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구효서(1957-), 문학사상(제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7년), 2017.1.26. pp 12-84(P. 352)
- 구효서(1957-), 강화도.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마디」당선.
** 우리나라 언어도 (단순과거와 달리) 과거와 반과거 시제가 있고 현재 시제가 있다면, 작가의 이 소설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즉 작가는 시점이 다른 두 상황을 교대로 쓰면서, 현재시점 또는 현실적 사태들에 대해서는 평소 글씨체로, 그리고 과거 회상 또는 과거 상태의 상상적 전개 등은 흐린 글씨체로 썼다. 글씨체라기보다 시제 스타일을 창안하도록 노력했다면 매우 좋았을 것이다. 그런 시제를 우리말에서 만든다는 것은 엄청나 노력과 강도(내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소재를 구상하러 외국을 찾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 작가도 그런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작은 절을 찾아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절에 노스님 젊은 스님 공양주, 절 아래 농사짓는 부부가 모두 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들게 써 놓았다. 그래 오래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면 그렇지 뭐. 공동체가 따로 있는기가. (52OME)
* 이 소설을 읽다가 “네 그렇군요”라는 상황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군대의 용어 였다. “예, 다, 까” 그리고 고원이라는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시골에 내려갔을 때, 그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할 때, 내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 그들이 말하는 내용들에 대해 설명, 설득, 박박이 아니라 그저 “네~ 내~” 하는 것이 그들과 같이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고원에서는 “묵언, 운력, 검소”라고 정한 것도 고원에 여러번 들르면서 였다. (52OMC)
** 내가 오래된 친구에게 이 글을 읽고 전화한다고 했더니, - 응 그거 벌써 오래된 소설인데 .. 작가가 절집에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 쓴 거. = 응 그거 절집에 노승이나 젊은 승이나 공양주 보살이나 그냥 오래 살면 가족 공동체 같애. - 그런가? 불교가 아니라 사는 것을 보는 것이지. = 그래, .. 소설에는 “네, 그렇군요”라고 하는데, “아뇨”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났지. 그리고 “같잖은 생각”의 셋째 마당이 나가르주나와 구마라습이기도 하고 해서 다음에 “네, 그렇군요”하고 “아뇨”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52OMD)
** 불교에 관한 것을 읽은 탓이기도 하지만, 나의 화두 같은 주제가 “이뭣꼬”인데 친구에게 전화하기 전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같잖은 생각”으로 불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가 사유공간과 물질공간에 고민하고 추론하는 동안에, 인도에서는 어디서와서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물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지구와 천구라는 위상의 관계보다 어제-이제-아제 라는 통시가 더 공통적 관심사일 것인데, 이 관심사는 과거는 없고 미래를 규정할 수 없으니, 하늘(천구)에 투영한 것이 아닐까. / 소설에서 ‘미와’ 또는 ‘나’는 이중성으로 전개된다. / 내가 들뢰즈의 스키조가 라깡의 파라노이아보다 근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중성에 대한 위상의 차이에서 이다. 스키조는 어제 대 아제이고 파라노이아는 토지 대 하늘 이라는 생각이다. 소설에서도 이 이중성에서 땅 때 하늘의 이중성이 아니라 어제 대 아제의 이중성을 찾아보려 했던 것 같다. (52OMI)
# 풍경소리 **********
미와는 오늘도 노트에다 슥삭슥삭 적었다. 풍경 소리를, 들으라고, ..(12)
왜 좌자에요? / 첫날 미와가 물었었다. / 이곳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21)
그렇군. 고양이 이름었군요. (27) [고양이 이름=상철]
싱크로율 백퍼센트(45) [싱크로율(Synchro率, Synchronization Rate), 한국어로 싱크율, 동기화 수준 등으로 표기한다. 국립국어원에선 일치율로 쉽게 쓰자고 권고하고 있다. ]
모든 소리의 근원 같은 거 아닐까요? 소리의 부처. 들을 수는 없지만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소리, 영, 공, 빵의 소리. / 그런 소리를 일컬어 누가는 천뢰라 했고 누군가는 옴이라 했고 누군가는 태오의 말이라고 했다. 저들 미와와 수봉은 묘음이라도 대적이라고도 영, 공, 빵의 소리라고도 했다. (64)
이름과 만물이 하나였던 시절의 이름은 지금처럼 종이위에 적나 입으로 통해 전화로 옮길수 있는 이름이 아니어서 이름이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어떤 말과 이름으로도 나는 일컬어질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64)
벗어나고 싶다는 맘이 못 벗어나게도 하니까요(67)
실을 잣듯, 살에 깃든 평생의 시간을 풀어내는 거죠. (73)
퇴계의 시에 그런 게 있다죠.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74)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52OMC)
(2:15, 52P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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