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_< 8. 뻐꾸기 둥지 - (1)>_43회
(1)
이듬해 봄, 아내가 자취없이 사라진 지 보름 만에 나는 직접 그녀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선 주화네 가게부터 들러 알아보기로 했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바람벽에 씌어져 있던 <산딸기>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떠올랐다기보다 아내의 글씨꼴까지 고스란히 눈앞에 그려졌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바람벽에 걸린 달력에 빨간 사인펜으로 커다랗게 씌어진 주화의 전화번호가 내 눈길을 끌었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버렸었다.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에게 전할 암호와도 같은 일종의 메시지였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막상 전화부스에 가서는 세 차례나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네 번째 가서야 나는 <내 꼴이 이 지경인데 쥐꼬리만한 자존심을 내세워 어쩌겠다는 거야!> 중얼거리며 버튼을 두드렸다.
“전화 바꿔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인 듯 아가씨의 목소리가 있고 나서 잠시 후,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앙.”하고 굵고 갈라진 목소리가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뒤섞여 들려왔다.
“저어기…….”
나는 말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주화는 직감인지, 아니면 그때껏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음인지 대뜸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잖아도 요때나 조때나 연락 있을 거라고 기다리던 참이었죠.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예, 요?”
“우리 집 근첩니다. 좀 만나뵐 일이 있어서…….”
“호홋, 그러세요? 이리로 오세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하고는 좌석버스 번호와 내려야 할 승강장 위치, 표적이 될 수 있는 근처의 대형 건물, 그리고 가게 간판 이름을 알려주었다.
“산딸기실내포장마차? 그렇다면……?”
“왜요? 워낙 귀하신 몸이라서 이런 곳에 오면 다릿병이라도 나나 보죠? 호홋!”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았어요. 곧 가지요.”
“나갈 일이 있긴 있지만, 암튼 기다릴게요.”
수화기를 걸면서 나는 불쾌감을 느끼기 전에 아내가 가엾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내는 실내포장마차가 아니라 카페라고 말했었다. 내내 같은 술집인데도 아내는 그 단어의 의미 차이를 두고 무척 고심했다는 흔적이 만져졌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막막하고 처량했다. 솔직히 두렵기도 했다. 주화가 말했었지 않는가.
<언젠가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을 날이 있을 거예요!>
바야흐로 그 때가 온 것이다.
“쾌재의 탄성이라도 부르짖고 있을 테지…… 망할년!”
<산딸기포장마차>는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코에 익은 곰팡이 냄새가 맡아졌다. 아내에게서 맡아졌던 그 냄새였다. <애초 이런 곳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가지 못하게 말렸을 텐데……!>
들고나는 술손님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한쪽 구석에 서서 손수건을 꺼내 눈자위로 가져갔다.
계단은 가파랐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출입문을 여는 데까지 다소간 뜸을 들였다. 예상했던 것과는 또다른 분위기였다. 흔히 볼 수 있는 포장마차와는 거리가 먼, 대형 술집이라고 말해야 옳을 그런 곳이었다. 못돼도 50평는 되지 싶은 홀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반원형 목로가 대칭으로 예닐곱 군데 놓여져 있고, 등받이 낮은 회전의자가 목로를 사이에 두고 도열돼 있었다. 가라오케풍의 경음악이 홀 안에 있는 집기와 사람들을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울린다기보다 두들겨패듯이 쿵작거렸고, 알코올 내음과 생선 탄내와 양념냄새에 지하실에서나 맡을 수 있는 독특한 곰팡이 냄새까지 곁들인데다, 어둑한 조명이 합세하여 정신을 조각내 흐트려 놓았다.
“어서오세요.”
짙은 화장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다섯 살은 안팎으로 가감될 수 있을 이십대 초반 아가씨가 손님 앞에 뚜껑을 딴 맥주병을 늘어놓으며 거의 기계적인 말투로 나를 맞았다.
“주인아줌마 좀 만나보러 왔는데…….”
“왜요?”
“그럴 일이 있어섭니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요.”
그때껏 그 아가씨는 내게 일별도 주지 않은 채 말대꾸하고 있었다.
“좀 전에 전화했을 땐 기다린다고 했었는데…….”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게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잖아도 말씀 있었어요. 따라오세요.”
쟁반에 빈그릇을 챙겨 들고 그녀는 앞장섰다. 들었던 것을 주방에 놓고 카운터 뒤쪽 바람벽으로 다가갔다. <이 아가씨가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하던 내 의문은 벽에 붙은 장식고리를 보고서야 비로소 풀렸다. 벽지를 바른, 바람벽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출입문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손님 오셨는데요.”
“그래?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해.”
잠시 후, 덩치가 하마만하고 목살이 이중으로 겹쳐진, 점퍼 차림의 여자가 고개를 내밀있다. 주화였다.
“오랫만이네요.”하고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주눅들어 한동안 머뭇거렸다. 살이 피둥피둥 찌고 덩치가 커서인지 사십대 초반쯤의 여자로 보여 내게는 누님 뻘같이 여겨졌다.
“아팠다더니, 가끔씩 벙어리 증세까지 나타나나 보죠? 홋홋!”
옛날 감정을 앙갚음하려는 저의가 만져졌다. 무슨 말인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럴수록 한사코 입이 열려지질 않았다.
주화는 그런 나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 빙긋이 미소 머금은 채 느긋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나로서는 전세를 뒤집을 만한 어떤 조건도 가지고 있질 못했다. 이미 내 발로 주화 앞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백기를 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제는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어 보이는 순서만 남은 것 같았다.
“도도하시고 똑똑하시고 잘나 보이던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요.”
“…….”
“나 어렸을 때, 아니 어렸을 때도 아니죠. 중학교 다닐 때였으니까 말예요. 돌아가신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지요. 아무리 못난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말거라.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네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라고요. 그 말씀이 새삼스레 떠오르는데, 왜죠?”
<망할 년,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군! 하지만 참아야 한다. 아내의 행방만 알면 그만이니까!>
그녀는 이어 말했다.
“이쯤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었을 테고, 그 무거운 입을 열 때가 됐잖아요?”
<참자! 참자!>
잠시 내 말을 기다리던 그녀는 갑갑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계속해 말했다.
“이 장사하면서 는 건 돈하고 욕밖에 없지요. 양념인 욕지거리를 빼고 쌀밥만 물말아 먹고 있으니까 싱겁고 메스껍고, 참는 데 자꾸만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내가 아쉬워서 찾아왔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모욕을 당하며 서 있어야 한단 말인가? 개같은 년! 가자!> 나는 돌아섰다. 서너 걸음 떼자, 그녀로부터 날아온 중얼거림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씨팔놈…… 개같은 자식!”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목이 타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가외로 나온 팝콘을 안주로 오백 씨씨 한잔을 들이켰다. 더 마시고 싶지만 가지고 있는 돈은 백동전 몇 개 빼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쉬움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종업원이 천 씨씨 하나와 닭다리튀김을 가져다 놓았다.
“난 시키지 않았는데?”
“저쪽에 계신 분이 보낸 겁니다.”
종업원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았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이가 구석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전혀 일면식도 없는 얼굴이었다.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사람을 잘못 본 거 아니요?”
“천만에요.”
“그렇다면, 보내준 저건 뭐요?”
젊은이는 입속에서 말을 고르는 듯 한동안 머뭇거리고 나서 대꾸했다.
“심부름입니다.”
“심부름?”
“난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요.”
“누구 심부름?”
“사장님요.”
“사장님이라니?”
“산딸기.”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이 잡혔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렇다면 계속 내 뒤를 밟았다는 말이 되는데, 우라질! 당장 돌아가라구! 가서 그래요, 낯짝도 보기 싫다고, 그렇게 말이오!”
모든 내막을 훤히 알고 있고 하는 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젊은이는 배실배실 웃기만 했다.
일단 밖으로 나서고 따질 요량으로 젊은이로부터 등을 돌렸다. 카운터에서 내 몫의 돈을 치르려 하자 이미 다 계산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내가 시킨 건 내가 계산해야지!”
계산대 위에 돈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섰다. 일단 행인들 틈에 끼어들어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내 몸을 흘려보냈다. <이제 갈데까지 갔구나!> 절박감이 자꾸만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어느 사이 내 걸음걸이는 거의 서 있는 거와 진배없이 느려져 있었다. 연신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내 자신을 자각했다. 그렇지 않다고 의식적으로 부인할 뿐, 그 젊은이가 그때껏 뒤밟아오길 기대하고 있었던 듯 싶었다.
젊은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만약 젊은이가 내 뒤를 계속 따라왔다면 나는 못이기는 체 그를 쫓아갔을 게 십중팔구였다.
이제 내 수중에 남은 돈은 백동전 몇 개뿐, 갈데없는 거렁뱅이 신세가 돼 있었다. 아내를 원망하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었다. 앞이 노랬다.
하지만 내 발로 다시 주화를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마음 한편에서 쥐꼬리만큼 남은 자존심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때로는 쓸개를 빼 던지고 굽혀주는 게 용기일 수도 있어> 하는 종용에 설득당하여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지만 막상 <산딸기>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 가서는 발짝이 더 이상 떨어지질 않아 돌아서곤 했다.
그때처럼 나의 무능함을 처참하게 실감한 적은 아마도 내 평생 한 번도 없으리라!
어쩌면 아내가 집에 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지나고 나서 깨달은 바지만, 절대 돌아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내 자신을 기만하여 당분간이라도 편한 마음을 갖고자 그랬던 게 분명했다.
담배 한 갑을 사고 좌석버스에 올랐다. 이제 호주머니에는 십원짜리 동전 서너 개만이 남아있었다. 갈데까지 가보자는 배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