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카페에 들렸다가 저도 평소 관심사 였던 Mindfulness에 대한 두 교수님의 뜨거운 논쟁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고 앞으로 한국의 명상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희망의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사실
이 문제는 나중에 워크샵을 수차례 해도 될 만큼 단순한 문제이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혹시 저의
경험이나 생각이 향후 이 문제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지 몰라 글을 올리게 되엇습니다.
저는 작년 UCLA의과대학 인턴을 가서 UCLA에서 진행되고 있는 명상프로그램(MAPs Practices Program: Mindfulness Awareness Program)을 수강하게 되엇습니다. 그때 제일 먼저 궁금햇던 것이 UCLA의 MAPs( Mindfuness Awareness Practice)와 마사츄세츠대학의 Jon Kabat-Zinn의 MBSR의 명상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였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개발 과정에서 일부 수정이 되어 약간 다르지만 거의 같은 명상이었습니다.또하나 재미 있었던 것은 우리는 명상을 동양문화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동양적 사상이 배어있는'meditation'이라는 용어 보다는 학문적으로 'mindfulness'라는 용어를 많이 쓰며, 이는 미국의 임상심리학 상에 지난 30 여년 동안 뿌리가 내리고 있었습니다.어느 책에서는 감히(?) 서양의 "'mindfulness""는 동양의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한것을 보았고 현재 미국에서 발표되고 있는 명상관련 연구 실적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의학, 심리학적으로 연구되는 논문 이나 학술지, 저서의 숫자가 아마 동양권 전체(한국, 중국, 일본,인도)을 다 합한 것 보다 많을 것으로 생각되며, 질적 수준도 최근의 뇌과학, 유전자공학, 심리학,정신신경면역학, 심신의학 등과 결합하여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 즉, 문화적, 시대적 배경이 다른 인도에서 시작되어, 미국을 거쳐 한국에 온 'mindfullness'에 대한 한국어 용어를 규정하기전에 먼저 생각할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쓰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특성입니다. 모든 학문의 시작은 '용어의 정의'에서 시작되며 이 용어이 정의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결정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용어를 주로 쓰는 주체(한국인 명상학자)
2) 쓰이는 범위 (사회또는 학문)및 용도
3) 시대성 , 시기 및 장소
4) 역사적 배경
5) 학문적 합의(학회 등)
영어로 spring은 문학자들은 '봄'을 생각하지만, 자동차 정비공은 자동차 부품을 떠 올리곤 합니다. 또한 영어의 hip는 우리말로 엉덩이, 궁둥이, 방덩이,볼기짝 등 여러가지로 쓰지만 해부학에서는 '고관절'이라고 쓰다가 다시 한국어 인 "엉덩이"로 돌아가 있거나 혼용해서 쓰이고 있는 중입니다. 한 외국어를 여러가지로 부를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는 것이 아주 자연스로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mindfullness'에 대한 한국적 용어가 무엇이 맞는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무엇이라고 정의(definition)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논의 되고 있는 'mindfulness'의 한국어 표시는 인도에서 고대에 쓰일 용어도 아니며, 또한 미국에서
쓰일 용어도 아니며, 우리 한국에서 한국 명상학 관련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쓸 용어 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로 'mindfulness'에 대한 Wikipedia 사전의 정의를 살펴보면, 현대 미국에서의 임상심리학 또는 정신의학에서 고대 불교의 Pali sati 또는 Sanskrit smriti 의 "mindfulness" 테크닉에서 개발된 치료적 "mindfulness" application으로
"Psychological "mindfulness" is broadly conceptualized, say Bishop et al. (2004:232), as "a kind of nonelaborative, nonjudgmental, present-centered awareness in which each thought, feeling, or sensation that arises in the attentional field is acknowledged and accepted as it is". They propose a two-component operational definition of "mindfulness".
The first component involves the self-regulation of attention so that it is maintained on immediate experience, thereby allowing for increased recognition of mental events in the present moment. The second component involves adopting a particular orientation toward one’s experiences in the present moment, an orientation that is characterized by curiosity, openness, and acceptance. (2004:232)
The former mindfulness component of self-regulated attention involves conscious awareness of one's current thoughts, feelings, and surroundings, which can result in metacognitive skills for controlling concentration. The latter mindfulness component of orientation to experience involves accepting one's mindstream, maintaining open and curious attitudes, and thinking in alternative categories (developing upon Ellen Langer's decision making research)."
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비숍(2004)의 'mindfulness'의 정의는 주의집중시 일어나는 생각, 느낌 또는 감각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비인위적, 비판단적, 현재 중심의 인식(awareness)의 일종이며, 그 작동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으로 '의식적 알아차림이 포함된 자기규제적 주의집중'과 '현재의 생각의 방향'에 대한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정의 또한 미국에서의 정의에 불과하므로 한국적 용어는 역시 한국의 명상과 상황에 맞는 좋은 정의로
용어가 정의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과거 지향적 종교적 용어의 의미보다는 미래 지향적 일반 대중의 정신건강을 생각하는 임상심리, 정신의학적 용어로 다시 태어 났으면 하는 것이 바램입니다. 이참에 중국의 황제내경과 고대 서양의 모든 고대 의학서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監)처럼 인도나 미국의 명상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명상의 역사와 우수성을 첯아 연구해 보는 것도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한번 두 교수님의 열정에 감사드리며 Critical한 Issue에 대한 논의가 한국 명상에 큰 밑거름이 될것으로 확신하며 두 교수님이 계셔 더욱 행복 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카페에 들어와 두 교수님의 논쟁을 읽어보고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도 그렇지만 제게는 그 이면의 진지한 태도와 열정이 더 와 닿는것 같습니다. 님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있게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를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논의란 것이 제눈의 안경처럼, 자기 관점을 벗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 안경이 더 좋다는 식의 주장이 계속되어서 부작용도 있지만, 오히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해하는 기회도 되는 듯합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두분 교수님의 논쟁 덕분에 또 좋은 고견 듣게 되네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푸른 하늘과 땅님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