 상황인 듯하다. 브레이크는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신호를 기다려야 할 때, 위험을 감지했을 때 그리고 목적지를 변경해야 할 때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마 지금이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적절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멈춤이 아닌 의미가 있는 멈춤, 그것은 상황을 돌이킬 수 있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 이 멈춤이란 시간 속에서 지금을 돌이켜 보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멈춤이 없었다면 무의미하게 뒹굴뒹굴하며 핸드폰을 계속 잡고 있었을 것이다.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아 본다. 어쩌면 불만족스러운 지금의 내 상황에 자존감이 낮아져서, 현실 속에 있는 나를 버리고 내가 없는 곳으로의 도피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대부분 예전에 잘했던 일만 더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걸 보면, 현재의 내게 불만족스러운 게 분명하다. 예전의 내가 잘했던 일을 되뇌어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도리어 더 초라해졌었다.
이제 초라해져 움츠렸던 어깨를 펴보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정지해 있는 시간을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지금의 멈춰있는 시간으로 인해서 앞으로의 시간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걸어갈 시간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아서 설레기까지 한다.
다시 무의미하게 시간을 버리는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깨닫고 멈춘다면 훗날에도 앞으로의 시간에 다시금 용기를 낼 것이다.
멈춤의 지금이 고마워진다. 멈추었다는 것 그 한 가지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 멈추어 있지만, 그것을 알아가는 순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백무산 시인의 시 ‘정지의 힘’ 중에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분명 멈추어 서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힘입어서 변화를 추구한다면 언제든 아름다운 멈춤이 되리라.
이제 한 가지 일에 정신없이 몰두할 때, 브레이크를 염두에 두어야겠다. 만약 잘못된 방향이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멈춤으로 인해 앞으로의 시간이 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