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샌가 극시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여미아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극시아야, 난 너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한단다. 네가 조영 공자님께 행했던 일들이 네 본심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난 너를 믿어.”
여미아의 속삭임에 갑자기 극시아가 여미아를 와락 껴안더니 흐느껴 울었다.
“언니! 흑흑흑, 언니! 나 지독히도 외로워, 한없이 슬퍼, 언니 나 좀 어떻게 해줘, 흑흑흑!”
여미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함께 흐느껴 울기만 한다.
“언니, 언닌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난 너무 불행해, 흑흑흑!”
한참동안 울고난 후, 여미아가 입을 열었다.
“극시아야, 우리의 슬픔을 위로하고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수 있는 우리 어진님은, 지고무상하고 지극 지선至善 지순至純한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일편단심 너에게, 바로 너 극시아에게 쏟고 계신단다.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니?”
“언니, 흑흑흑, 엉엉엉.”
마침내 극시아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한 동안 극시아의 울음소리가 방안에 가득히 퍼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침묵에 잠겨있다. 아니, 어쩌면 여미아의 말을 되새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여미아의 말은 아주 부드러웠지만, 거기에는 전혀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정연한 합리성에, 항거하기 힘든 무서운 위엄이 실려 있었다. 동시에 사람의 심금을 뒤흔들어 놓는 어떤 뭉클한 기운이 짙게 배어 있었다.
조영과 이루하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여미아의 이런 태도에 깊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한참 후 극시아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조영이 입을 열었다.
“마마! 고정하소서. 제가 마마와 이루하 공주님, 또 여미아 아가씨를 위해 새로 다과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영은 하인을 시켜 방안을 정리하고 다과상을 차리게 했다.
여미아가 이루하와 조영에게 사과의 말을 했다.
“아씨, 그리고 조영 공자님, 죄송합니다. 우리 자매가 두 분에게 추태를 보여드렸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소서.”
여미아는 이 말을 한 후 돌연 자리에 엎드려 먼저 이루하를 향해 큰 절을 하더니, 조영에게도 절을 올리는 것이다. 조영이 놀라서 만류했다.
“아, 아가씨, 무슨 말씀을. 어서 일어나세요. 이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영은 무심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려 손을 내밀다 깜짝 놀라 손을 얼른 거두고 간청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제가 아가씨에게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조영은 그녀가 비록 비천한 하녀의 신분이었지만 그녀를 깍듯이 존중했다. 조영은 먼저 극시아를 쳐다보며 염려스런 어투로 물었다.
“마마, 궁에 빨리 들어가 봐야 되는 게 아닌지요?”
“아닙니다. 오늘 하루는 휴가입니다. 전 여기가 너무나 좋······.”
극시아는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영은 어색한 국면을 만회하기 위해 화제를 돌려 여미아에게 물었다.
“아가씨, 방금 전에 어진님의 크나큰 자애로우심을 말씀하셔서 문득 상기되는 게 있었습니다.”
이루하와 여미아, 극시아가 일제히 조영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가씨는 혹시 색불루 임금님의 시, ‘별유진보’를 알고 계신가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밖은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소리 없이 불어오는 가을 기운과 함께 어스름이 천지를 뒤덮기 시작했다.
조영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물었다.
“아가씨는 그가 말한 ‘별유진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시각 황궁의 자신전에서는 무 태후가 한 내시를 은밀히 불러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휴가를 얻어 궁을 나간 어처 극시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가?”
“네, 마마.”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니, 아마도 일이 잘되는 모양이구나.”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시가 애매한 대답을 했다.
“지금까지 극시아가 고조영과 접촉한 횟수가 얼마나 되느냐?”
“아마 스무 번쯤 될 것입니다.”
“아니, 스무 번쯤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정확한 횟수를 대란 말이네!”
무 태후가 역정을 내자 내시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 네, 마마, 송구하옵니다. 정확히 스물 한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발전했나?”
“둘이 서로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좋아하는 눈치라니? 그런 모호한 말이 어디 있나?”
“아, 네. 두 사람은 서로를 이성간 애정으로 많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번 일이 잘되면 자네 공이 크니 큰 상을 내리도록 하겠네.”
“마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물러가 있다가, 극시아가 환궁하는 즉시 이리로 데려오고 혹시 밤늦게 오더라도 내 침전으로 데려오게.”
“명심하겠사옵니다.”
내시가 나가자 무 태후가 혼자 중얼거렸다.
“밤하늘에 가득 찬 새하얀 별들이 땅으로 내리듯 하고, 소슬한 추풍이 가슴 속을 후비는 이런 날에는 어딘가로 멀리 멀리 떠나고 싶단 말이야.”
조영의 질문에 여미아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예전에 고양원 대덕님께서 그에 관해 일러 주셨습니다.”
“오, 그래요? 진즉 여쭈어볼 텐데. 그래,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별유진보가 삼칠중에 있다는 구절에서 삼칠은 어떤 복합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우선 그것은 삼삼촌과 칠칠동, 그리고 훗날의 삼칠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삼삼촌 칠칠동은, 아주 어렸을 때 황궁에서 버림받은 다물 임금(서기전 4세기)이, 정처 없이 헤매던 젊은 시절 우연히 들러서 알게 된, 지금의 평안북도에 있던 서로 인접한 이상한 마을들이다(“다정선인단정검多情善人斷情劍” 참조). 그 때 다물 임금은 삼삼촌의 촌장으로부터 그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그 후 대부여 해모수 임금(서기전 261-195, 재위 239-195) 시대에 그 두 마을은 삼칠성이라는 제법 큰 성으로 변모해 있었다.
원래 단군조선의 22세 색불루 임금(재위 서기전 1285-1238)은 한 쌍의 청동단검을 만들어, 거기에다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숫자를 새기고, 본인이 전국에서 수거한 막대한 양의 보물들과 서역의 상인들에게서 얻은 보물들을 삼삼촌과 칠칠동 사이에 숨겨놓았었다.
삼삼촌과 칠칠동의 상거相距는 오륙 리쯤 되었는데, 그 중간의 어느 지점이 보화의 은닉처였던 것이다.
아마 삼삼촌, 칠칠동이라는 마을 이름 역시, 원래 이름이 아니라, 색불루 임금이 보물을 감춘 후 새로 붙인 이름이었을 것이다.
결국,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천명신검, 천명영검의 숫자가, 색불루 임금이 어마어마한 보물을 숨겨놓고 그 위치를 표시해둔 암호문이라는 당대의 속설은, 거짓이 아닌 진실로 밝혀졌던 것이다.
물론, 색불루 임금의 보물이 발견되었을 때는, 삼삼촌 칠칠동이라는 두 마을이, 인구의 유입으로 인해 ‘삼칠성’이라는 제법 큰 성읍으로 변모한 이후였다.
그 희대의 보물을 발견한 이는 당시의 삼칠성 성주 묘고미향苗孤美香이다. 묘고미향은 여루 임금 때의 명장名將 묘장춘苗長春의 손녀이자, 해모수 임금의 어머니다.
묘고미향이 그 보물을 발굴했을 때 거기에서 색불루 임금의 친필 시로 추정되는 시 한 수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 시에서 색불루 임금은,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며, 자신이 감추어놓은 그 보석들이 참 보배가 아니라, 참 보배는 따로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색불루 임금의 시는, 어처 극시아가 일전에 조영에게 준 바로 그 시였다.
血 得 天 下 揚 世 名 혈 득 천 하 양 세 명
喜 見 萬 金 似 露 生 희 견 만 금 사 로 생
千 年 光 陰 擧 一 杯 천 년 광 음 거 일 배
別 有 眞 寶 三 七 中 별 유 진 보 삼 칠 중
천하를 피로 얻어 이름을 드날리고
만금 보아 기뻐해도 이슬 같은 인생이네
천년의 세월도 한잔 술에 지나가니
삼칠 중에 따로이 참 보배가 있느니라
여미아가 설명하고 있을 때, 조영이 그녀의 말을 끊고 질문했다.
“색불루 임금은 어떻게 해서 참 보배가 따로 있음을 깨달았을까요?”
이루하와 극시아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들도 흥미진진하게 조영과 여미아의 대화를 듣는 품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고양원 대덕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어떤 영감 같은 것에 의해 깨달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미아의 설명은 이어졌다.
“색불루 임금이 말씀하신 ‘별유진보’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또 다른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공자님은 방금 전에 제가 말씀 드린, 천명신검이나 천명영검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 그건 우리 고려(고구려)황실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전家傳 보물입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조영은, 여미아가 방금 전 청동단검의 비밀에 대해 거침없이 말할 때, 깜짝 놀라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고 있다가 이제야 질문을 던진 것이다.
“고양원 대덕님께 들었습니다. 색불루 임금의 시문에서 별유진보가 삼칠중에 있다고 했죠? 거기서 말한 ‘삼칠’은 바로 색불루 임금께서 제작하신 한 쌍의 청동단검, 곧 천명신검과 천명영검의 검 집에 새겨진 암호, 구체적으로 말해 ‘삼삼오육칠칠’이라는 숫자라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참 보배를 숨기고 있다는 그 ‘삼삼오륙칠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킨다고 보시나요? 그 숫자가 담고 있는 ‘별유진보’는 무엇일까요?”
여미아는 잠시 묵상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고양원 대덕님도 조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잘못 풀면 큰일 난다고 하시면서요.”
여미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술에 집중하고 있음을 깨닫고 차분하게 덧붙였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문구들은 어떤 다의적多義的 함의含意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미아가 설명했다.
우선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숫자의 다중적多重的 의미를 이해하려면 숫자의 상징에 대해, 그리고 경교의 교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교景敎(당나라에 전해진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에서 “삼”이란 숫자는 신神의 완전수이고, “칠”의 수는 신이 이루시는 피조물 특히 인간의 완전수라고 한다. 신은, 천존天尊(성부) 세존世尊(성자) 현풍玄風(성령) 삼위일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삼”은 신의 완전수라는 것이다.
“배달겨레의 신교에서도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삼신일체三神一體 상제上帝 하나님 즉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자님은 고려 왕족이시니 저보다 더 잘 아실 거예요.”
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천일 태일 지일이 경교의 천존, 세존, 현풍과 동일한 존재를 가리킨다는 뜻인가요?”
“고양원 대덕님은 그렇다고 확언하셨습니다. 천일은 하늘의 천존 하나님, ‘지일’은 땅의 하나님 즉, 태초부터 땅을 품고 계시다가(창세기 1:2) 또 땅에 오신(오순절성령강림) 현풍 하나님, ‘태일’은 인간 하나님 즉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아들 하나님, 메시아 예수님과 상응한다는 것이, 대덕님의 가르침입니다.”
원래 ‘태일’의 ‘태太’ 자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그 안에 생식기까지 표현해 낸 문자다. 여미아는 부끄러워 차마 이런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조영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치고요, ‘칠’은 왜 인간의 완전수이죠?”
“경교의 경전에 의하면, 하나님이 천지와 사람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스스로 안식하시며 사람에게 명하시길, 이레째 되는 날에는 일을 하지 말고 쉬라 하셨답니다. 그래서 칠일 째 되는 날은 피조물과 인간의 완성 일이므로, ‘칠’은 인간의 완전수라고 할 수 있죠.”
좌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현풍玄風님(성령님)도, 경교의 경전에서 ‘일곱 영’으로 표현된 것은, 그 분이 인간 속에 오신 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하옵니다.”
“여미아 아가씨는 참으로 박식하군요. 처음 듣는 신비로운 얘기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그토록 잘 알고 계십니까?”
“그건 과찬의 말씀입니다. 대덕님의 가르침을 받잡고 경전을 읽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들입니다.”
그 때 조영이 무릎을 쳤다.
“아, 그러니까, ‘삼삼오륙칠칠’이라는 암호문에서 앞의 삼삼은 신의 완전수를 겹친 것이고 뒤의 칠칠은 인간의 완전수를 중복시킨 것이군요.”
“맞아요. 역시 공자님은 총명이 과인하십니다.”
여미아는 조영을 칭찬한 다음 말을 이었다.
“앞의 ‘삼삼’은 ‘삼’을 중복해 ‘완전한 하나님’을 표현하고 뒤의 ‘칠칠’은 ‘칠’을 겹으로 써서 ‘완전한 인간’을 담아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이상하군요. 경교는 서역에서 메시아가 탄생한 이후, 그러니까, 우리 고려의 유리명제(재위 서기전 19 - 서기 18) 이후에 생긴 것이고, 색불루임금은 메시아의 탄생보다 일천 이백여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인데, 그가 어떻게 경교에서 말하는, 신의 완전수와 인간의 완전수를 터득하고 있었을까요?”
“저도 대덕님께 그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
모두의 시선이 여미아를 집중하고 있다.
“색불루 임금 자신이 신교의 전통 속에서 그걸 깨닫고 계셨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욱 가능성이 높은 쪽은, 어떤 하늘의 영감 같은 것이 임해, 자신도 명확한 의미를 모르는 가운데, 그런 암호문을 남겼을 수도 있다는 군요.”
“아, 그랬군요. 하지만 또 하나 의문이 있는데요, 하나님이 완전하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인간의 완전함이라는 어구는 생경한데요?”
조영이 연달아 물었다.
“네, 인간은 완전하지 않죠. 누구나 다. 하지만 세상 중에서 완전한 인간이 한분 계셨다고 합니다.”
“오, 그 분이 누구죠?”
바깥에서는 가을의 한기가 층층이 쌓이고 실내에서는 화로의 숯불이 켜켜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방바닥도 따스한 온돌인데다, 화로까지 훈훈하니, 조영과 여인들의 볼은 숯불처럼, 복사꽃처럼 곱게 상기되어 있었다.
낙양성 낙양궁 동북쪽, 도정 마을에 위치한 조영의 아늑한 집에서, 화기애애하고 아름다운, 글자 그대로 노변정담爐邊情談이 한없이 풀어지고 있을 때, 무 태후의 집무전인 남궁의 자신전에서는 무 태후가 내시를 불러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어처 극시아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겠지?”
“네, 그렇사옵니다.”
“증인을 만들어야 하겠네.”
“······?”
“이해고 장군을 내 앞으로 부르게.”
자신전의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이해고가 무 태후 전으로 불려왔다.
“이 장군은 지금 즉시 조영의 집으로 가게.”
이해고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무 태후를 쳐다보았다.
“옷을 평복으로 갈아입고 그냥 방문하는 척 하라는 말이네.”
이해고를 쏘아보는 예순 세 살의 무 태후는 아직 젊어보였다. 화장술이 뛰어났던 무 태후는 그 나이에도 사십대 중반의 여성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이 장군은 조영의 집을 알고 있는가?”
“네, 마마. 지금 즉시 가겠습니다.”
“간단한 선물 하나 가지고 가는 것 잊지 말고.”
이해고가 인사하고 태후 전에서 물러났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무 태후는 다시 내시에게 말했다.
“무후군武候軍 장수 무유서武攸緖(655-723)를 부르게.”
무후군은 낙양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대다. 무유서는 무 태후의 조카다. 무 태후의 신임이 두터웠던 무유서는 나중에 우천우위右天牛衛 장군이라는 관직을 받는다.
무유서가 나타나자 무 태후가 명했다.
“지금 즉시 무후군 이십여 기를 이끌고 조영의 집으로 가게.”
무유서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거리고 있을 때 무 태후가 말을 이었다.
“고조영 장군의 집을 알고 있는가?”
“잘 모르옵니다.”
“그건 내시가 잘 가르쳐 줄 터이네. 군사 이십여 기를 이끌고 간 다음, 거기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즉시 여기 자신전으로 오게.”
무 태후는 다시 무후군 장수 무유서에게 명했다.
“그들에게 가서, 밤이 늦어 걱정되어 모시러 왔노라고 말하게. 내가 보내서 왔다고 하게나. 그들은 모두 여기로 오게 되어 있네.”
무유서가 대답하고 나갔다. 자신전 밖에서는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어둠에 내걸린 등불만이 스산한 밤기운을 막으려 애쓰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여미아는 조영과 이루하, 극시아의 얼굴을 한 차례 훑어본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 분이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은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아니, 그런 분도 세상에 계셨어요?”
극시아가 참으로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렇단다. 그 분은 우리 고려의 유리명태왕 치세 때, 중국으로 말하면, 서한西漢 효애황제孝哀皇帝(재위 서기전 7년–서기전 1년) 때에, 머나먼 서역의 유태인 땅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셨단다.”
“그런 성인이 계셨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에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적이 없느냐?”
“글쎄요.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여미아는 다시 고조영과 이루하를 둘러보며 설명을 이었다.
“그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즉 우리 신교神敎에서 말하는 태일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어떻게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일 수 있습니까?”
조영이 물었다.
“신이 신성神性을 지닌 채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죠.”
조영은 다시 무릎을 쳤다.
“오호, 그래서 ‘삼삼오륙칠칠’의 앞 두자가 완전한 하나님을 의미하는 ‘삼삼’이었군요.”
“맞습니다. 앞 뒤 네 숫자, ‘삼삼칠칠’은 바로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메시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숫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대덕님께서 이르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운데 ‘오륙’은 무엇입니까?”
“대덕님은 이렇게 푸셨습니다.”
여미아의 설명에 의하면, ‘오’와 ‘육’의 합은 ‘십일’이다. ‘십일’을 한자어로 쓰면(옛날에는 내려썼음) “⼠”이다.
이것은 땅 “一” 위에 있는 십자가 “⼗”를 의미한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땅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래서 오륙의 합 십일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문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삼오륙칠칠’은 완전한 하나님(삼삼)이시고 완전한 인간(칠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오륙)을 뜻하는 숫자라는 거죠?”
조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서른세 살이었다는 겁니다. 앞의 ‘삼삼’은 그 분의 연령까지 다중적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 남녀는 여미아의 오묘한 숫자풀이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알려드릴까요?”
“······?”
“‘삼삼오륙칠칠’의 여섯 숫자 가운데서 상호 대칭되는 수끼리 곱해보세요.”
세 사람이 멀뚱멀뚱 여미아의 낯을 쳐다보고 있자 여미아가 부끄러운 듯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조영은, 그녀의 미소가 어찌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지, 하늘의 선녀가 이 땅에 내려온 것 같고, 신비로운 성녀가 인간 세상에 나타난 듯해서 취한 듯 홀린 듯 그녀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조영은 새삼 그녀의 청아함과 영묘함, 아름다움에 혼백이 도취되는 것 같아 가슴이 떨려왔다. 조영은 시선을 돌리며 남몰래 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조영이 딴 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극시아가 입을 열었다.
“맨 앞의 ‘삼’과 맨 뒤의 ‘칠,’ 그 다음의 ‘삼’과 ‘칠,’ 중간의 ‘오륙’을 서로 곱해보라는 건가요?”
“너도 머리가 참 빼어나구나. 넌 어렸을 때 나보다 더 영리했지.”
여미아가 극시아를 칭찬했다.
(다음 회로 계속)
******************
샬롬.
2024. 3. 1. 삼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