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 : 16 -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기도하러 가다가 루디아를 만나서 복음을 증거 했더니 루디아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도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는 지난 주 말씀을 통해 봤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에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번에는 길에서 귀신 들린 여종 한 명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본 귀신들린 사람들의 모습은 고통을 호소하고 불행한 생활을 하고 굉장히 안 좋은 모습이었는데 오늘 이 본문 말씀에 나타나고 있는 귀신 들린 사람의 모습은 자기 안에 있는 귀신을 통해서 점을 봐서 오히려 그의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고 있었던 특별한 상황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점을 보는 사람들이 참 많고 그들이 벌어드리는 수입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예전에 무당들이나 귀신의 점을 보는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서 TV에서 고발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점을 보고 나서 부적을 받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받은 부적이 자신을 지켜 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고서는 적게는 몇 만원부터 시작을 해서 몇 십만 원씩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집에서 주는 부적을 조사해 보니까 대부분의 부적들이 그 사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직접 만들어진 부적이 아니라 부적을 대량으로 만드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만든 부적을 갖다가 파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런 쓸모 없는 부적을 사다가는 아주 신주 단지를 모시듯 그렇게 하고 있다는 보도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귀신 들린 여자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을 했던 주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주인들에게”라는 표현을 통해 보면 아마도 몇 사람이 귀신들린 사람을 관리를 하면서 이득을 보는 공동 사장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 귀신이 나갈 수 있도록 치료를 해 주고 귀신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귀신에 들려 살아가도록 방치해 놓고 오히려 귀신이 나가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귀신이 나가지 못하도록 힘까지 썼겠어?’ ‘그냥 방치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다음 주에 보게 될 본문에 보면 바울 때문에 결국 귀신이 쫓겨나게 되니까 공동 사장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끊어진 줄 알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누명을 씌워서 매질을 해서 결국 감옥에 가두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행태까지 보인 것으로 보면 방치를 넘어서 귀신이 나가지 못하도록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겠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024년 5월 정도에 읽었던 기사입니다. 암환자가족에게 접근해 기도를 통해 암을 낫게 해주겠다면 수천만 원을 받아낸 여성 목사가 사기,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보면 해당 목사는 55세 여성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실제 목사인지도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일부 매체는 자칭목사라는 표현으로 보도했을 정도로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을 보면 지난 2022년 4월 24일 말기암을 앓고 있는 남편을 두고 있는 여성에게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에게 목숨 연장기도를 받은 사람들이 암에서 싹 나았다.'라는 등의 말로 말기 암환자남편의 아내를 꼬드겨서 기도비 명목으로 무려 3,100만 원을 받아냈다는 것입니다. 암환자를 둔 가족의 절박함을 이용해서 기도비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건 사실상 사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기가 아니어도 실제 그 사람에게 그런 경험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 돈이나 받으면서 일 하시는 분이시지 않기 때문에 설사 검증된 사람이 그런 요구를 할지라도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쉽지 않는 것이 보이스피싱에 대해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 자신에게 전화가 오면 당황해서 넘어가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당장 자신의 일이 되면 분별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엄청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은 예외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품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 21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불려다니는 안개라는 말은 쉬운 말로 표현을 하면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고, 더욱이 남을 속여 재물을 모으면 죽음을 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런 분이 그깟 몇 푼을 받겠다고 돈을 가져 오면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실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분이 그깟 푼돈을 조금 더 받아서 뭐 하시겠습니까?
교회 밖이나 교회 안이나 할 것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목돈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헛된 꿈에서 깨어 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루디아 같은 사람도 되게 하시고 그런 사람을 만나게 하실 수도 있지만 다음 주에 보게 될 말씀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쓰면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경우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극단적인 것 말고도 다른 사람의 아픔과 연약함, 약점을 이용해서 재물을 모르려는 것 자체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악덕 경영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물거품이 되기 전에, 죽음을 구하는 것이 되기 전에 조금 덜 갖더라도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기 드문 아주 신기한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귀신은 마귀의 졸개들입니다. 악한 영의 우두머리가 마귀이고 그 밑에 부하들이 귀신들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도 잘못 배워서 무슨 마귀, 무슨 마귀 이러면서 마귀가 여러 개가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마귀는 고유명사입니다.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이 귀신들이기 때문에 귀신은 복수로 써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영의 졸개들이기 때문에 귀신 들린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보더니 따라오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귀신 같이 바울 일행을 알아보고는 이 사람들이 바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구원의 길을 전할 것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을 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냥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진리를 외치면서 따랐다는 것입니다. 미친 체하고 한두 시간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18절에 보면 “여러 날”을 쫓아다니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얼마나 극성을 부렸냐면 그렇게 쫓아다니는 귀신 들린 여종 때문에 바울도 심히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괴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여인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면 뒤에 나타날 나쁜 상황들이 예상이 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치가 괴로웠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자신에게만 집중을 해도 복음이 전해질까 말까인데 귀신 들린 여종의 소리가 방해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여러 가지 정황들 때문에 바울은 심히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극한 상황이 되자 이제 바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귀신에게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게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를 했더니 믿음으로 선포한 바울의 말대로,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를 주셔서 그 귀신이 즉시 나오게 되는 역사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여러 날 동안 바울 일행을 쫓아다니면서 떠들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 한 마디를 했더니 그 귀신이 즉시 나왔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에게 와서 대결을 하자고 했는데 실제 대결을 할 때는 바알 선지자 450명만 올라와서 대결을 하게 됩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이 긴 시간 동안 빌고 또 빌어도 불이 내려오지 않게 되자 나중에는 칼로 자신들의 몸을 자해하는데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내려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는 제단에 물을 흠뻑 뿌리고서는 혼자 하나님께서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불을 내려주셔서 그 뿌린 물까지 다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아주 놀라운 역사를 보여 주셨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아무 공로 없이도 기도하면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울에게 보여 주셨던 동일한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껏 하라고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기도하러 기도의 처소를 찾는 중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기도할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과 은혜를 주시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고, 오늘 이 능력을 주시고자 우리를 선택하셔서 이곳에 불러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오늘부터 우리는 귀신을 즉시 나오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려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구별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기도한다고 정말 귀신이 쫓겨 나가겠어? 정말 응답을 받겠어? 정말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겠어? 정말 병자들이 고침 받고 나음 받을 수 있겠어? 정말 우리가 부요한 사람이 될 수 있겠어? 정말 이 교회가 성장하고 건강해 지는 교회가 될 수 있겠어?” 그런 의심의 마음을 다 버리시고 반드시 복을 주시고 반드시 고쳐 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반드시 귀신들이 즉시 나올 것이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서 그 믿음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하나님의 권세를 보면서 기쁨으로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