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강추애
이제 어머니 마지막 옷 입으신다.
아주 고운 유백색 명주옷이다.
어머니 살아 생전 명주 천을 이용해 몸에 두르신 것은 명주 목도리뿐이었다.
요즘은 중국에서 무더기로 들어와 옛날 삼베처럼 흔하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가진 명주의 개념은 '귀한 물건' 오직 그것이었다.
누에가 실을 토해 스스로 제 몸 가두어 고치가 되고. 그 고치 삶아서 물레에 실 잣으면 소지 한 마디의 짙은 갈색 번데기만 남는. 맑은 생명이 맑은 실 한 줄 남기고 가는 누에의 한살이. 그 실이 명주실인데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하는.
세 오라버니의 학적을 따라 부산에 오기 전까지, 고향 진주에서 어머니는 누에를 치셨다. 양잠업이라 할만한 큰 규모는 아니었다. 넓은 창고에 넉넉히 칸을 질러 한 평 정도의 채반을 스무 개정도 만들어 넣고 넓은 마당 가장자리에 울타리 역할을 하던 나이 많은 뽕나무의 무성한 뽕잎으로 누에를 치신 것이다. 늦가을과 겨울을 뺀, 잎사귀 성성한 봄부터 낙엽 지는 가을까지. 어머니의 뽕잎 써는 소리와 함께 나의 하루가 열리었다.
뽕잎 따는 소리는 톡! 톡! 유별나며 정겨웠다.
내가 들어가 웅크리고 앉을 정도로 속이 넓은 대나무 소쿠리에 그득 따 모은 뽕잎, 내 손바닥 넓이의 풋풋하고 억세게 보이나, 적당히 기분좋게 느껴지는 까칠까칠한 뽕잎. 검은색이 은근히 깔려있는 하얀 누에는 어머니가 썰어서 채반에 올린 뽕잎을 사각사각 소리내며 잘 먹었는데, 누에들의 뽕잎 먹는 소리는 고요한 숲 속에 내리는 비 또는, 갈대밭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 서늘한 파열음이 만든 풋풋한 푸른 성찬.
그윽한 포만으로 마디 허리 통통 일자로 부풀고.
그리하여 더할 수 없는 無心의 平和를 누리던 채반의 생물들.
그렇게 초록색 뽕잎만 먹어도 토실토실 하얗게 살이 찌고, 어른 손가락만큼 키가 크던 누에. 그리고 고개 꼿꼿 쳐들고 도시 잠들었다 할 수 없는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던 누에의 신비로운 잠.
그러한 누에의 먹이를 만드시느라 노상 뽕나무와 더불어 서 계시던 어머니.
실한 그네 뽕나무 등걸에 매 주시고. 어머니는 뽕잎을 따다가, 그네를 밀다가. 오디도 따 주시며. 나는 뽕나무 그늘 긴 그네에 흔들리며 입술이 까맣든 말든 달콤한 오디를 먹다 잠이 들고. 그렇게 딴 뽕잎 위에서 누에씨가 부화되고, 누에가 잠을 자고, 누에가 허물을 벗고, 누에가 점점 자라고, 누에 스스로 실을 토해 고치 속에 갇히고, 그 하얀 고치가 열매처럼 섶에 달리면 뽕잎 담던 소쿠리에 고치만 가득 탐스럽게 거두어 내시던 어머니.
누에.
비단실을 짜내는 경이로운 벌레.
어머니가 자식처럼 먹이고, 키우고, 잠재우며 섶에 올리던 애물.
그 애물이 사람에게 준 유백색 비단으로 치장하시는 어머니.
다만 깨끗하시다.
<비단옷은 걸쳐볼 생각도 않으시고>
어머니의 누에치기는 어머니의 살림에 유익하였으되 당신의 겉치레와는 무관하시었다.
<아기 배부르기만 바랄 뿐, 당신의 시장함은 사양치 않으시고>
머슴처럼 하인처럼 우리 시중들기 밤낮없으시어.
그러시느라.
그리고, 한 번 입고 난 뒤, 바느질을 되 뜯어, 다른 빨래와 철저히 분리해서, 달래듯 어루듯 빨아서는 곱게 풀 먹인 뒤, 다시 원형을 찾아 바느질을 시작하는 그 옷의 까다로움이 짐짓 싫었던 것이다.
"모시듯 입어야하니 그게 옷인가."
아들 셋, 딸 둘 낳으시고. 그 아들 딸, 두 셋 씩 자녀 두었으므로 옷 선물 받으실 일이 잦으셨으나, 어머니는 곱게 입어 동전만 바꾸면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는 비교적 값싸고 뒷처리 수월한 인조견을 선택하시었고 만족해 하셨다.
그러셨던 어머니 이제 명주옷 입으신다.
살결처럼 부드러워 간지러움 지레 와 닿는 감미로운 명주로 첩첩 단장하신다.
"빨래는 편한가. 물이 빠지지 않는가. 모양이 틀어지지 않는가."
일체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
"얘, 싫다."
부축도 흉타 하신 어머니.
"젊은이들 자리 양보 민망해서."
힘이 닿는 한,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는 쉬엄쉬엄 걸어서 다니시던 어머니.
"늙은 게 뭐 자랑이라."
인적 드문 호젓한 길 골라서 혼자 다니시며 들꽃 만나는 즐거움 크다 하시던 어머니.
종내 그리하시었던 어머니 온 몸 그대로 내 놓으시고 타인의 손길, 마다하지 않으신다.
적삼 입히면 입히는 대로.
허리에 치마 감으면 감는 대로.
버선 신기면 신기는 대로.
순순히 얌전하시다.
어머니.
"막내 가지기 전."
때때로 태몽 말씀하시었다.
"산에 나무하러 갔는데 누런 솔가리가 집채만하게 묶여져 있는 기라. 어찌나 반갑던지 그걸 지고 오려고 지게를 냅다 들이대는데 솔가리 뒤에서 수염이 허연 노인이 여남은 살 돼 보이는 참한 처녀를 앞세우고 나오는 기라. 노인의 수염은 발등을 덮을 만큼 길더라. 내 평생 그런 수염 그 꿈속에서만 봤다. 그래, 그 노인이 말했다. '솔가리는 손대지 말고 이 처녀를 데리고 가거라' 난, 또 노인이 시키는 대로했다. 지게도 벗어 두고 그 처녀만 데리고 집으로 털래털래 내려왔지. 그 처녀가 바로 막낸 기라. 가을에 낳아서 가을, 낳고 보니 그 처녀 얼굴인데 하도 사랑스러워서 사랑. 그래서 秋愛가 됐다. 추애는 그 처녀가 죽어서 태어난 것일 게라. 그 노인은 아마도 산에 사는 신령이시고."
<애정은 무거워 숨길 수 없고, 은혜는 깊어서 차라리 서러우셨던>
어머니 이제 날 데리고 털래털래 내려오신 산에 드시기 위해 새 옷 다 입으셨다.
책값, 차비 준비한 주머니 없어, 날개옷처럼 가벼운 명주옷으로 빈틈없이 갖추어 입으신 어머니, 고우시다. 어여쁘시다.
그 위에 천금, 지요로 겹겹 더 감고 , 장메로 싸매니 뇌리에 스치는 누에의 고치.
不敬.
哭대신 웃음 나온 막내,
입 가리다.
이 천 일 년, 일 월 이 일, 鷄鳴 丑時, 여든 여덟 해의 生 접으시고 無想에 드신 어머니.
이 천 일 년, 일 월 삼 일, 巳時, 어머니 殮.
< >: 부모은중경
첫댓글 바닷가 파도소리 노을 물드는,
두고 온 고향길을...
모두가 염을 앞둔 마음으로 산다면 어떨까요.... 명복하소서.