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본질 과 복음
말씀:시51:5
시편 51편 5절의 본질적인 의미
시편 51편은 대표적인 회개의 시이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1년 남짓 숨기고 있다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면서 지은 시이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난 다음에 엄청나게 큰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죄의 본질을 깨달은 것이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시편 51편 5절 말씀이다.
(보라!)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바른성경]
보소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악하였고, 내 어머니가 잉태할 때부터 죄가 있었습니다.
(시51:5)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앞에 히브리어 “헨"이 있다.
헨은 영어로 “behold"이다
이 의미는 보라, 주목하라는 뜻이다. 그냥 대충 보라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 말씀이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시편 51편 5절 말씀을 깨달아야 복음을 깨닫게 된다.
복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5절 말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를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어머니는 죄를 생산하는 죄의 공장이다.
죄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다윗이라는 죄 덩어리를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우리는 ‘어머니’라는 죄의 공장에서 ‘나’라는 죄를 생산했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죄를 짓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는 것이다.
나는 마귀의 충실한 부하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연탄공장의 예를 들면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생산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연탄공장과 같고 나는 연탄과 같다.
연탄 공장인 어머니에게서 ‘나’라는 연탄이 나온다.
아무리 연탄을 씻는다고 해도 절대로 씻어지지 않고 오히려 새까만 연탄물만 나온다. 이것이 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복음의 필요성을 알게 된다.
단순히 내가 이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가 아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내가 본질적으로 죄덩어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고 십자가 복음을 알게 된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율법을 지키라고 해도 안 되는 이유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짓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죄인은 죄를 짓는 것이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욕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욕이 잘 나온다.
내가 욕을 하기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욕을 하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한다면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해도 잘 안된다. 이것은 나는 날 때부터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웃을 비방하고 판단하고 미워하도록 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만약에 내가 의롭게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의롭게 태어난 나에게 이웃을 미워하라고 하면 전혀 안 된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미워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안 되는 나의 죄의 본질을 깊이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너의 죄악의 본질이 얼마나 깊고 큰지를 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사도바울은 율법을 통해서 죄의 본질을 알았기에 복음을 깨달았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 육신은 자꾸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을 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롬7:14)
여기서 “육신에 속하여”에서 ‘속하여’는 헬라어로 ‘에이미’이다.
에이미의 뜻은 ‘존재하다’ ‘나는 ~ 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5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8:58)
여기서 “내가 있느니라”는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이다.
나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구약으로 표현하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육신에 속했다’는 것은 바울은 육신의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육신은 무엇인가?
육신의 죄 덩어리이다.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육신에서 나오는 것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 되는 생각만 나오고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시편51편 5절과 로마서 7장 14절은 같은 의미이다.
사도바울은 죄의 본질을 깨닫고 내린 결론이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깊은 탄식을 했던 것이다.
이런 깊은 탄식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은 것이 로마서 6장 십자가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쓴 것이 로마서 6장이다.
십자가 복음으로 새 사람 됨이 믿어지면 나와 죄가 분리가 된다.
십자가에서 옛 사람이 완전히 죽고 새 사람이 되었음이 믿어지면 나와 죄가 분리가 되어진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7)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0)
사도 바울이 죄를 짓는 것이 내가 아니라 사도 바울 속에 거하는 죄라고 했다.
십자가 복음을 깨달아지면 즉 십자가에서 새 사람이 됨이 믿어지면 또한 십자가에서 영원히 완전해졌다는 것이 믿어지면 이 말씀을 의미를 알게 된다.
“거하는”의 뜻은 산다는 것이다
사도바울 속에 죄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죄는 인격체이다. 이 죄가 바로 사탄이요 마귀요 악한 영이다.
이것이 보인다.
분리작업을 통해서 죄를 제거하면 된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검은 그릇이 흰 그릇으로 바뀌었다.
검은 그릇에 죄가 담겨져 있으면 아무리 죄를 쫓아내도 그릇 자체가 검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그러나 검은 그릇이 십자가에서 흰 그릇으로 바뀌었다.
흰 그릇에 검은 죄들이 들어있으면 흰 그릇과 죄는 확연하게 분리가 된다.
이처럼 십자가 복음이 믿어지면 내가 흰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죄가 확실히 보이고 분리가 된다.
내 마음이 흰 그릇이라고 하면 흰 그릇 안에 죄들이 보이고 분리가 되니까 쫓아내기가 쉽다. 그러면 내 흰 그릇 안에 성령의 열매들이 담겨져서 나중에는 마음이 성령충만 해져서 죄들이 들어올 수 도 없고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사람이 된다.
십자가 복음으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속에서 나가지 않는 죄들이 있다.
마치 흰 그릇 안에 죄(오물)가 담겨져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6)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3:5-6)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 마귀의 세력은 박살났기 때문에 종이호랑이와 같다.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와 능력은 상실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으로 충만하다.
성령을 힘입어서 말씀으로 물리치면 된다.
성령으로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면 내 마음의 흰 그릇에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차게 된다.
성령충만 그리스도 충만한 삶
새 사람 속에 죄악을 물리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성령충만의 삶이요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이다.
그리스도로 호흡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