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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타워협회가 말하는 “성서연대”
Carl Olof Jonsson 1993
원문 : http://user.tninet.se/~oof408u/fkf/english/epage.htm
번역 : 작은화분
워치타워협회의 가르침에서 연대의 역할
소수의 사람들은 워치타워협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연대의 중심적인 역할을 충분히 인식한다.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협회의 연대와 메시지간의 불가분의 관계를 항상 충분히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집집마다 설교한다. 그들의 연대에 반대되는 많은 증거들에 맞서, 없어도 어떻게 해서든 지낼 수 있는 무엇처럼 일부 증인들은 이것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연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라고 그들은 말한다. 많은 증인들은 더 이상 그 과제에 대해 토의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면 워치타워협회조직에 연대는 얼만큼 중요한 것인가?
사실 이 종교의 주장과 메시지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구성한다.
워치타워협회는 자신을 지상의 “신과의 영적 채널”과 “신의 대변인”이라고 주장한다. 간략히, 이러한 메시지는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종파를 “검사”하고 마침내 워치타워협회 및 그와 연합되어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부 하여 1919년 그의 유일한 지상의 “도구”를 선정하는 “때의 끝”이 시작되었던1914년에 신의 왕국이 설립되었다는데 적용한다. 협회는 1914년 세대는 당시(아마겟돈)워치타워와 연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멸망할 “아마겟돈 전쟁”의 끝이 올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 가르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살아남아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1914년은 워치타워협회의 가르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BC 607에 시작하여 1914년에 끝나는2,520년 기간이 누가
“성실한 사람은 모든 나라의 그리스도계 종교적 시스템에서 왕국 복음에 관한 설교의 종류와 1918년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 행해진 것과 비교하라. 그들은 하나도 아니며 같은 종류도 아니다. 이방인의 때의 끝인 1914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즉위로 세워진 하늘 왕국을 전한 그것이 진짜 복음 혹은 좋은 소식이다.
이와 동의한 워치타워
워치타워협회는 연대가 1914년을 가리킨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치명적인 죄로 간주한다. 신의 왕국이 “이방인의 때”의 끝 1914년에 설립되었다는 것은 “다른 것들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 시간에 최고로 중요한 사건”으로 지정되었다[2]. 계산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신의 격노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들 중에는 신의 왕국을 거부하여 “큰 고난 속으로 멸망될” “그리스도교계의 성직자”와 그의 추종자가 있다. 공공연하게 계산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맴버들은 매우 다양하게 처벌될 위험을 갖게 된다[3].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회개하거나 바꾸지 않으면 그들은 제명되고 미래에 부활의 희망이 없는 “게헨나의.. 죽음으로 가게”될 “배교자”로 구분된다[4]. 만일 그들이 여진히 신과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워치타워의 한 독자가 “왜 여호와의 증인은 여전히 신과 성서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갖는 배교자에게 제명을 가합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협회는 특별히 대답을 했다.
“여호와의 증인과 승인된 연합은 여호와의 증인의 통일된 성서적 믿음들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성서의 진실된 가르침을 받야들이는 것이 요구됩니다. 어떤 믿음이 포합됩니까?... 1914년은 이방인의 때의 끝이고 예견된 그리스도의 임재의 때로서 이때 신의 왕국이 하늘에 설립되었다는 것입니다.”[5]
그러므로 “이방인의 때”는 1914년에 지나갔다는 계산을 거부하는 사람은 협회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 중 한 사람으로 승인되지 않는다. 사실, 은밀히 협회의 연대를 거부하는, 그래서 여전히 여호와의 증인 중 하나로 형식적으로 간주되는 사람은 실제로는 워치타워협회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이며 조직의 기준에 따르면 이들은 정말로 종교의 일원이 더 이상 아니다.
성서연대의 특징
그러나, 대부분의 여호화의 증인들은 워치타워협회의 이방인의 때 계산이 조직의 현재교리 구조상 필수불가결의 요소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멸망연도가 607년이 아니라는 많은 증거들에 직면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연도가 587 혹은 586 BCE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서보다 세속적이고 역사적인 자료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며 자신들은 성서에 입각한다는 명분하에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 증거들을 무시한다.
쟁점에 관련한 이러한 표현은 부당할 뿐 아니라 완전히 틀린 것이다. 이것은 그 증인들이 성서연대의 성격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성서에는 절대 날짜가 없다. 예를 들어 증인들이 주장하듯, 예수가 AD 29년에 침례를 받거나, 키루스가 비빌론을 539년에 정복했거나, 혹은 예루살렘은 BC 607에 멸망한 날짜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성서는 상대적인 날짜만을 알려준다.
따라서, 왕하 25:1-12에 있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사건이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 11년(8절)”에 해당하는 “시드기야왕 7년(2절)”에 일어났다는 정보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이 일이 일어났는가? 지금 우리의 시간과 얼마나 떨어진 것인가? 기원전 몇 년에 일어났는가? 우리의 그리스도 기원 년도와 연결되는 정보가 성서에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열왕기와 연대기는 첫째 왕 사울 부터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왕들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누가 왕이 되었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재위 년도는 얼마나 되는지를 안다. 사울부터 시드기야까지의 재위 기간을 더하여 우리는 두 왕간의 시간적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근사하게(부정확한 요인들이 많다)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히브리 두 완간의 거리가 약 500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언제 이 기간이 시작되었고 끝났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을 발견하지 못한다.
만일 성서가 시드기야부터 그리스도 기원의 시작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끊어지지 않게 연속적으로 재위기간을 알려주어 왔다면, 질문은 해답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마지막 왕이었다. 또한 성서는 시드기야의 “7년”부터 그리스도 기원의 시작까지를 계산할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공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히브리 군주의 기간이 약 500년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시간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와 그리스도 기원과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없다.
만일 성서가 일식, 월식 혹은 다른 별들(혹은 별자리)과의 상대적인 행성들의 위치와 같은 천문학적인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그 날짜를 보존하였다면, 이것은 우리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현대 천문학자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달과 행성들의 일정한 움직임으로부터 몇 천년 전 하늘에 있는 이 별들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서는 이런 종류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서는 자체적으로 이 연대들의 날짜가 어떻게 우리의 연대와 연결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공중에 달려있는” 이런 방식의 연대는 오직 상대적인 연대이다. 성서가 재위기간의 분명하고 완전한 길이를 제공하거나 날짜가 기입되어있는 천문적인 관찰을 제공하거나 시드기야부터 우리의 시기까지 정확한 시간의 길이를 알려줄 때만 우리는 절대 연대, 즉 시드기야의 마지막 해로부터 우리의 시간까지 정확한 시간의 거리를 얻을 수 있다.
세속의 자료의 도움 없는 “성서연대”가 있는가?
성서적 날짜의 상대적인 성격은 성서에서 언급된 사건의 날짜를 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만일 성서의 연대가 우리의 그리도 기원연대로 정할 수 있는 나른 나라의 연대와 동시성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연대는 상대적인 성서의 연대를 절대연대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 사건의 날짜를 정하기 위해 우리가 성서 밖의, 즉 세속적 역사 자료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선택이 없다. 만일 우리가 바빌론이 멸망한 날짜,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날짜, 다리우수 1세 기간 중 성전을 재건한 날짜와 같이 성서에서 언급된 사건이 언재 발생하였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세속 역사자료를 이용해야만 한다. 이것은 성서를 믿는 사람들이 그(그녀)가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하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세속적 자료 없이는 성서연대도 성서적 사건의 날짜도 없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당연히 이것은 또한 “성서의 연대”를 확실한 날짜의 정확함은 평가 받을 수 있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시간 측정 자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부 증인들이 바빌론의 멸망은 BC 539라는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을 지적한 후 “성서연대는 이 날짜에 동의한다”라고 외칠 때, 그들은 성서연대의 상대적 성격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성서는 바빌론 멸망의 연대 달력(또는 다른 어떤 사건)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성서가 BC 539에 일어난 세속 날짜와 동의한다는 것은 완전히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의 날짜가 BC 587이라는 세속 날짜는 성서연대와 불일치 한다는 주장도 사건에 대한 연도별 일정표가 성서에 없기 때문에 의미도 없을뿐더러 오도하는 것이다.
현재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레미야 25:11,12와 29:10의 70년이 느브갓네살 18년부터 키루스 1년 유대인 포로생활의 회복까지 예루살렘이 멸망한 기간을 가리킨다는 워치타워협회의 주장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관점의 결과, 역사가들이 세운 두 사건(BC 587/86 그리고 538/37)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너무 짧게 나타난다. 따라서 증인들은 두 개의 날짜 중 하나 즉 BC 587/86 을 거부한다. 이 날짜를 거부하고 다른 하나는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을 위해서 인가?
이러한 선택은 성서적 이유가 아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성서는 두 개의 어느 날짜도 동의 혹은 부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서는 두 개의 날짜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것 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 어떤 근거로 그 선택이 이루어 져야만 했는가? 70년에 대한 협회의 해석은 정확한가?
가장 논리적이고 학문적이며 타당한 방법은 추가적이고 성서적이며 역사적 사료들에 의해 가장 잘 증명된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은 키루스의 재위 연대보다 천문학적 그리고 다른 문헌들에 의해 느브갓네살의 재위연대가 보다 더 잘 증명되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일 진실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성서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587/86을 유지하고 538/37을 거부하는 것이 자연스런 선택이다.
그러나 증인들은 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성서도 아니며, 역사적인 증거도 아니다. 그들이 선택한 진짜 이유는 무었인가?
성서 혹은 예언적 성찰의 충실함?
만일 증인들이 70년 기간은 느브갓네살 18년에 시작하여 고레스 1년에 끝났다고 주장하려면, 그들은 두 개의 날짜 중 가장 믿을수 있는 BC 587/86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 날짜부터 앞으로 70년을 세어 보면 고래스의 1년은 BC 538/37이 아닌 BC 518/17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은 BC 587/86을 거부하고 BC 538/37을 유지하는 것 보다 성서적이고 보다 학문적일 것이다.
일부 증인들은 고레스의 1년을 518/17년으로 옮기는 것은 그리스도까지 남은 기간을 대부분 돌파하는 다니엘
그러나 협회의 아타락시스 20년 날짜는 모든 역사적 자료와 충돌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타락시스 I의 전체 재위기간(464/63-424/23 B.C.)은 천문”일기들”, 월식 기록, 행성의 관찰 기록과도 같은 설형문자판에 기록된 방대한 천문학적 관찰에 의해 절대적으로 고정되었다. 이 모든 자료들은 아타락시스 20년이 455/54가 아닌445/44 BC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동의한다. 아타락시스의 재위기간을 41에서 51년으로 연장하여 적용하는 것을 협회가 선정하였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자료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게도 그의 전임자 크로세스 I는 재위기간이 21년에서 11년으로 다시 단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선임 왕들의 재위기간이 10년씩 앞당겨 져야 한다. 예를 들어 고레스 1년은 538/37 BC에서 548/47BC로 뒤로 옮겨져야 한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워치타워협회의 “성서연대”를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다.[6]
따라서 다니엘의 70주년은 증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타락시스 I의 재위기간에 10년 더하고 크로세스 I의 재위기간에서 10년을 빼고 신바빌론 연대에 20년을 더하는 것, 역사적 자료에 최고의 경멸로 모든 시간이 가능한 사람들은 고레스의 1년을 538/37에서 518/17로 혹은 바빌론의 멸망을 539에서 519로 옮기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6]
그럼 왜 워치타워협회와 옹호자들은 538/37대신에 587/86 BC을 거부하였는가? 지적해온 바와 같이, 그것은 성서적인 이유도 역사적인 이유도 아니다.
답은 매우 명백하다. BC 587/86의 날짜는 직접적으로 워치타워협회 연대인 “이방인의 때”와 충돌한다. 이 연대에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607이라는 날짜가 필수불가결한 시작점이다. 607BC라는 해가 없이는 협회는 AD 1914년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날짜가 워치타워 조직의 예언적 주장과 메시지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흩트리는 것은 성서든 역사적 사실이든 아무것도 허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성서 신뢰에 대한 질문도, 역사적 사실의 신뢰에 대한 질문도 아니다. 날짜를 선택하는 것은 정작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워치타워조직의 신권적 주장의 중요한 조건이 되어버린 연대적 고찰에 대한 신뢰이다.
노트: 워치타워협회의 이방인의 때 연대에 관련한 모든 고찰은 나의 책 ‘이방인의 때 재고(193)’을 보라, 새롭게 개정되고 확장된 버전은 1997년에 Commentary Press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Footnotes:
협회의 전 회장, Frederic W. Franz는
2 The Watchtower, January 1, 1988, pp. 10, 11.
3 The Watchtower, September 1, 1985, p. 25.
4 The Watchtower, April 1, 1982, p. 27. The Watchtower 1992, 7월 15일자에서, 증인은 “완전한 증오를 갖고.. 배교자들을” “미워”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집니다.”(12페이지) 이것은 단지 우연히 “펜이 미끄러지는”대로 쓴 것이 아니다. 간곡한 권고는 The Watchtower 1993, 8, 1에서 반복되었다. 더 이상 워치타워 조직의 주장과 가르침을 인정할 수 없어서 그들과 결판을 내었던 전 회원은 사악한 “배교자”뿐 아니라 “여호와를 격렬하게 증오”하는 “신의 적”으로 구분되었다.
그들은 “사악함은 그들의 속성 일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악의 근원”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챤은 그들을 “반드시 미워해야”하고 그들의 멸망을 신께 요청한다(19페이지). 예수가 산위에서 설교하신 말씀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태도를 나타내는 전 회원에 대한 이러한 악의적인 공격으로 왜 워치타워 협회는 그러한 악의적인 언어로 호소할 필요를 발견하였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정보에 근거하고 경청하는 관찰자에게는 그 대답이 명확하다. 종교의 리더는 만일, 예를 들어, 최근 수천의 회원들을 워치타워협회로부터 떠나도록 만든 그들의 “성서연대”에 대한 진실이 일반 증인들에게 알려지면 엄청난 수의 증인들이 조직과 리더쉽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것을 잘 알고 있다.
높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증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배우는 것을 막도록 조직의 리더들에게 강요한다. 습관적인 방법은 독재적인 조직에서 지난 세기를 통해 오래되고 믿을만한 것이다. 반대하는 회원들은 이교도(“배교자”)로서 대화가 단절되고(“제명”), 비방되고, 중상되고 고립된다. 증인들은 그들과 말하거나 그들의 책을 읽는 것을 “죽음에 해당하는 죄”로 생각하며 그들을 향한 증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당황스런 정보는 증인으로부터 억누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진실은 오늘날 워치타워협회의 위험한 협박이 되었다. 이 조직이 비록 지상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진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할지라도, 사실 진실은 이 종교의 가장 위험한 적이 되었다.
5 The Watchtower, April 1, 1986, pp. 30, 31.
6 587/86 과 538/37 BC의 날짜는 둘 다 옳다. 이중 어느 것도 성서와 충돌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70년을 “예루살렘의”가 아니라 “바빌론의”라고 말한다(예레미야 29:10; “바빌론에서”라는 NW와 KJV는 오역이다). 앗시리아가 609년에 명확하게 자신의 땅을 바빌론에게 잃음으로써 “바빌론의”70년은 609년부터 539년까지 지속되었다. 607년에 반하는 많은 증거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의 책 “이방인의 때 재고 1986, Commentary Press ”를 보라. 이탈리아, 독일, 스웨덴 언어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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